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이 되어 연애하기(..) 26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지내며 카톡, 카톡, 울려대던 연애상담 톡이 조금 잠잠해졌습니다. 솔로들은 외로워서 죽고, 커플들은 식당 예약하고 선물 사느라 등골 빠져 죽는다더니 다들 진이 좀 빠졌나봅니다. 이제 발렌타인데이를 시작으로 화이트데이에 춘삼월이 오고 있으니 외로워 죽고 기념일 챙기다 죽을 대한민국 남여상열지사는 다시 불이 붙겠지요. 크리스마스,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연인들 기념일만 없어도 솔로들의 외로움이 덜할 텐데요. 아니, 기념일 챙기는 것도 좋은데 SNS에 자랑 샷만 좀 자중해줘도 낫겠다구요? 어쩌겠어요. 남의 커플사진에 악담하던 솔로남()가 입장 바뀌어 제가 커플 되면 더하면 더했지 닭살행각 덜하진 않던데요. 커플의 기념일 샷에 속이 거북한 솔로들은 조금 참는 미덕을 발휘해야 합니다. 남친이 생긴 어느 날 스스로 예상치 못했던 만행을 저지르고 있을지도 몰라요. 저는 야경이 멋진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샴쌍둥이처럼 달라붙어 찍은 기념일 셀카를 보며 주문을 외웁니다. ‘그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보이는 만큼만 행복해라.’ 스프가 다 식도록 수십 장의 사진을 찍어 얻은 한 컷임을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글로벌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연인들이 그 정도는 기본이지요 뭐. 조금 연출되었다 해서 진실이 아닌 것은 아니니까요.


사랑을 아름답게 유지하는 좋은 방법은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데이트가 습관처럼 익숙해질 무렵, 처음 사랑에 빠졌던 그 날을 회상하게 된다면요. , 그랬었지! 내 고백을 받아줄까, 이 좋은 사람이 과연 내 여자가 될까, 두근거리던 시절이 있었어. 하면서 오늘의 매너리즘을 살짝 뛰어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기념일이벤트는 먹방과 특별한 선물 그 이상의 의미입니다.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귀한 행위입니다. 떡과 포도주를 떼고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때마다 우리는 성찬식을 반복하지 않습니까. 성찬식 뿐 아니라 교회의 절기와 전례들은 시간과 함께 망각하기 좋아하는 인간에겐 꼭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에 기억하라는 말씀이 얼마나 자주 나오는지요. 시작한 지 100, 그녀의 생일, 함께 보내는 첫 크리스마스,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갔던 날.... 기념해야 할 것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다면야 1년 내내 기념일이어도 좋을 것입니다. 문제는 사랑이란 말이 닳고 닳아버린 것처럼 기념일또한 허투루 소비되어 의미는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았다는 것입니다. 분위기 있는 식당, 있어 보이는 식사, 흐릿한 배경으로 잡히는 명품 쇼핑백이 있는 사진 한 장을 위한 기념일이라면 솔로 친구의 부러움을 유발하는 것 외에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기실 기념일이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질 수 없습니다. 선행하는 무언가를 기념하는 것이지요. 100, 200, 300일을 손꼽아 세어보는 것은 시작한 그 날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기념일 이벤트가 난무하는 이 시점에 한 번 쯤 멈춰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둘만의 사랑나무가 싹을 틔우던 그때를 돌아볼 만큼의 여유를 가지고 있나요. 아니면 사랑나무야 말라죽든 말든 화려한 조명 전깃줄이나 칭칭 감아놓는 식으로 이벤트만 남은 연애를 하고 있진 않은지요. 빈 수레가 요란하듯, 열등감 많은 사람이 과도한 자기자랑을 늘어놓게 되듯, 알맹이가 없어 공허할 땐 화려한 포장지에 집착하게 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포장지에 대한 집착은 필연 비교본능과 맞닿습니다. 친구 오빠 차 트렁크에서는 풍선 백 개가 떠올랐다는데, 직장으로 어마어마한 꽃바구니와 함께 간식이 배달되었다는데, 야경 끝내주는 재즈 바의 창가 자리를 예약해 뒀더라는데..... 비교가 잉태한즉 불평불만을 낳고 불평은 오빠에게로 가 무거운 짐이 되어 무기력을 유발합니다. 결혼이 코앞인데 아직 프러포즈 세러머니를 안 했다며 어디 두고 보겠다는 여친. 몇 년 사귀는 동안 안 해본 이벤트가 없고, 더 이상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질 않는다며 머리를 쥐어짜는 남친. 본말이 뒤바뀐 관계에선 생기는 사라지고 피로감만이 만연합니다.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 관계에 물을 주고 돌보는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여주기 위해 먹고, 보여주기 위해 여행 가고, 보여주기 위해 사랑하는 이 시대에 말입니다. SNS 친구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이기심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그 사람을 진정으로 위하는 기념일 이벤트가 무엇일까 고민해보면 좋겠지요. 특별한 날 특별하게 대접받기 원하는 여친의 정서적인 욕구를 채워주겠노라는 자발적인 마음. 기념일선물과 이벤트 준비하느라 등골 빠질 남친의 처지를 먼저 헤아려주는 마음. 이렇듯 서로를 먼저 배려하는 마음이 오늘의 사랑을 윤기 나게 할 것입니다. 신을 향한 경외와 사랑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종교가 타락하는 것은 필연입니다. 그 종교의식이 아무리 웅장하고 화려더라도 그렇습니다. 남자 여자 사람사이 사랑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요. 두 사람이 일궈가는 사랑에 기쁨의 생기가 넘쳐난다면 아차차, 사진 찍는 걸 깜빡 잊었네!’ 이미 먹어버린 간지 철철 스테이크, 조각케이크, 라떼..... 무슨 대수랍니까. 아무도 봐주는 사람 없다해도 사랑은 사랑으로 충분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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