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들의 기대가 가장 높은 주일 저녁의 메뉴는 '닭볶음탕'이었다.

('닭도리탕'아니고 '닭볶음탕'이라고 현승이가 아무나 붙들고 강조한다.)

닭을 사러 망원시장에 갈까 하다가 동네 마트에 갔다.

최근에 동네 마트 하나가 문을 닫았다.

건물이 철거되는 모양인데, 굳이 철거가 아니라도 오래가긴 힘들 거라 생각했다.

상치는 늘 시들어 있었고, 무순은 상해서 문드러져 있었다.

 

그런데 이곳 정육점은 조금 달랐다.

정육점 아저씨! 아, 진짜 재밌는 분이었다.

삼겹살을 한 근을 사려면 아저씨만의 삼겹살적 세계관에 대해 한참 들어 드려야 한다.

삼겹살로 시작하지만 결국 결론은 늘 같다.

좋은 고기를 가져오기 위한 경로가 따로 있고,

아저씨는 그 경로를 알기에 좋은 고기를 가져올 뿐 아니라 

(거의 손해 보면서) 싸게 팔고 있으며,

다른 정육점들이 얼마나 성의 없이 장사하는지가 하는 것들이다.

난 이런 데 걸려들기 딱 좋은 성격이며 연령대의 주부라서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웠다.

헤~ 웃으면서 조바심 나는 마음을 누르며 들어 드려야 했다.

 

헌데 그 마트가 없어졌다.

내게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니다.

없어질 만한 마트가 없어졌다.

오늘 닭을 사러 또 마트에 갔는데...... 갔는데......

어, 없어진 마트 정육점 아저씨가 거기 정육 코너에 딱 계시는 것이다.

"어, 아저씨. 여기 계시네요.'

반가워서 한 마디 했는데, 아뿔싸! 뇌관을 건드렸다.

바로 네버 앤딩 스토리가 시작되었다. 

이 쪽으로 온 지 두 달 됐다. 명절 때부터 이미 와 있었는데 몰랐냐.

나를 아는 아줌마들은 이미 다 알고 이리로 왔었다.

명절에는 소고기들을 많이 찾는데 내가 파는 소고기는 블라블라블라.................

또 다시 붙들려 있었다.

결재한 내 카드와 영수증을 손에 들고 건네주질 않으시니 더욱 자리를 뜰 수가 없다.

 

'하여튼, 여기서 다시 뵈니까 좋네요' 하고 나오는데 기분이 막 좋아졌다.

아, 이 아저씨 잘못 걸리면 지겹지만 캐릭터가 살아 있어서 좋다.

그저 그렇고 그런 많은 고기 파는 아저씨 중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또렷하게 각인시키는 매력이 있다.

익명의 고상한 수백 수천의 사람들보다 캐릭터가 살아 있는 한 사람과의 만남이 인간적이라고 느껴져서일까?

 

기분이 좋은 김에 꽤 무거운  비닐 봉투 들고 집으로 오는 길에

역시나 재건축 때문에 이사를 한 카페를 일부러 찾았다.

원두 100 그램을 사면서 전에 없이 말을 막 걸었다.

새로 옮기고 장사가 더 잘 되냐,

집 앞에 있을 때와 달리 마음은 안 그런데 자주 오게 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아쉽다.

처음 집 앞에 카페를 열었을 때는 꽃미남이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살지 쪄서

이젠 후덕한 아저씨 삘이 나는 카페 사장님도

'처음 제 손으로 만든 장소라 저도 많이 아쉬워요' 했다.

내 스타일을 아니지만 자꾸만 말을 주고받자니 캐릭터가 살아나는 것 같았다.

 

카페도 잘 되고,

네버엔딩스토리 정육점 아저씨도 잘 되었음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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