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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일상

신입생 포부(抱負)? 포부(怖仆)!

by larinari 2007. 7. 7.

신대원 1학년 김종필씨가 학보에 포부를 밝히는 글을 써달라는 원고청탁을 받았단다.

김종필씨답게 생각에 생각을 곱씹고 오늘 오후까지 몸부림을 하더니 글을 썼다.

남편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음.....겸손하다는 것, 쉽게 쓰지 않는다는 것.

그러고보니, 내 글과는 완전 반대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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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1학년)



포부(抱負)?


신입생 포부를 밝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신입생은 출발선상에 있으니 응당 포부가 있겠거니 생각했으리라. 허나 유감스럽게도 내겐 포부가 없다. 그래도 혹 모르니 마음 속 어딘가에 먼지 쌓인 포부 한조각이나마 있지 않을까 싶어 며칠간 후레쉬를 들고 샅샅이 마음을 뒤져 보았다. 역시 애석한 일이다.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암만 생각해 보아도 내겐 포부가 없다! 답답한 마음에 국어사전을 뒤져 보았다. 포부를 이렇게 정의해 놓았다. “마음속에 지닌, 앞날에 대한 생각이나 계획 또는 희망”. 이 정의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게 포부가 없는 이유를 알 듯싶다. 나는 기질 상 과거의 사건 속으로 되돌아가 감정적으로 질퍽거리는 걸 경계한다. 반대로 가상의 미래로 건너가 환상의 주인공이 되는 것도 가급적 자제한다.

‘오늘 여기서 그분을 위해!’라는 모토 하에 그저 오늘 주어진 작은 일에 충성하는 걸 소중히 여기는 오늘주의자로서 나는 만족스럽다. 물론 앞날을 계획하고 희망하는 것, 그것조차 금기하는 소심한 오늘주의자가 얼마나 나태해지기 쉬운지 모르는 바 아니다.

내게 포부가 없는 걸 단지 기질만의 문제로 환원하여 정당화 할 생각은 아니다. 한 때 나도 ‘비전’을 먹고사는 새벽이슬 같은 주목받는 주의 청년 중 하나였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비전이 매우 위험한 단어라는 걸 안 이후로, 오히려 내 속에 차오르는 비전을 겸허하게 내려놓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것을 배웠다. 공동체 안에 꿈을 가지고 들어가 실현하려다 나도 다치고 남도 다치는 일을 허다하게 경험했기에 나는 비전 운운하는 걸 조롱하는 것이 더 은혜 아래 거할 수 있는 비결임을 안다.


포부(怖仆)!


포부라고 불릴 만한 것이 내게 없는 것은 사실이나, 입학 이후 줄곧 떠나지 않는 생각 하나가 나를 붙들고 있긴 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기도’다. 선지동산에 오르기 전, 저 세속동네에 살았던 나는 그럭저럭 삶이 만족스러웠더랬다. 행복한 가정, 안정적인 직장, 인정받는 교회봉사, 꾸준한 말씀묵상, 여기에 기도생활만 더 깊어진다면 남은 2%를 채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작아보이던 2%의 기도생활이 시작된 순간, 나는 거대한 폭풍우와도 같은 그분의 숨결 앞에 압도당하여 숨도 못 쉬고, 땅바닥에 코가 닿도록 팍 엎드러져 있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기도는 2%가 아닌 98%였던 것이다. 육신의 눈을 질끈 감고 때론 수줍게 때론 신음처럼 주님을 부르면 그분의 숨결이 내 영혼으로 번져 들어온다. 그 순간 나의 교만의 역사가 주마등처럼 스치고, 나의 가련함은 제자리를 찾는다. 하나님의 크심과 자비하심이 또렷이 드러나 내 영혼의 누추함을 따사로이 밝히시며, 결국엔 나의 배반과 실패를 용납하시는 은혜가 내 눈물을 타고 단비처럼 흐른다. 그리고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노래가 나의 찬송이요 간증이 된다. 실로, 두려운 마음으로 납작 엎드려 기도하는 일 말고, 지금 당장 내 소원하는 바 없다. 그것으로 족하고, 그 길만을 희망하고, 그 속에서 한 인생으로 거듭나 한 사역자로 단련되어지길 원할 뿐이다.


굳이 밝히자면, 이 포부(怖仆)가 곧 신입생인 나의 포부(抱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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