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세 엄마는 주일을 기다리며 산다.
눈이 흐려 성경을 못읽어, 외우고 있는 몇 구절을 의지해 주중을 버틴다.
같은 구절을 외우고 또 외우며 주일을 기다린다.
걸음걸이가 불안하여 나댕기는 것도 버거운 엄마는 단 한 번의 외출, 주일을 기다리며 산다.
두 번의 고관절 골절과 수술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줄 알았던 자리여서 더 애틋한 자리.
주일예배, 주일성수에 목숨 거는 엄마 덕에 사춘기 이후로 엄청난 갈등에 휩싸여 살았었다.
그래서 엄마 입에서 주일성수, 주일예배가 나오는 순간 내 속에선 신경질이 자동으로 나온다.
엄마의 유일한 낙이 주일예배, 권사기도회라는 걸 아는 착한 동생이 잘 모시고 있다.
주일마다 김포에서 흑석동까지 모셔가고, 마치는 시간에 모시러 가고.
동생네가 주말에 집을 비워야 해서 아기를 맡기듯 엄마를 내게 맡겼다.
주말에 엄마를 맡으며 교회 모시고 가는 거룩한 소임까지 함께 맡았다.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 4층을 오르고 내리는 것은 91세 엄마에겐 가장 어려운 미션이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집에 와 계단을 오르는데 저 치렁치렁한 치마.
"아이고, 아이고, 헤에, 휴우........"
한 걸음 한 걸음도 벅찬데 치맛자락이 보통 걸리적거리는 게 아니다.
치마를 잡아 매보기도, 속바지 안에 집어 넣어보기도 하나 단출해지질 않는다.
"권사님들이 바지 입고 댕기라고들 혔샀는디.... 노인네가 근천스럽게(거추장스럽게) 치마 입는 것이..... 주책이라고 헐깨미(할까봐) 부끄럽기는 혀도..... 나는 평생이 주일날 바지 입고 예배 드린 적이 읎어서.... 하나님 앞이 가는디.... 오뜨케 그르케 헐 수가 옶어서..... 히유우...... 히유우...... 미안허다. 내가 오래 살어서 이르케 자식들 고생시키고....."
1층 현관을 들어서 세월아 네월아 계단 오를 생각에 한숨이 나왔는데
정장 쫙 뺀 엄마의 복장을 보니 복장이 터질 것 같았다.
20 년은 됐을 정장, 20여 년 동안 주일에만 입었던 엄마의 정장.
'잘 걷지도 못하는 노인네가 이런 옷을 입냐'고 한 마디 하려다 참았다.
4층까지 오르는 기나긴 시간동안 엄마의 '히유~우, 히유~우, 중얼중얼'에 마음이 풀렸다.
그리고 여자 엄마의 뒷모습이 예뻐 보였다.
# 교회에 취미가 있는 여자들은 의상에 신경을 많이 쓴다.
# 16세 중딩 여자도 주일 아침엔 옷 고르느라 한 시간 보낸다.
# 16세나 91세나 여자들의 주일 아침은 두근두근 옷과 화장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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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길상 2015.10.08 12:07
암요. 저희집에 있는 34세 여자 분도 주일 아침에 옷 고르느라 꽤 시간을 쓰곤 하시지요. 토요일 밤에 미리 골라놓는게 어떠냐 권하는데 잘 안 먹힙니다. 토요일에 고르고, 일요일에 바꾸기도 해서 역시 일요일 아침은 분주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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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또 2015.10.10 09:45
저번에도 말씀드린적있는것같은데
선생님 어린이성가대지휘하시던시절
선생님이 주일엔 늘 깔끔한 치마정장이셨다면 평일엔 캐쥬얼하게 입는 모습을 보며 나도 크면 샘처럼 입어야지 했거든요~
그런어릴적 영향때문인지
저도 주일엔 좀 신경쓰는편이죠ㅎㅎ~
그래서 저번주는 쭈미가 교생선생님 스타일이라고했었죠ㅋㅋㅋㅋ
울할머니도 바가지에 화장품 담겨있는거 꺼내서 화장하시던모습이 생각나네요~~~
급 나이들어도 스모키메이크업할것같은 우모씨도 그려짐ㅋㅋㅋ -
새실 2015.10.10 21:52
언니 난 그냥 가끔 언니 어머님 생각이 나고 그래서 괜히 순간 울컥하곤하는데 엄마에 대한 언니글 볼때면 그냥 마음이 먹먹하고 아려요. 4층계단을 그래도 오르시는 어머님이 참 감사한 밤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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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y 2015.10.11 09:15
뱃속부터 주일성수교육 철저히 받고 자란 동지여 ㅋㅋ
울엄마는 오매불망 주일을 마지막 3년은 방안에서 보내셨지 기독교방송과 함께.
어머니 옷 색상 엄지 척!
오랜만에 4층 오르내리셨을텐데 무거운 치마(저 주름치마가 치마폭이 크쟈녀) 입으시고 대단하시네.
울시엄니도 저런 치마가 여러벌 있으시던데 어느 날 걷다 밟아서 넘어질 뻔한 그 날로 다 숨겨버렸어.
이제 가벼운 바지로 갈아타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