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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키우는 엄마

너희들 없는 거실

larinari 2015.02.04 09:53

 

 

 

누구와 통화하는 내용을 들었는지 현승이가 울먹이며 그런 적이 있다. '엄마, 정말로 우리가 방학하면 엄마는 개학한 것처럼 싫어? 엄마가 그랬잖아. 애들이 방학하면 엄마는 개학이라고. 너무 싫어서 그러는 거야? 우리랑 함께 있는 게 그렇게 귀찮아?' 어설픈 손짓 발짓 다 동원해가며 아니, 너희가 싫다는 게 아니라 매일 밥하고 그러는 게 엄마들로서는 힘드니까 웃자고 하는 말이지, 하며 수습을 했었다. 그럼 귀찮지 안 귀찮겠냐! 이 시키들아.

 

둘이 다 개학하니 모처럼 거실의 아침 햇살이 게으름으로 늘어지지 않고 고요한 기품의 제 모양을 찾았다. 지난 방학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아이들이 또 한 뼘 자랐구나. 아침을 먹고나면 기~이다란 중2 채윤이가 '엄마, 내가 설거지 할까?' 했다. 강의가 있어 저녁 시간 비우면서 먹을 것도 안 챙기고 나와 미안한 마음인데 '엄마, 걱정하지마. 내가 계란밥 해서 현승이랑 같이 먹을게. 김밥은 싫어. 우리가 알아서 할게' 그러더니 심지어 어느 날은 현승이가 '엄마, 나 밥하는 거 가르쳐줘. 이제 내가 6학년인데 밥도 할 수있어야지. 그래야 엄마 없을 때 밥을 해먹지' 그리하여 이번 방학에는 '지 밥그릇 지가 챙기는 아이들'로 부쩍 성장했다. 와!

 

채윤이의 변화가 재미있다. 방학의 채윤이는 다른 아이 같이 보였다. 예중에서 얼마나 경쟁에 찌들어 살았는지가 새삼 확인되는 아침 저녁이다. 축 늘어진 어깨와 신경질적인 말투가 사라졌고 감정기복 없는 예전의 그 채윤이이다. (개학한지 이틀 만에 다시 어깨쳐짐.ㅠㅠㅠㅠ) 중등부 찬양팀에서 고참이 되면서 졸업하는 언니들 챙기는 재미와 부담, 반주를 더 잘하고 싶은 욕심에 연습하는 즐거움,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진지하게(그러나 오래는 못 가는) 고민하기. 그러면서 때때로 교회나 스튜디오 가서 연습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채윤이의 중2 겨울방학에 생기가 돌았다. 그러다보니 심지어 오래 전 그날처럼 현승이와 레고놀이까지! 물론 놀다 싸우다, 육박전으로 뒹굴다.... 하다하다 안 되면 현승이를 놀리는 즉흥연주곡을 연주하기도. 참 보기가 좋았다. 우리 채윤이는 학교만 안 가면 채윤이 다워지는구나! 흠.......

 

'엄마, 오늘 학교 갔다 오면 집에 있어?' 강의가 있거나 약속이 있어서 없다고 하면, 특히 밤에 집에 없을 거라 하면 '어우, 왜~애!' 이렇게 나와야 정상인데. 오늘 아침에 현승이는 '아, 그렇구나. 그러면 저녁은 누나랑 둘이 먹어?' 한다. 아직도 말끔하게 씻기지 않은 일하는 엄마의 죄책감때문인지 이렇게 쿨한 반응을 접하면 가슴이 쎄하다. 현관문을 나서는 현승이가 '엄마, 그러면 내일 아침에 봐. 나 그냥 자고 있을게' 하더니 문을 닫으며 '엄마, 하루 잘 보내' 하는 말에 설거지하다 눈물 날 뻔 했다. 현승이는 현승이답게, 채윤이는 채윤이답게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냥 그런 기도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방학이나 개학이, 학교가, 엄마인 나의 틀이 이 아이들의 자기다움을 옭아매지 않아야 할텐데. 아이들 없는 덕에 깨끗하고 조용해진 거실에 아이들을 위한 기도의 마음으로 가득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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