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이 주일을 껴서 가는 일정이었었다. 나는 단박에 선택했다. 수학여행 가지 않고 학교에 남아서 자습하는 것으로. 담임선생님의 온갖 설득과 핍박에 굴하지 않았다. 기독반 지도 선생님까지 따로 불러 설득하시다가 , 너 그런 식으로 하면 바리새인이야.’하시며 크게 화를 내셨다. 고딩 바리새인이었던 나는 선생님들의 핍박을 온전히 기쁘게 여겼으니, 과연 나는 엄마의 딸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 할 때였다. 주일에 행사가 있어서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직딩 바리새인이었던 나의 선택도 하나였으니 장문의 편지와 함께 사직서를 써서 냈다. 당시 나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소녀(아니라 처녀)가장이었으니 역시 나는 주일 성수의 사도엄마의 딸이었다.

이런 주일성수에 대한 전설적이 경험담을 간직한 채 '주일성수도 안 하는 것들이!' 하면서 자고했으니 모름지기 바리새인의 풍모는 다 갖춘 셈이었다. 20, 교회의 딸로 열정을 다하여 살았지만 정작 내면은 공허한 날이 많았고 불편한 관계들이 산재했던 이유였을 것이다. 토요일 오후 청년부 주보 만들기부터 시작해서 주일 늦은 저녁의 청년부 리더모임까지 쉴 틈 없이 몸을 불살랐다. 그러다보니 주님께 해드린 것이 너무 많아서 딱히 감사의 제목도 없었던 것 같다. 내가 복을 받았다면 그것은 응당 받아야 할 품삯 같은 것이니까. 어쨌든 감사는 오히려 주님이 내게 하셔야 할 것이었다.

 

[크로스로] '정신실의 일상愛' 입니다.
원글은 링크 따라가서 보세요. 
사진은 크로스로에서 가져왔습니다.

 

http://www.crosslow.com/news/articleView.html?idxno=1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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