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는 타이밍에, '잠쉬만요오~ 어뉘 옵퐈한 템포 쉬고 가실게요!'하는 작당입니다. '꽃다운 친구들_방학이 일 년이라면' 말이에요. 채윤이가 하고 있는 에프터 스콜레 '꽃다운 친구들'을 아직도 홈스쿨링 정도의 대안교육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딱 일 년, 잠시 쉬고 가는 것입니다. 고등학교를 포기하는 것도 아니고, 인생을 포기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랍니다. 이대로 계속 아웃사이더로 살겠다는 뜻도 아니고요. 진로를 고민하며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하지만 본질적인 취지는 일 년 길게 놀아보자는 것입니다. 벌써 마지막 여행을 준비하고 있고 마지막 가족모임 공지를 들어버렸네요. 역시 방학의 시간은 참 빨리 흘러가요. 5교시 수업 마치는 종을 기다리는 시간은 그렇게나 긴데 말이에요.


꽃다운 친구들 최고의 수혜자는 김채윤이다, 나팔을 불고 있습니다. 말이 방학이지 꽃친에서 하는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진도 따라 기록하기도 어렵습니다. 만남이 다양하고 경험이 다채로운데다 꽃친에 제대로 꽂힌 채윤이의 변화 또한 풍성합니다. '방학이 일 년이라서' 카테고리에 제목 달아놓고 날린 것이 한 둘이 아니네요. 어찌 채윤이만의 꽃친일까요. 아이들, 부모들, 선생님들의 꽃친이고 나름의 의미와 이야기가 있을 것입니다. 꽃친에 연루된 사람 수만큼의 의미가 있겠지요. 그럼에도 의미는 오직 발견하는 자의 몫이니 끝없이 의미를 발견하고 있는 채윤이가 최고 수혜자인 걸로. 셀프 영예를 수여하고 지켜보겠습니다.


꽃친 의영이네서 가족들을 초대해주셔서 오산의 자그마한 교회에서 모였습니다. 마당에서, 거실에서, 목사관 옆 교회에서, 아이들끼리, 엄마들끼리, 아빠들끼리, 또 일부 엄마들끼리 깔깔깔 호호호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엔 뻥뻥, 번쩍번쩍 불꽃놀이까지! 그리고도 아쉬워서 몇 가정은 에프터 스콜레 아니고 에프터 수다를 떨다 12시가 되어 집에 돌아왔습니다. 맛있는 음식, 편안한 대화, 빼놓을 수 없는 꽃치너들의 까불까불 놀이들. 이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맛입니다. 그런데 최고 수혜자 채윤이에겐 그 이상의 좋음이었으니! 방학이 일 년이라서 발견한 또 하나의 의미. 두둥~


다섯 살에 채윤이가 처음으로 유치원에 갔습니다. 유치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제가 프리랜서로 전환했기 때문에 금세 같은 반 엄마들과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럭저럭 잘 지내고 채윤이 친구들 데리고 제가 음악수업도 하고 그랬지요. 그 해를 보내고 애써 마음먹은 것은 아닌데 '엄마들과 어울리면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흔히 아는 것처럼 엄마들의 대화는 아이들 영어, 수학, 특기 교육 얘기니 끼어들 수가 없었고요. 가만히 듣다 오는 것만으로도 기빨림과 동시에 불안과 걱정지수 상승이었습니다. 성격도 까칠한데다 교육관은 더 까칠하니 버텨나질 못한 것이지요. 일을 핑계로 학부모 그룹과는 자연스럽게 거리를 유지하고 지냈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덕분에 아이들에게 공부 스트레스 주지 않고 사교육 걱정 내려놓을 수 있었지만 잃는 것도 있었지요. 현승이는 물론이거니와 특히 채윤이에게 결핍감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일곱 살 때 다닌 유치원은 남양주의 작은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이었는데 산 중턱이 있었지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엄마와 카풀을 했고 일하는 채윤이 엄마는 등교 담당이었습니다. 유치원 마치면 학교 운동장에서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하염없이 놀고, 엄마들도 등나무 아래서 노는 거죠. 그러고도 집에 바로 오는 게 아니라 근처 친구집으로 몰려가 부침개를 해먹고..... 다 좋은데 우리 엄마만 없는 채윤이는 그 시간이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놀이의 신 채윤이의 놀이 본능보다 엄마 보고싶은 마음이 더 컸던. 


의영이네 가족모임 다녀와서 채윤이는 행복 만땅이었습니다. 갈수록 죽이 맞는 친구들과 죽도록 노는 것도 좋지만, 그것을 모두 새로 산 아이폰으로 찍어서 인생샷으로 간직하는 것도 좋지만, 옆에서 수다 떠는 엄마들 사이에 우리 엄마가 있다는 것이 그렇게 좋은 일인 겁니다. 가족동행 프로그램인 꽃친에 꽃친 최고 수혜자의 가족으로서 마음으로 함께 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이것 자체가 채윤이 마음의 구멍 하나를 채워주는 고운 작업이 되고 있습니다. '엄마, 엄마랑 함께 해서 너무 좋아. 친구들이 엄마를 좋아하고 엄마가 계속 함께 있고....... 너무 좋아' 일곱 살 채윤이로 돌아가 그 시절 널따란 운동장의 허전함을 이제라도 조금 채울 수 있다 생각하니 역시, 이 바닥 최고 수혜자는 우리!


이렇듯 꽃다운 친구들과의 만남은 채윤이 내면으로 가서 치유의 반창고 하나를 붙입니다. 상상 밖의 나.비.효.과.입니다.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개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의미의 나비효과 말입니다. 꽃친을 선택한 효과가 마음 깊은 곳까지 다다랐습니다. 내면 깊은 곳으로 가는 것이 얼마나 먼길인지 알기에 하는 말입니다. 게다가 또 하나의 나비 효과가 있답니다. 일 년 쉬는 채윤이를 모두가 부러워했지만 단연코 아빠의 부러움이 1등이었습니다. 태생적으로 사유와 성찰을 위한 다락방이 필요한 사람인데 본성을 거스르며 5년, 길게는 11년을 달려온 것입니다. 꽃치너 채윤이를 보면서 '부럽다, 부럽다' 하며 부모모임 가서는 '아빠들 꽃친은 안 해요? 아빠들도 꽃친 하게 해주세요' 했지요.


12월에 새로운 교회로 가게 되었습니다. 사임과 부임 사이 쉼표 찍는 시간을 간절히 원했지만 사정상 단 한 주도 어렵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임이 당겨지는 믿기 어려운 일이 발생, 남편이 꼭 가지고 싶었던 시간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당장 이번 한 주 침묵기도 피정에 갔습니다. 4박5일간 대침묵 속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순간순간 그를 위해 기도하게 되고 기도하다 뭉클해지기도 합니다. 남편의 이 모든 여정 역시 꽃친 나비효과라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길을 떠나는 용기, 영혼의 안식에 대한 간절한 바램, 이런 것들은 채윤이와 함께 꽃치너의 부모로 지낸 시간의 나비효과입니다. 


남편이 피정에 들어간 다음 날이며 의영이네서 가족모임을 한 다음 날이었던 어제 아침 묵상시간이었습니다. 메시지로 읽는 역대하의 마지막 장입니다. 유대 왕들의 비틀거리는 걸음을 긴 시간 묵상했왔지요. 결국 바벨론에 패망하고 포로로 잡혀가는 것으로 그 걸음이 끝납니다. (그분의 역사는 물론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겠지요) 역대하의 마지막이 이렇더군요. 놀랐습니다. 70년의 포로생활은 그간 지켜지지 않았던 안식일을 채우는 기간이었다니요. 질주를 멈추고 쉬는 일은 하찮은 것 같지만 작은 일이 아닙니다. 나비의 연약한 날개짓 그 이상입니다. 아이도 엄마도 아빠도 목사도 멈추어 돌아보지 않는 것은 포로생활로 가는 어두운 길을 헤매는 것과 같습니다. 대학입시, 돈, 성공, 명예, 자기 숭배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서 늘 멈추고 돌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꽃다운 친구들의 나비 효과, 엄청납니다.


"생존자는 너 나 할 것 없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느부갓네살과 그 집안의 종이 되었다. 포로와 종의 생활은 페르시아 왕국이 세워질 때가지 계속 되었다. 이것은 예레미야가 전한 하나님의 메시지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황폐한 땅은 긴 시간 안식에 들어갔다. 그동안 지켜지지 않았던 모든 안식일을 채우는 칠십 년 동안의 안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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