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으로 얻은 젊음
, 벌로 받은 늙음


영화
<은교>를 떠올리면 바로 생각나는 대사가 있다. ‘너희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 소설가 이적요의 독백이다. 늙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처절한 지를 어렴풋이 깨닫게 하는 영화였다. 몸은 마음보다 훨씬 빠르게 늙어간다는 것도 영화 <은교>는 아프도록 정직하게 보여주었다. 흔들의자에 앉아서 돋보기를 코에 걸치고 우아하게 책을 읽거나 뜨개질을 하며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늙음이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장애인의 비율이 장애인 중에 90%가 사고 등에 의해서 후천적으로 된 장애인이라고 보면 모든 비장애인들은 잠재적 장애인이다. 이렇게 보자면 노인질환에 관한한 잠재적도 아니다. 우리 모두는 잠재적 노인이 아니라 대기표를 받은 노인이다. 잠재적 장애인으로서 비장애인이 사고를 당하여 장애인이 될 확률은 낮지만 젊은이들이 노인이 될 확률은 100%이다. 그러니 노인문제는 더더욱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도 아니고, 늙음이 잘못해서 받는 벌도 아니다. 아니, 늙음의 과정은 우리 모두가 공평하게 받는 벌인지도 모른다. 그렇게나 싱그러운 은교 역시 몇 십 년 후에는 분명 이적요가 했던 말을 어떤 식으로든 자신만의 표현으로 중얼거릴지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우리의 젊음은 늙음과 한 줄로 연결되어 있다. 그 한 줄의 이름은 노화이다.


노화란

Reichel노화란, 유기체의 생리적 능력 또는 기능이 점차적으로 손실되어 죽음에 이르는 확률을 높이 증가시키는 것이라고 했다.(1983) 대략 40세 경에 노화 과정의 신체적인 징후들은 눈에 띄기 시작하는데 정력과 힘의 감소, 깊은 주름살이나 흰머리, 체중과 체질의 변화 등이다. Whitboume(1996)는 또 노화는 어머니의 임신과 더불어 시작되어 궁극적으로는 사망으로 종식되는 하나의 지속적인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에 한 발작씩 가까워진다는 의미로 생각해보면 노화는 일생을 통해 진행되는 과정이라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60대 여성이 30대 여성을 바라보며 나도 한 때는...’ 한다면 30대 여성 은 20대 후배의 윤기 나는 피부를 보면 , 옛날이여하게 된다. 10대와 농구 시합을 하고난 20대 청년들이 체력에서 밀린다.’며 고개를 가로젓는 것도 보았다. 결국 우리가 사는 오늘의 삶이 노화의 과정이고 이렇게 살아가는 어느 날 우리 모두는 노인이 되어있을 것이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몸이 전같이 않음을 사무치도록 실감하는, 몸의 기능이 마음과 다르게 손실되어가는 속수무책의 상태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노인
, 노인성 질환, 치매

노화로 인해서 몸의 모든 부분이 구조적 변형과 기능적 저하가 일어나는 변화는 노인의 신체적 정신적 특징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눈과 귀를 비롯한 감각기관들 뼈와 근육, 호흡기나 소화기 등 총체적으로 퇴행적 기능저하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노인들을 흔히 개인에 따라 만성적 질병을 가지고 있으며, 종종 2개 그 이상의 증세들을 함께 보이기도 한다.

노년층이 보이는 정신적 신체적인 질병은 우울증, 편집증, 불안장애, 치매 등의 정신적인 장애와 파킨슨 증후군 등의 중추신경계 장애, 중증 근무기력증, 골관절염, 골다공증 같은 근골격계 장애, 동맥경화, 심근경색, 협심증, 뇌혈관발작, 고혈압과 같은 심장 혈관계 장애, 녹내장, 백내장, 노인성 난청, 이명 등의 감각기능의 장애, 부전과 폐기종, 기관지염 등의 호흡기 장애, 위염과 위궤양 암, 게실염 등의 소화기 장애, 방광염, 신우신염 등의 비뇨생식기 장애, 당뇨병 같은 내분비 장애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치매는 가장 심각한 노인성 질환 중 하나이다. ‘어떤 원인으로 뇌세포가 파괴돼 정상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기억력과 지적기능이 떨어지는 증상으로 정의되는데 치매를 설명하는 이 건조한 언어들은 치매 환자 자신은 물론 가족들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과는 사뭇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인지기능의 상실은 특히 단기기억력의 결핍과 혼란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사물을 지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가까운 가족들을 낯선 사람으로 인식하거나 공간에 대한 지각 역시 혼란이 와 일상생활에 심각한 방해를 받게 된다. 자신의 역할에 대한 혼란도 있어서 가족이나 친구들을 잃게 되는 사회적 상실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치매환자를 비롯한 고령의 노인들에게는 합리적 사고기능이 떨어지면서 느낌(feeling)’이 중요하게 살아난다. ‘느낌을 통해 생각을 대신하며 느낌을 통해 자신에게 상실된 부분에 대해서 적응하게 된다.

치매노인들과 일하는 치료사가 유념해야 할 내용이 있다. 치매 환자들의 행동을 지속적으로 접할 때 자칫 존중감을 잃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어르신으로 한 분 한 분을 존중하며 대하고 치료에 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객관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치매 환자들의 느낌을 통한 사고를 판단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세상을 떠난) ‘아들을 만나러 가야한다며 가출을 일삼는 치매 환자에게 사실을 직면케 하려는 노력은 의미가 없다. 느낌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 갑자기 치료사를 돌발행동을 하는 경우를 늘 대비하면서도 증상으로 이해하며 수용하는 태도가 꼭 필요하다.


음악치료 활동

질병이 없는 노인으로부터 의학적 보살핌을 전적으로 필요로 하는 노인에게까지 음악치료는 다양하게 적용된다. 이제껏 다른 영역의 치료에서도 보아온 것처럼 음악은 비장애인으로부터 심각한 기능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각각의 필요에 맞게 적용될 수 있었다. 음악이 시간의 예술이기 때문에 현실감, 순서에 대한 예견 등을 제공한다는 것은 노인음악치료에도 치료적으로 의미 있는 특성이다.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할 수 있다는 자체가 (망상이나 과거 기억의 느낌이 아니라) 현재에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건강했던 젊은 날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노인의 경우 젊은 시절에 불렀던 노래를 부르거나 음악을 듣는 것은 둔감해진 정서를 촉촉이 적시는 일이기도 하다. 고립감을 느끼는 노인 분들이 함께 모여 음악활동을 하는 것은 즐겁게 타인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노인들을 위한 음악치료 활동은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감각기관 훈련을 위한 활동음악활동을 통해 감각을 자극하는 기법은 모든 노인환자에게 다 유용하지만 극도로 퇴행된 노인환자들에게 가장 많이 사용된다. 극도로 퇴행된 노인이란 반응이 전혀 없고, 인간관계에서 고립되어 있고, 주변 환경과 교류할 능력을 상실한 정도의 노인을 일컫는다. 일단 환자들이 어떤 능동적인 반응이나 참여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음악활동은 수동적인 활동들이 될 것이다. 노래를 들려드리거나, 녹음된 음악을 틀어드리는 것이다. 또 음악을 듣는 동안 할머니 팔을 들었다 내리세요. 손가락을 까딱까닥 해 보세요등의 간단한 지시를 할 수도 있다. 또는 음악에 맞춰서 환자의 몸을 터치하는 등을 통해서 청각과 촉각들의 감각을 자극하게 된다. 음악활동은 복잡하지 않고, 짧고, 구조적이어야 한다. 악기연주 활동 역시 아주 쉽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예를 들어, 옴니코드라는 악기가 있다. 치료사가 버튼을 이용해서 코드를 조정할 수 있고 매끄러운 금속판을 터치하기만 해도 소리가 난다. 이 같은 악기를 가지 노래와 함께 연주하면서 환자는 금속판을 터치하는 것으로도 반주로 참여하게 되는 활동을 구성할 수 있다.


현실인식

현실인식은 감각 훈련 단계보다 나은 기능을 가진 환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다. 시간, 장소, 사람을 포함하여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적인 환경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확인시킴으로 현실과의 접촉을 유지시키는 것이다. 이 방법은 뇌졸중 등으로 일시적으로 생각이 혼란하여 고통 받는 환자에게 효과적이다. (특이한 것은 이 훈련이 치매환자의 경우에는 덜 효과적이라는 보고가 있다.) 음악치료는 매 세션 헬로송으로 시작하여 굿바이송으로 끝을 내게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노인 환자에게 있어 매 시간 반복되는 노래를 통해서 시작과 끝을 인식하게 하는 목적이 있다. 또 매 세션마다 지금이 무슨 시간인지, 무슨 요일이며, 옆에 앉은 분은 누구인지를 같은 묻고 대답하는 노래를 할 수 있다. ‘오늘은 무슨 요일인가요. 노래로 대답해주세요.’ ‘오늘은 즐거운 금요일, 음악치료 하는 날단순한 멜로디의 노래를 매 시간 부르는 것을 통해서 지금 여기를 반복해서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 노래를 부르고, 정해진 곳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활동 자체가 지금 여기의 현실에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음악활동에 참여하는 자체가 현실인식을 위한 훈련이 될 수 있다.


재동기 유발

음악은 동기 유발에 있어서 효과적인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인식과 언어능력도 있지만 무감각하고 무기력한 환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활동이 재동기 유발 이다. 무덤덤해진 사고와 언어를 자극하여 사회성을 발달시키는 것이 목적인데 동기유발을 위해서 음악이 사용된다. 동기를 유발 뿐 아니라 적당한 분위기를 조성해주고 토론의 주제를 소개하는 것도 음악을 통해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향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주제에 맞는 노래를 부르거나 감상함으로 자연스럽게 주제로 들어갈 수 있다. 재동기 유발을 위해서 그룹 토론의 주제를 선정할 때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서 노인 환자들의 과거와 현재 상황을 주의 깊게 살피고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음악과 릴렉세이션

노인들의 삶이 단조롭고, 행동을 비롯한 일상의 템포가 느리기 때문에 긴장이나 스트레스와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노인들의 삶은 죽음 가까이에서 하루가 다르게 퇴화하는 여러 몸의 기능을 뼈아프게 체감하는 삶이다. 긴장과 불안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다만 그 긴장과 스트레스가 젊을 때 표출되는 방식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노인들 역시 릴렉세이션을 위한 도움이 필요하다. 적절한 배경음악 속에서 긴장을 이완하는 활동, 음악에 맞춰서 천천히 스트레칭 하는 무브먼트 등을 적용할 수 있다. 함께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는 활동 등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에 대한 대응이 될 뿐 아니라 고립된 상태로부터 벗어나 외부 환경에 참여함으로 오는 기쁨을 누리게 할 수도 있다.


오락과 취미 생활로서의 음악

노년기에 즐기고 누릴 수 있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건강한 삶을 위한 큰 자산이다. 음악을 취미로 즐길 수 있는 노인은 노화로 인해서 오는 여러 심리적인 장애들을 보다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클래식이든 트로트든 본인이 원하는 음악을 매일 스스로 찾아 들을 수 있는 노인이라면 앞에서 언급한 감각 자극, 현실감각 유지, 스스로 동기유발, 릴렉세이션을 위해 스스로를 도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 같다. 호흡이나 소근육의 조절 등의 기능이 저하되기 때문에 젊어서부터 악기연주를 하신 노인이라도 지속적인 취미생활로 유지하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음악치료 그룹에서 핸드벨이나 노인환자의 수준에 맞는 악기를 혼자 또는 여럿이 연주할 수 있다. 또 음역에 맞도록 조정된 합창곡을 함께 부르거나 너무 어렵지 않은 노래를 배우는 것 등의 음악활동은 노년의 환자들에게 즐거움과 삶에 대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회고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정리하는 것은 노년기 발달과업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건강을 많이 잃고,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에게 과거를 회상하는 일은 지금의 처지를 더 불행하게 느끼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꼭 필요한 치료영역이기 때문에 노인을 위해 일하는 음악치료사는 이런 부분을 잘 끌어내고 음악을 통해 다룰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젊은 시절에 불렀던 노래나 음악들은 강한 연상 작용을 일으키며 회상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이를 잘 이용하게 위해서 음악치료사들은 자신이 만나고 있는 노인환자의 젊을 시절부터 각 10년 단위로 유행되었던 노래를 주제별로 분류하여 가지고 있기도 한다. 음악치료 세션에 들어와서 뭔가 못마땅하다는 듯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앉아계시던 할머니께서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흩날리더라는 노래에 얼굴의 긴장이 풀리며 눈빛마저 아스라해지셔서 노래를 흥얼거리시는 것을 보았다. 젊은 시절 불렀던 노래로 그 시절로 잠시나마 되돌아가신 것이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보다 건강하게 노년의 보내시든, 여러 질환으로 고통스럽게 시간을 보내시든 대부분의 노인들은 이 땅에 처음 아기로 태어날 때처럼 의존적인 상태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인간 노화의 마지막은 몸이든 정신이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경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박완서의 소설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에서 말기 암으로 임종을 앞둔 친정엄마를 집에 모시는 주인공의 독백이다. ‘암환자의 말기가 거의 다 그렇다지만 어머니도 숨을 거두시는 날까지 의식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명료했다. 그러나 뒤를 가리지 못했다. 수술 후 어떻게 된 게 항문의 괄약근이 고무줄이 빠진 것처럼 열린 채 오므라드는 작용을 못하니 아무리 깔끔한 어머니도 속수무책이었다.(중략)내가 어머니를 떠맡고 싶은 건 어머니가 아니라 어머니의 똥구멍이었다. 생판 남이 어머니의 똥구멍을 진저리를 치며 구박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그건 효도 따위보다 훨씬 진실하고 씩씩한 분노였다. 하필 항문의 고무줄이 빠질 건 뭐였을까. 다른 사람도 아닌 우리 어머니에게 그건 얼마나 참을 수 없는 치욕이었을까. 나는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대가로라도 그 치욕을 다소나마 가려주는 일을 맡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젊은 날을 어떻게 살아왔든지 속수무책으로 덮치는 노화는 이러하다. 그리고 이것은 곧 우리 부모님의 삶일 수 있고, 그 다음은 우리 자신들의 내일이다. 외모지상주의 시대와 함께 젊음 지상주의 시대인 것 같다. 인공적으로 주입한 젊음으로 피부가 탱탱해진다고 해서 인간의 조건인 노화가 멈추지는 않는다. 매일 열심히 운동한다고 해서 건강이 내 계획대로만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노년을 위한 최상의 준비는 내게 오는 노화를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태어난 그 날로부터 우리는 죽음에 한 발자국씩 더 가까이 가는 삶을 산다고 생각하며 매일의 ‘small death’를 기꺼이 수용하며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우리 마음은 더 건강해지고 탱탱해질지 모르겠다.


젊음을 잃은 공허감 가득한 벌로서의 노년이 아니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이라 노래하는 천상병 시인의 마지막 나날을 닮은 노년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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