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주문 안 해?

아, 그러게. 날도 덥고 자꾸 까먹네.


월요일, 나는 우리 교회 고등부 수련회 강의로 아침 일찍부터 집을 비웠다.

이런 저런 일처리를 하고, 수련회 준비를 하며 남편 혼자 낮시간을 보냈다.

'놀월'을 각자 보내고 늦은 오후에 집에서 합류.

저녁을 먹고 정리하며 커피를 묻기에 아, 커피가 떨어졌구나 했다.


아침에 나서며 차에서 마실 커피를 내렸다.

원두가 얼마 남지 않았었으니 혼자 집에 있으며

남은 커피를 다 마셨겠구나, 어쩌면 모자랐겠구나 싶었다.


오늘도 안팎으로 보일러 빵빵하게 돌린 날씨로 시작한다.

아침 먹고 설거지 하고 청소기 한 번 돌리니 아이스커피 생각만 간절하다.

세수하고 커피 한 잔 타서 앉으면 딱인데....

커피가 없지. 흠. 커피가 없어. 쩝쩝. 허전하다. 허전하다. 허전하다.


아련한 마음으로 커피장을 바라보는데 밀폐용기에 커피알이 보인다.

헛것이 다 보이네! 아니다. 헛것이 아니다.

아이스 한 잔 내릴 원두가 남아있다!!!!!!!


그러니까 어제 남편이 '커피 주문 안 해?' 라 했을 때 다 떨어졌단 얘기가 아니었다.

그렇게 물을 때는 분명 커피 한 잔 마시고 싶단 얘기였을 텐데.

낮에 다 털어 마시고 없어서 아쉽단 말인 줄 알았는데. 커피가 있다!


그 어느 시점보다 아침 커피의 결핍감이 가장 크다.

내가 혼자 마신다면 저녁 커피를 굶고 다음 날 아침 커피를 살린다.

어제 집에 혼자 있으면서, 아니 함께 있던 저녁에도 간절했을 커피.

앞뒤 재지 않고 다 털어 마시는 사람이 아니다.

내일 나는 출근하여 사무실에서 마실 수 있지만 정신실이 집에 있는 날이네.

라는 자각도 없이 그저 그 커피를 남겨두었을 것이다.

뭔가에 이끌려 커피 본능을 참았을 JP.


아침 커피를 지켜준 남편의 마음은 찜통 더위 따위 초월하는 따스함이다.

생색 낼 줄도 모르는 이 사람은 새벽 KTX를 타고 장례예배 인도하러 가버리고 없다.

그가 무의식적으로 지켜낸 커피를 경건하게 갈아 내린다.

얼음 꽉꽉 채워서 내린 아이스 핸드드립 커피가 시원한데 따스하다.

남편을 위해 착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되는, 푹푹 찌는 따스한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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