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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은 책, 나온 책/<나의 성소 싱크대 앞>

간증, 또 하나의 자기성찰

larinari 2017.01.13 11:06



간증, 또 하나의 제자도.

CBS의 오랜 간증 프로그램 <새롭게 하소서>를 아시죠?

그 프로그램의 케치프레이즈입니다.

지난 12월에 녹화했고, 다음 주에 본방 재방해서 여러 번 방송된다고 합니다.

다녀와서는 민망하고 부끄러워 혼자 이불킥 여러 번 했습니다.

메이컵 받다 정신차려보니 머리에 후까시(외에 달리 표현한 말이...ㅜㅜ)가 과하게 들어갔습니다.

카메라에선 괜찮을 거라고 하시니 한껏 커진 머리를 하고 녹화장에 들어섰습니다.


'간증'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 앞에 설 때 진솔해질 수 있을까요?

오염될대로 오염되어 본연의 의미를 찾기 어려운 교회의 용어들이 많은데 그중 대표적인 말이 '간증'입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음을 드러내기 위해서 '나'의 성공을 부각시켜야하는 것이 흔한 간증이지요.

같은 이름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간 적이 있었고,

몇 년 전에 코스타에서도 '삶의 현장'이라는 간증의 자리에 섰던 적이 있었습니다.

두 번의 간증을 통해 배운 바가 있습니다.

한 번은 '다시는 이런 거 하지 말아야지' 결심을 했고,

다른 한 번은 안전한 자리에서 나의 부끄러움과 약함을 고백함으로 치유를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결국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된 것이지요.

언어를 오염시킨 것도, 그 언어를 다시 정화하는 것도 사람입니다.


전에 다녔던 교회에서 '수단'이 된 간증의 경험들로 혐오증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목자(소그룹 리더)를 했더니 연봉이 오르고, 명퇴하는 줄 알았으나 더 좋은 자리로 영전되었고,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고, 가정이 화목해지고......

교회를 섬겨 일이 잘 되고 성공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제가 들었던 그 무수한 간증이 꾸며낸 얘기도 아니었고, 당사자들에겐 분명 축복이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수단화 되는 것, 사람을 통제하기 위한 목회적 수단이 된다면 치명적인 죄이지요.

간증을 수단화 하고자 하는 유혹은 그때 그 시절 그 교회의 리더나 목회자만이 걸려든 덫이 아님을 압니다.

바로 내 앞에, 우리집 문지방 앞에 놓인 덫입니다.


블로그를 하면서 늘 갈등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가족의 세세한 일이며, 부부 사이의 대화, 갈등은 물론 스쳐지나는 지질한 감정까지 드러내는 글.

어쩌다 작가된 얼치기로서 그나마 소명이라 붙드는 말이 '일생愛 천상에'입니다.

일상에 들여놓은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살고 써내는 것이라고 멋지게 표현해 볼게요.  

일상의 기쁨과 슬픔, 잘 되고 안 되는 일,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이 필터링 없이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헌데 아주 못나고 지질한 나를 드러낼 때조차도 결국은 주체하지 못하는 현시욕에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압니다.

때문에 글을 써서 '발행' 버튼을 누를 때마다 심장이 조여들곤합니다.

결국 나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라면 '간증'이라 포장된 자기현시와 무엇이 다른가 싶지요.


드러냄과 숨김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저는 늘 이렇습니다.

이왕 강사라는 이름을 얻은 이상 '드러냄'을 선택한 것 아닌가. 

이왕 이렇게 되었다면 더 적극적으로 나를 드러내고 자기홍보에 매진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 순간 발목을 잡는 '숨김' 본능.

'써야 사는 여자'라서 쓰는 일 외에는 할 수 없어서 블로그에 끄적거려 발행합니다만.

나름의 여러 장치를 끼워 넣습니다.

스크롤 압박감을 위해 짧은 글도 길게 늘어놓습니다. 

빙빙 얘기를 돌리는 사이 인내심 없는 사람들 나가 떨어진 후에 정작 하고 싶었던 얘기를 하지요.

나로서는 쓰지 않을 도리가 없지만 제발 아무도 읽지 마라, 읽지 마라.....

그러나 다시 블로그 조회수에 신경을 쓰고, 댓글 알리미 소리에 일단 기분이 좋아지고, 

어느 댓글 하나로 날아갈 듯 한 하루를 보내기도 합니다. (댓글 압박 아닙니다. 편하게 하세요. ㅎㅎ)

사석에서 만난 분이 '글 잘 보고 있어요'하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지만 돌아서면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새롭게 하소서> 녹화 이후의 이불킥은 이런 내적 갈등의 표현입니다.

'아무에게도 안 알려줄 거야. 헤어스타일 때문에 일단 머리 크기 장난 아니고, 

주제가 왔다 갔다, 말도 되게 못했고, 맡투도 엄청 가식적이었어. 오글거림 장난 아닐 거임'

묻지도 않는 말을 혼자 자꾸 떠들어댔지요.

역시 드러내고 싶으나 숨기고 싶고, 숨고 싶지만 드러나고 싶은 [나의 투쟁] ^^ 

아무튼 저는 이 방송 못 봅니다. 


간증, 또 하나의 자기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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