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하고 있는 엄마 옆에 이불을 끌어다 베고 벌러덩 누우면서)
에혀~ 살만큼 살았다.
(뭔 소린가 싶어서) 뭐? 누가 살만큼 살어?
나지. 누구야.
(이 놈, 또 시작이다.) 니가 얼마나 살았다고 살만큼 살어.
앞으로 살아봐야 좋을 것도 없을 것 같고. 슬픈 일, 아픈 거 너무 싫어.
그러니까 천국이 제일 좋잖아. 그런데, 엄마. 내 나이에 자살하는 애도 있어?
(이건 또 뭔소리!) 글쎄. 그게 궁금해?
어차피 살아도 좋은 것이 없으니까 천국을 가는 게 좋잖아.
(열 살 밖에 안 된 놈이!) 니가 몰라서 그렇지. 앞으로 살면서 행복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너 사랑하는 사람 생겨봐라. 장난 아니야. 좋아서.... 또....음..... 그리고 사실 엄마가 살아보니까 아프고 슬픈 일을 통과하고 배우는 기쁨은 엄청나게 커.
그러니까. 나는 슬픈 일 자체가 싫다니까! 그런데 엄마, 내 나이에 가출한 애도 있어?
(헉, 자살에 가출?) 뭐.... 집에서 엄마 아빠한테 너무 맞거나 배고프고 그래서 가출한 애도 있을까? 어린 나이에 집을 나가면 보통 나쁜 사람들이 데려가서 그냥 나쁘게 사는 걸로 정해지는 경우가 많아.
아니던데. 내가 책에서 읽은 사람들은 가출해서 다 잘됐던데...
(그래서 임마!) 왜, 그래서 너도 가출하고 싶다고?
아니, 내가 내 돈으로 맘대로 히어로팩토리도 사고 자유를 얻고 싶다고.
(꼴랑 히어로팩토리 자유롭게 사고 싶어 가출을 하냐?) 그게 현승아, 자유를 얻지만 자유를 얻은 만큼 책임도 져야해. 당장 밥 먹고 자는 거, 이런 걸 혼자 다 책임져야 하는데....
그러다 얘기는 유야무야.....
살짝 걱정스러워서 남편에게 이 얘길 했더니
'어릴 적에 다 그런 생각하잖아. 나도 했고. 현승이는 그걸 말로 표현할 뿐이다. 당신이 잘 들어주고 잘 키워서 그래.'라고 하였다. (음하하하.... 이건 양육 깔대기)
그렇다. 아이들이 어떤 것을 느낀다해도 느낌 그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부정적인 느낌을 말로 내놓을 때 건강한 것이다.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용인되지 않는 욕구가 무의식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그리고 무의식 안의 그림자가 의식화 되어 다루어지지 않을 때, 거기에 끌려다니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타인을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이 융 할아버지의 설명이다.
역기는 가정의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무언의 메세지는 '느끼지마. 표현하지마' 라고 한다. 아이들에게 나는, 우리 가정은 어떤 느낌이든 느낄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안전지대가 되었으면 싶다. 인간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신에 대해서.... 그렇게 하기 위해선 나 스스로를 내가 받아줘야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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