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는 처음에 단지 집에서 가까운, 흔한 데이트 코스였다. 오래 두고 사귀면서 점점 더 속내를 알아가는 사람처럼 시간을 두고 사귐이 깊어졌다. 두물머리를 은근히 많이 아낀다. 그러던 중에  김훈의 소설 <흑산>에서 만난 두물머리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황사영의 처가 동네 마재는 강들이 만나는 두물머리였다. 강원도 산협을 돌아나온 북한강과 충주, 여주, 이천의 넓은 들을 지나온 남한간이 마재에서 만났다. 강들은 서로 스미듯이 합쳐져서 물이 날뛰지 않았다. 물은 넓고 깊었으나 사람의 마을을 어려워하듯이 조용히 흘렀고 들에 넘치지 않았다. 김훈 <흑산> 중

으아아..... 사람을 어려워하듯이 조용히 흘렀고 들에 넘치지 않았단다. 내 말이! 두물머리는 조용하고 요란하지 않아 좋은 곳(인데 점점 관광객이 많아져서 요즘은 물 반 사람 반. 아쉽다)이다.

 


정약현은 두 줄기 강물이 만나서 더 큰 물을 이루어 흘러가는 물가의 고향 마을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 물의 만남과 흐름은 삶의 근본과 지속을 보여주는 산천의 경서였다. 그의 세 동생들도, 서로 말없는 중에 그 산천의 경서를 품고 유년과 소년을 물가 마을에서 자랐다. 정약현은 젊은 사윗감을 마재 마을로 불러서 강물이 만나서 새로워지는 흐름을 보여주고 싶었다. 정약현은 그 어린 진사가 경서가 아니라 사물에 접하여 스스로 깨닫는 자득의 인간이기를 원했다. <흑산> 중

정약현이 젊은 사위에게 두 물이 만나서 새로워지는 흐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처럼 나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두물머리를 보여주고 싶었나보다. 꼽아보니 많은 친구들을 데리고 두물머리에 갔었다.



선생님, 또는 친구, 감히 도반이라 호칭해도 좋을 분들과 두물머리에 다녀왔다. '전혀 이질적인 우리들이 어떻게 이렇게 친구가 되어 여기 같이 있을까?' 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지금 이 시간이 선물이다' '참 좋다' '너무 좋다' 하며 하루를 보냈다.

황사영은 처가 마을 마재에 올 때마다, 산 위에 올라가서 오랫동안 강물을 들여다보았다. 강은 흐르고 또 흘러서 합쳐지고, 합쳐져서 더 큰 물을 이루어 앞으로 나아가 도성의 들을 적시고 먹이면서 바다에 닿았다. 강은 합쳐져서 스스로 새로워지면서 새로운 들과 새로운 시간 속으로 나아갔다. 흐르는 강물 위에서 시간과 공간이 합쳐져서 앞으로 나아갔고, 그 강물이 황사영의 마음 속으로 흘렀다. 마음이 강물과 같아서, 마음이 세상으로 흘러 마음으로 세상을 이룰 때 세상은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그것은 푸른 강물처럼 분명했다.  <흑산> 중



두물머리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클라라 커피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 클라라님은 나를 그곳에 데려간 또 다른 (감히) 친구 (실은 언니)의 안부를 물었다. 커피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맛있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싸고, 공간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좁다. 주인인 클라라님의 넘치지 않는 친절함과 따뜻함이 딱 김훈이 묘사한 두물머리와 같다. '물은 넓고 깊었으나 사람의 마을을 어려워하듯이 조용히 흘렀고 들에 넘치지 않았다'


관계에 대해 참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살아왔다. 정말 그렇다. 잘 하고 싶어서 너무 애를 쓰다 보오히려 일을 그르치고 마는 것처럼 에너지를 쏟는 만큼, 그 만큼 더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았다. 어렵고 아팠던 적이 많았다. 물론 그래서 마음이 자란 면도 없지 않다. 앞으로는 조금 더 가볍게,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에 매이지 않고, 관계를 누리며 살아야지. 하는 중이다.  이제 와 깨달은 것은 조금 늦되다 싶은 면이 없지 않지만. 오늘은 그저 참 좋았다. 돌아오는 길 신청곡 받아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설마 들을 수 있으리라 기대도 못하시고 최희준, 정미조, 트윈폴리오.... 라고 말씀하실 때마다 바로 검색해서 노래를 들려드렸다. (63 학번이라고 하셨던가? 아무튼 그 정도로 까마득한 날에 대학시절을 보내셨다니까 말이다) 정말 좋아하셨고 나도 그 노래들이 참 좋았다. '휘파람을 부세요' 정미조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휘파람을 불 수 있다면 마지막 혼자 운전하고 오는 길에 휙휙 불어댔을 것이다.  

처가에 갈 때는 송파나루를 지나는 강변길을 따라서 걸어가거나 말을 탔고 돌아올 때는 여주 쪽에서 내려오는 장삿배를 타고 두미협을 지나고 광나루를 지나서 마포나루에 내렸다. 강물 위에서, 황사영은 숨을 깊이 들이쉬어 강의 기운을 몸 안으로 끌어넣었다. 강은 황사영의 몸속 깊이 흘러들어왔다. 그것은 잇닿아 흐르면서 낡은 시간과 헤어지고, 헤어지면서 또 다가오는 시간을 맞아들이는 새로움이었다.  <흑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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