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공동체에서 나와 어딘가를 간다는데...

도대체 거기가 어딘지 사전 지식이라곤 없었다.

 

어떤 사람이 '거기는 겨울보다 가을 단풍 때가 더 이뻐'하는 얘기를 들었을 뿐이다.

까펜가? 아니면 무슨 전시관?

 


 

입구에 들어서면서 확신을 했다. 아~ 카페구나.

바닥이며 담을 돌로 쌓아 만든 멋진 카페같은 곳인데 카페라 하기에는 건물이 너무 후지고,

무엇보다 써빙을 보시는 분이 웬 할아버지라는 게 영 부적절했다.

커피들 한 잔 씩 들으라고 하시면서 물을 끓여 나오시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싶었다.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아서 돌로 만든 의자에 죽 둘러 앉았다.

인솔해 가신 전도사님이 '할아버지 얘기 좀 들려 주세요'하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당신 얘기를 쏟아 놓으셨다.

 


 

얘긴즉슨, 여기 있는 모든 돌이 30여년 동안 할아버지 혼자서 옮겨다 놓으신 것이다.

저 많은 돌들을 옮겨다가 이렇게 멋진 정원을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20대의 젊은 시절에 가족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병든 몸으로 이 산골에 들어 오셔서

움막을 하나 짓고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노래를 가르치셨단다.

비가 오는 날에는 땅이 젖어 웅덩이가 생기고 흙탕물이 되는데 돌을 몇 개 놓고 밟고 다녔더니 '거 좋네' 하시고는

시작하신 일이 여기에 돌을 옮겨다 놓는 것이었다.

 

그렇게 살아오신 세월이 50년이 된다는 것 아닌가?

혼자 그렇게 고독을 벗삼아, 고난을 친구 삼아, 돌을 가족 삼아 살아오신 것이다.

고독과 고난의 길이 천국 가는 가장 빠른 길인 것을 삶으로 배우며 살아오신 것이다.



 

그렇게 사시다 결혼하신 지 8년이 되신단다. 결혼으로 따지면 우리랑 동기가 되시는 것이다.^^

결혼 8년차 답게 할머니랑 어젯밤에 티격태격 하셨단단. 할머님은 지금 방에서 성경을 읽으면 근신 중이라면 농담도

잘 하셨다.

 

저 많은 돌들을, 아니면 저렇게 큰 돌들을 어떻게 혼자서 다 옮겼단 말인가?

모두들 저걸 어떻게 옮겼느냐고 하는게 하루에 한 두 개씩만 옮겨도 30년이면 어떻게 되느냐 반문하신다.

그러면서 '저 놈은 15년, 저 놈은 7년'이 걸렸다면서 엄청나게 큰 돌들을 가리키셨다.



 


 

마당 한 가운데 연못과 연못 옆에 세워둔 경고문(!)이다.^^

 

오랜 고독의 시간 동안 고난도 개구리도 돌도 바람도 친구가 되지 않겠는가?

자작곡의 노래도 많이 있으시단다. 디카를 동영상 모드로 돌려 놓고 '노래 좀 들려 주세요' 했다.

그랬더니 작품해설과 더불어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가르쳐 주셨다.

 

'돌이 돌이 돌돌,

 돌이 돌이 사네

꽃도 꽃돌

꽃돌 사네'


어찌나 멜로디와 가사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지 여행 내내 애들과 함께 불러댔다.

 

당신의 얘기를 다 풀어 놓으신 후에 '이렇게 힘든 삶은 누가 살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살라고 부르셨으니까 살지'

결국에 '소명'이다.

소석원으로 가던 차 안에서 남편과 했던 얘기다. 지난 밤 만난 김인수박사님을 생각면서

'이 분은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에 살고 계신 것 아닌가?' 즉 '소명' 얘기였다.

이 할아버지도 '소명'의 삶을 사셨다는 것이다. 외로움과 고독 속에 묵묵히 돌을 나르면서 삶을 가꾸라는...

그렇게 살다보니 결혼도 하고 지금처럼 행복한 날도 살아본다고 하신다.

 

'소석원(笑石園)'

돌들이 웃는 정원?

이 분이 사시는 동네 이름이 '鳴石마을'이란다. '우는 돌'들이 '웃는 돌'들이 된 것이다.

어디 이 할아버지의 인생이 '웃음'이 웃어지는 삶이겠는가?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당신 스스로 웃고 계셨고,

돌들이 주인을 따라 웃고 있고, 소석원 곳곳에 유머와 웃음이 베어 있다.

 

부끄럽다.

울 일도 아닌 일에 가슴을 치며 울어대고, 분통을 터뜨리고, 억울에서 펄쩍펄쩍 뛰는 내 삶이 부끄럽다.

소석원 할아버지의 웃음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야 겠다.

그 소명이 무엇이든지, 고난이든지, 외로움이든지, 짓밟힘이든지...

소명에 충실한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결국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웃음을 웃게 된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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