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며 식탁을 바꿨다. 6인용이다. 바꿀 때도 되었었다. 특히 의자 두 개는 언제 주저앉을지 모르는 상태였다. 의자만 좀 편안한 걸로 바꿔야지 하고 있었다. 남편의 뜻이 확고했다. 바꾼다, 꼭 6인용으로 바꾼다. 4인용 식탁이 좁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식사하다 서로 감정이 상하는 일이 유난히 많았는데, 이유 중 하나가 비좁은 식탁 때문이라는 진단이었다. 그랬다. 맛있는 걸 해서 맛있게 먹으며 얘기가 길어지다, 마음이 쩍쩍 갈라진 상태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넷이서 정말 이렇게 저렇게 얽혀 싸웠다. 부부가 투닥투닥, (어릴 적부터 늘 있던 일이지만 유난히 심각하게) 남매끼리 티격태격, 거기다 전에 없던 국지적도 등장했다. 모자가, 부녀가 서로 더는 못 봐주겠다는 식으로 부딪쳤다. 코로나 블루 현상일 것이다. 각자 자기 문제로 어려운데, 어려운 넷이 붙어 있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나 꼭 그 때문도 아니다.

 

 

갱년기 현상이기도 하다. <와우결혼 : 와서 보라 우리의 결혼을> 이런 책을 함께 쓸 정도로 자신감 충만한 부부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각자 고유한 존재이다. 다름이 선물이 되어 더욱 풍성한 일상을 살기도 하지만 달라서 어려운, 그 고통 또한 여전하다. 연인과 부부처럼 친밀한 관계에서 사랑의 기술은 싸움의 기술이다,라고 강의에서 주장하는 바. 잘 싸우고 잘 화해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 부부의 필살기이다. 양상이 조금 달라지긴 했다. 갱년기라고, 낯선 생애 주기를 살면서 에두르고 포장하는 기술력이 떨어졌다. 유치해졌다. 식탁에 나란히 앉아 "아 쫌, 다리 내리고 앉으라고. 좁다고. 옆으로 좀 가라고. 내 자리 여기까지 침범했다고!' 

 

갱년기, 그러니까 인생 전후반을 나누는 전환점이다. 식탁 자리싸움만은 아니다. 생애 전반 애써서 달려온 중년의 남녀가 인생 내리막길 앞에서 영적 현기증을 느낀다. 낯선 내적 갈등이다. 자신과의 새로운 싸움이다. 자신과의 싸움을 자신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밖을 향해 으르렁거린다. 가장 편하고 만만한 남편에게 싸움을 걸고 트집을 잡는다. 갱년기 유치한 부부갈등은 이런 것이다. 날씨 얘기하다가도 싸우고야 만다는 그런, 한창 좋을 때 말이다. 여기에 성인 자아를 찾아 어린 시절 자신과 부대끼고, 페미니스트로서 가부장제와 투쟁하는 딸 채윤이도 한몫했다. 가부장제를 대표하는 아빠와, 어린 시절의 폭군 엄마와 붙게 되는 것이다. 현승이라고 잠잠할쏘냐. 엄마 중독자에서 벗어나 아빠와 가까워지고 싶은 사춘기 끝 현승이는 또 엄마와 싸운다. 글 몇 줄로 써보니 간단한데, 돌아보면 여러 번 폭풍에 휘말린 한 해였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게 다 팬데믹 때문이... 아니라 가족이 성장하기 위한 통과의례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합리적이고 어떤 면에서 과학적인 남편의 해결방법은 일단 공간을 넓히는 것이었다. 마주 앉는 식탁을 바꿔야 한다! '이삭의 우물' 교회 목사가 되어 붙든 이름이기도 한 '르호봇'을 내세웠다. 이삭이 우물로 인한 여러 번의 다툼이 끝에 마지막으로 판 우물의 이름이 르호봇이다. 르호봇은 '넓은 공간'이란 뜻이다. 넓어져야 한다. 넓어지지 않고는 다툼을 멈출 길이 없다. 마음이 당장 넓어지면 좋겠지만 그건 너무나 요원한 일이다. 일단 남편의 뜻을 따랐고, 6인용 식탁을 샀고, 막상 들여놓으니 너무 길다 싶었지만 결국 좋은 선택이었다. 넓어졌다. 몸을 자유로이 움직일 공간이 생기니 둘러앉은 마음들에도 여유가 생긴 것 같고.

 

1월 1일 저녁 가족 송년 리추얼 'Big Family Day' 시간을 가졌다. 현승이까지 글을 쓸 수 있게 된 때부터 시작하여 10년이 훌쩍 넘은 가족 행사이다. 한 해를 돌아보고 새로운 한 해를 그려보는 시간이다. 2020년의 기억으로 마인드맵을 그린다. 작년에 썼던 기도제목을 꺼내 읽어보고 거기 비추어 지난 일 년을 돌아본다. 한 해의 기도제목을 적는다. 남편과 아이들이 나누는 이야기 속에서 나를 보는 것이 아팠다. 여러 좋은 이유들을 대면서, 가족들을 찔러내는 내 말이 보이고 좁아터진 마음이 보여서. 어쩌다 이 찬양 얘기가 나왔는지 준비하면서 시와 그림의 <항해자>를 듣게 되었다.    

 

 

나 비로소 이제 깊고 넓은 바다 간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내 손을 주는 결코 놓치지 않으셨다
나 비로소 이제 폭풍우를 뚫고 간다
비바람에 흔들리는 나약한 나를 잡아주시는 그분은 나의 주님
주 나를 놓지 마소서 이 깊고 넓은 바다에 홀로
내 삶의 항해에 끝이 되시는 주님이시여 난 의지합니다
날 포기하지 마소서 나 잠시 나를 의지하여도
내 삶의 항해에 방향을 잡아주시옵소서

 

어쩐지 2021년 인생의 항해를 다시 출발하는 느낌이다. 2020년, 가장 큰 사건은 엄마를 천국에 보내드린 일이다. 묘하게도 엄마를 애도하는 시간을 보내고, 억지로 그 글을 마침표를 찍고 난 하반기에 아버지가 새롭게 만나졌다. 아니 새로울 것은 없다. 긴 세월 부둥켜안고 울며 뒹굴었던 그 아버지이고, 그 이야기들이다. 아버지 부재에 붙들려 살아온 40여 년 인생이 엄마 떠난 자리에서 새롭게 보인 것 같다. 아버지 엄마가 다시 보이니 내가 다시 보인다. "아버지 없는데 엄마까지 죽었으니 나 정말 고아야! 누가 나 좀 돌봐줘." 평생 내 속에서 훌쩍거리던 아이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내가 이미 어른이니 나이 든 부모님은 떠나시기 마련이지. 이제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은 마음이다. 계시처럼 주어진 올해의 찬양이다.

 

 

 

 

 

주방에 비해 과한 크기라고 느껴져 불편했던 6인용 식탁이 갈수록 참 좋다. 내 취향과 내 방식으론 상상도 못할 해결 방식을 제시한 그의 아이디어와 추진력이 고맙다. 4인용은커녕 혼자나 겨우 앉을 찻상보다 작은 마음을 가진 엄마로 자주 다치면서도 또 다가와주고, 좋아해 주는 아이들이 고맙다. 그러고 보면 연구소를 찾아주는 분들에게도 같은 고마움이다. 식탁이 넓어져 무릎 부딪히는 일 없다고 좋은 날만 있으랴. 갈등 없는 환상 같은 나날만 펼쳐지랴. 네 식구가 자기 빛을 내고 자기답게 살고자 할 때 어쩔 수 없이 또 충돌하고 찌르고 상처도 날 터. 가족의 삶이고 인간의 길이니 이 항해를 다시 떠날 밖에. 2021년, 쉰셋에 나 비로소 이제 깊고 넓은 바다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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