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클래시컬한 블로그 버전의 포스팅 하나 합니다.)


설렘보다는 부담이 더 많은 새 학기를 시작하는 3월 입니다.
3월 첫날, 파주의 심학산 둘레길을 찾았습니다.
중학생이 되는 채윤이는 표정으로 말합니다.
'웬만한 게 다 시답지 않은 사춘기고요. 게다가 새로운 학교, 새로운 친구들 만날 일이 부담 백배라구요.'
중학교 아니고 중학년이 되는 현승이는 표정으로 말합니다.
'새 학기고 뭐고 나는 산에 오면 좋다구.'



 

 

이렇게요.
현승이는 산에 오면 그 품에 그냥 몸을 던져 안겨버리고 싶은, 그런 아이예요.
사람이 많은 곳보다 나무가 많은 곳이 좋은,
자동차 밑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길냥이와 눈을 맞추는,
워터파크의 인공 파도풀보다 바다! 그 바다의 파도가 좋은,
자연을 좋아하는 아이예요.






심학산 둘레길을 고즈넉하게 걸으려던 아빠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어요.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진흙탕 둘레길을 걷게 된 것이지요.
푹푹 빠지던 흙길을 지나 그나마 뭔가가 깔려 있는 쉬운 길에 들어섰어요.
"이런 길 싫어. 나는 산에다 이런 거 깔아놓은 게 싫어. 시멘트는 더 싫고....
산에는 그냥 흙이었으면 좋겠어."
라고 투덜대는 현승이는 정말 '자연의 아이'예요.


 

 

반면 차도녀 채윤이는 이런 길을 터벅터벅 걷는 이유를 모르겠는 거지요.
구경할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재미' 같은 거 말이예요.
북적대고, 기분을 들뜨게 하는, 짜릿한 것들 말이지요.
티익스프레스, 자이로드롭, 바이킹.... 
이런 것이 재미고, 채윤이에게 있어 '재미'는 곧 '의미'니까요.  
엄마보다 더 커진 키로 아빠랑 걷는 뒷모습은 꼭 남친 옆 여친 같아요.

 

 

아빠, 안어!
아빠, 등 긁어줘!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빠를 종으로 부리더니,
사춘기 시크녀가 되어서도 변하지 않은 한 가지는 이것이네요.


"엄마, 나는 이런 게 즐겁지가 않아. 아무리 즐겁게 생각하려고 해도 즐거워지지가 않는다구."


내내 묵묵히 걷다가 마지막에 엄마 옆에 와서 한 말인데,
정말 고맙고 장하다고 말해줬습니다.
외할머니가 채윤이 현승이 얘기를 해드릴 때마다 허허 웃으며 하시는 말씀이
"아롱지고 다롱진거여. 자식이 여럿이어도 아롱진 놈, 다롱진 놈 있는 거여. 그 놈들 참!'
하시지요. 아롱진 채윤이가 다롱진 휴일계획에 '즐겁게 생각하려고 애쓰면서' 함께 하는 게 사실 무척 대견했습니다.

 


 

다롱진 산의 아이이며 꼬마 철학자인 현승에게 산행을 마치며 아빠가 물었습니다.
"현승아, 기분이 어때?"
"기분이? 기분이 고파. 기분도 밥을 먹어야 해."
뭔 말인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말.

 

 

 

기분이 고플 땐 무슨 밥을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배가 고픈 건 된장찌개로 채우기로 했습니다.
심학산 둘레길 입구에는 '된장예술'이라는 식당이 있는데,
실은 된장이 예술이 아니라 '나물이 예술'인 집이지요.
아주 그냥 시금치, 호박, 취, 고사리, 마늘대 나물에 게장까지 한상 차려 나오는데
접시를 싹싹 비워요.

 

된장이 예술인 이유는 위에 얹는 차돌박이 몇 점인 것 같아요.
아, 그게 아니군요. 이집 된장이 예술인 이유가 따로 있었어요.
아.........악! 이 집에선 된장을 주문할 때, 된장이 아니라.....


 

인분으로......
그래서 그런 말이 있군요.
'똥인지 된장인지 모른다고.....' ㅠㅠㅠㅠㅠㅋㅋㅋㅋㅋ

 

 

내일은 우리 채윤이 입학식 이예요.
정말 하고 싶어서 선택한 피아노 전공이고,
꼭 가고 싶었고 기적같이 들어간 예중이지만 '즐겁게 생각하려고 해도 즐겁지 않은 날'이 많을 거예요. 그럴 때 고파진 채윤이 기분은 어떻게든 엄마 아빠와 현승이가 채워주도록 해보죠.
채윤이 퐈퐈퐈퐈퐈이팅!!



'아이가 키우는 엄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의 별로 가  (14) 2014.01.13
중딩 엄마는 좁니다  (6) 2013.03.07
늑대 아이, 둘  (6) 2012.10.02
두 개의 페북 사연  (4) 2012.07.09
스승의 은혜와 선물과 신뢰  (8) 2012.05.1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