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마지막 주일에 예배가 없다는 말을 한참 전에 들었다. 일명 ‘흩어지는 예배’. 식사 당번 팀이 네 팀이라 다섯 째 주 식사문제 때문인가, 이러저러 그러한가 보다 싶었다.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들어본 적이 있어서 그다지 신선한 느낌은 아니었다. 두어 주 전 설교 시작 전에 흩어지는 예배에 관한 안내를 들었다. 아하, 이러저러한 뜻이 아니라 요래요래한 뜻이 있었구나! 싶었다. 광고 내용이며, 교우들 카톡방에 정리되어 올라온 내용은 이러하다.

 

종교개혁기념주일에 우리 이우교회는 <흩어지는 예배>를 드립니다. ‘모여서’ 무언가를 듣거나 배우는 게 아니라, ‘흩어져서’ 따로 예배를 드립니다. 저는 이 예배가 성도님들 각 개인마다 남다른 의미와 은혜가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개교회주의에 중독된 우리의 혼미한 정신을 흔들어 깨워 그리스도의 몸을 좀 더 광대하게 체험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혹시 주일 본교회에서 헌신하여 섬기다보니 부모님 또는 자녀들과 뿔뿔이 흩어져 예배드리고 있는 분이 계신가요? 이번 기회에 가족들과 함께 예배드리시길 바랍니다.


종교개혁기념주일이니, 이참에 타교단 예배를 드려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감리교, 루터교, 성공회, 성결교, 순복음, 장로교, 여러 교단 교회가 있지요. 좀더 다른 방식으로 예배드리는 교회를 가보는 것도 꽤 의미있을 것 같습니다.


작은교회에서 힘겹게 섬기는 친척이나 친구가 있나요? 그런 교회에 방문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청년 시절 함께 했던 선배가 사역하고 있는 제천의 작은 교회를 방문하려고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흩지 않고 불러 모으셨습니다. 지난한 여정 속에서 흩어지지 않고 여기 이삭의우물에 모였습니다. 이제 한 번 흩어져 보려 합니다. 더 잘 모이고, 우리의 소명에 더 충실코자 함입니다. 주님께서 동행해주시고 은혜 주시리라 믿습니다.


아! 그리고 말씀 드렸던 세 가지 기억하시죠?


1. 10분 일찍 가서 그 교회를 위해 기도하기

(우리 교회인양 기도합니다)

2. 교회 밥 주면 밥 먹고 오기

(식구는 같이 밥을 먹는 것입니다)

3. 헌금 꼭 하고 오기

(평소보다 더 많이 하십시오)


내겐 특별히 세 가지 숙제(지침)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 그렇지! 내 교회 네 교회가 없다.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다. 어느 교회 가서 예배 드리더라도 가르고 경계 세우는 버릇 잠시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살짝 감동이 밀려왔다. 이후 교회 모임에서 간간이 들리는 대화. “집사님은 이번 주 어느 교회 가?” 허용된 일탈을 계획하는 대화가 신선한 설렘으로 들렸다. 한 집사님은 어머님 다니시는 교회에 가신다면서 어머니가 얼마나 좋아하시겠냐신다. 수십 년 교회 생활 하면서 주일 봉사 같은 것에 매여서 다른 교회 가서 예배 할 수 있다는 상상을 못했다며. 수십 년 만의 색다른 효도가 되는 것이다.





우린 제천 의림지 옆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예배 드렸다. 20년지기 친구 M의 남편 K 목사님이 섬기시는 교회이다. 작은 교회 앉아 예배 드리며 어릴 적 자랐던 충청도의 교회가 생각났다. 그때의 우리 아버지, 우리 엄마처럼 시골의 작은 교회를 오랜 시간 섬기며 살아가는 친구와 목사님. 친구에 대한 마음 떄문이 이미 남의 교회 같지 않다. 그것이 아니라도 이 땅의 모든 교회, 내 교회 네 교회일 수가 없다.


덤으로 얻은 것이 많다. 제천의 가을에 머물러 20년 전 청년 시절 함께 했던 추억을 걸었다. 내겐 친구, 남편에겐 누나인 M과 함께 긴 시간을 보내다보니 그 시절 번뇌 가득한 얼굴로 기타 치던 종필이가 다시 살아오더군. 목회자 커플 네 사람이 주일 아침 예배로 시작하여 밤늦도록 함께 했다. 함께 탁구 치고 밥 먹고 수다 떠는 모든 시간이 좋았다. “주일을 이렇게 함께 보내다니! 믿어지질 않네. 흩어지는 예배, 좋네!” 형편과 처지는 다르지만, 답이 없는 얘기지만 비슷하고도 다른 이야기를 주고 받는 시간 동안 마음이 펴지고 얼굴이 펴졌다. (주름은 안 펴진다 ㅠㅠ)


친구가 챙겨준 잘 익은, 밥을 부르는 맛있는 김치 한 통은 덤앤덤.




흩어지는 예배의 복을 밤 늦도록 누리고 청풍호를 내려다보며 일박. '자드락길'이라는 처음 만난 길을 걸었, 아니 기어 올랐다. 포기하지 않고 가장 높은 전망대까지 올라 만난 멋진 풍경은 덤앤덤덤. 걷는 길인 줄 알고 시작했으나 등산 길이었다. 꽃길만 걷고 싶은 인생길, 언제 한 번 상상한 그대로의 꽃길이었던 적 있었냐며, 되돌아 내려가지 않았다. 여러 번 뷰 포인트를 만났다. '이 정도면 됐네' 하고 돌아설 수도 있었는데 이왕 내딛은 길 힘들더라도 한 번 끝까지 가보자. 어머어머, 중간에 포기했으면 어떡할 뻔 했나! 멀리 뵈던 바로 그 전망대에 올라서 본 풍광은 웬만했던 아래 쪽 풍광과 비교할 수 없었다. 포기하지 않고 얻은 안구정화 풍경 안에 그림자로 안긴 저 사진 한 장은 덤앤덤덤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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