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고 존경하는 목사님 부부가 있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보다는 '두 시인'이라 부르면 좋을 사람들입니다. 배움을 얻지 못하는 만남이란 없지만, 만나 대화할 때마다 내 마음에 특별한 깨달음의 씨앗을 뿌리는 분들입니다. 나이는 우리 부부보다 한참 어리지만 존경이란 말이 아깝지 않습니다. 합정동의 화력발전소 앞 오래된 주택에서 백만 볼트 배터리 장착한 두 아들을 키우고 살았습니다. 내외가 둘 다 천생 시인이었고, 집사님(이라 쓰고 사모님이라 읽어야)은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남달라서 흙과 햇볕과 바람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그런 공간에 갇혀 에너지 폭발하는 아드님들을 키운다는 것은 우울감을 부르는 일이다 싶어 늘 조금씩 걱정이었습니다. 이사 하라고, 이사 하라고, 남편이 시인 목사님을 찔러대곤 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살던 집을 허물고 다시 집을 짓는다는 주인의 통보를 받은 것입니다. 남편과 나는 쾌재를 불렀습니다. 교회사임하고 쉬던 어느 날,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질 시인의 집에 초대받아 갔습니다.


밖에서 보던 집이 아니었습니다. 현승이가 살짝 옆으로 오더니 '엄마,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이나 아니면 일본 영화에 나오는 집 같아.' 소곤소곤합니다. 에너지 백만 볼트의 아드님들 덕에 멀쩡한 가구가 남아 있을 리 없고, 번듯한 인테리어 소품 따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멋스러운 집이었습니다. 꿈이 꿈틀대고 있다고 할까요. 광목천으로 가려진 선반, 책꽂이도 없이 멋대로 쌓여 있는 시집을 비롯한 책들. 바로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집입니다. 집은 집이 아니라 사는 사람이라는 진리를 새롭게 실감합니다. 그리고 시인의 가족은 한 달 만에 합정동의 좀 더 넓고 쾌적한 빌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좋은 가격에 한 달 만에 집을 구하고 이사.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걸 보면서 옆에서 얼마나 부러웠는지요. 석 달이 넘도록 집이 나가지 않아 마음 졸이던 우리 상황과 비교되었지요. 아버지 하나님의 차별대우에 섭섭하고 화가 났습니다. 내 일처럼 기쁘면서도 진정 내 현실을 떠올리면 괜스레 마음에 찬바람이 불었습니다.


'이 녀석아, 내가 누구냐! 네 하나님이다.' 다 시기가 있다는 듯 우리집 이사 역시 해결되었습니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손놓고 좌절한 시점에 적절한 만남, 적절한 다리놓음, 고마운 배려로 된 일입니다. 남편이 무척이나 원했던 교회 앞 동네, 걸어서 5분 거리입니다. 3개월 체증이 내려가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안도감과 기쁨도 잠시. 이사할 집의 치수를 재러 가서 자세히 보니 처음 슬쩍 봤던 것보다 더 낡았고, 각이 안 나오는 공간이며, 뭔가 상당히 견적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거실 가득한 책꽂이가 제대로 자리를 잡을지, 주방과 거실이 하나인 휑한 공간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근심이 많아진 찰나, 새로 이사한 시인의 집에 잠시 들렀습니다. 역시나 평범한 구조의 빌라는 이야기거리 꿈틀꿈틀 하는 공간이 되어 있습니다. 부럽다, 부럽다 하면서 우리 집 공간 배치가 걱정이라는 얘기며 이사 이야기로 수다를 이어가는 중이었지요. 내 귀를 뚫어 마음과 영혼까지 헤치고 들어오는 시인의 목소리입니다.


"그 집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본 시점이었어요. 그 공간 안에서 펼칠 수 있는 상상력이 바닥 났을 때 이사를 하게 된 거예요."


아, 상상력! 볕도 들지 않은 좁은 집을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만들었던 것은 끝없는 상상력이었구나!  한 대 얻어 맞은 듯한 깨달음이었습니다. 이 한 마디로 온갖 선입견의 성들이 무너져내립니다. 반듯한 사각형의 아파트 거실, 자본주의적으로 획일화 된 집의 형태에만 고착된 그림이 사라지고 온갖 상상력의 풍선이 날아 오릅니다. 일단 이사 하고 짐을 넣어봐야 할 일이지만, 상상력이 뭔가 크게 일을 낼 것 같은 예감입니다. 이사 전날에 집사님 두 분의 도움으로 아이들 방에 페인트 칠을 하게 되었습니다. 벼르고 벼르던 일인데, 마음에 쏙 드는 거실 탁자를 마음에 드는 가격에 구입해 놓은 터였고요. 이사 당일, 짐을 들이며 순간순간 막막함을 견뎌야 했습니다. 포기하고 않고 상상력의 풍선을 날려대다 보니 아주 마음에 드는 거실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한 통속이던 거실과 주방이 분리되기까지. 벽에 붙어 있던 그릇장이 등판때기를 드러내며 주방을 가려주었고, 쓰던 컴퓨터 책상은 안성맞춤 아일랜드 식탁으로 거듭납니다.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이런 거실이 나오다니! 나의 상상력이 대견하여 누구라도 붙잡고 자랑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직 거실만 살려놓은 상태입니다. 채윤이는 나무틀 창문이 한 벽을 차지하고 있는 제 방에 도통 들어가려 하지 않습니다. 오래 된 싱크대에 좁고 꽉 막힌 주방이며, 세탁기 들어 앉은 화장실 등은 정을 붙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상상하라, 끝까지 상상하라! 채윤이를 데리고 2001 아울렛에 가 마음에 드는 커텐을 고르게 하고 달아주었습니다. 칙칙한 창이 가려지니 비주얼이 달라집니다. 토요일 오후에 비데 설치하러 오신 기사님. '토요일인데 오후까지 일하시네요.' 한 마디 건넸는데. 쌓인 게 많으신 모양인지 토요일 근무에 대한 고충을 쏟으십니다. 급 친해진 형국. 화장실을 보시더니 '와, 한 벽이 창문이네요' 하십니다. '그러게요. 이런 화장실 처음 보시죠?' 했더니 '좋죠. 습하지도 않고.....' 그 말에 다시 귀가 뻥 뚫립니다. '아, 맞다! 창문 열고 건조시키기 좋고, 욕실이 늘 뽀송뽀송하겠네. 다음 날 아침에 창문 가득 들어오는 햇살을 마주하고 (우리 집에서 해가 제일 잘 드는 곳이 화장실) 일을 보는데, 해.....행복하대요. 자, 이렇게 화장실도 애정으로 접수.


문제는 주방입니다. 거실과 분리되기는 했지만 가 서고 싶지 않은 싱크대 앞입니다. '나의 성소 싱크대'는 다 틀렸다, 싶지요.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부엌 한 벽의 장식용(으로 추정되는) 기다란 창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1도 기대하지 않고 밀어봤습니다. 어, 혹시 열리는 거 아냐? 아, 아니구아. 열리지 않습니다. 혹시? 하고 옆으로 밀어봤더니...... 대애박! 옆으로 밀리며 창이 열리는 것입니다. 소리 지를 뻔했습니다. 주님, 밖이 보이는 주방입니다. 감사합니다. 다육이 두 개를 가져다 창틀에 세우고 포스트잇에 몇 글자 적어 싱크대 문에 붙이니. 오, 나의 성소 싱크대 앞!입니다. 주방까지 애정으로 접수. 이로써, 집의 구석구석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심심하면 남편과 마주앉아 작명놀이 하곤 하는데요. 몇 년 전에 지은 이름입니다. 내 집 그리스도의 마음. 물론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의 패러디이고. 내 마음에 그리스도를 모셔야겠지만 내 집 구석구석이 그리스도의 마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영적이라는 것이 물적인 것과 반대개념이 아니기에, 영적인 삶은 고통과 혼란을 포함한 일상의 모든 곳에서 시작하는 것이기에 말입니다. 내 집구석이 그리스도의 마음이 된다면! 제가 입버릇처럼 말하듯 '누추하여 거룩한 현재'를 삶이 아니겠습니까. 결혼 후 열한 번 이사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수월하게 된 적이 없다며, 좌절도 낙심도 했지만. 그 어떤 집보다 더 애정하는 내 집이 될 예정입니다. 내 집 그리스도의 마음, 내 집구석 그리스도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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