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거실 세미나'로 시작한 '정신실의 내적여정 세미나'가 조금씩 꼴을 갖추어가고 있습니다. 엊그제 심화과정을 준비하면서 도반 수진 쌤이랑 '이렇게 준비가 널널해도 되나?' 했습니다. 거실에서 튀어나와서 진행했던 첫 세미나에서는 뭐 빠트린 거 없을까 심장이 두근두근 쫄깃쫄깃 했었지요. 단지 강의만이 아니라 핸드드립 커피며 나름 정성을 다하는 간식이며 이 모든 것에 담긴 환대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진정성이란 상대에게 피력함이 아니라 내게 충분히 그러한 진정성이기에 참 기쁜 일입니다.  


내게 필요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필요한 샘물이 되리라는 생각으로 별다른 욕심 없이, 힘 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대대적으로 알릴 방법은 없지만 필요한 분 눈에는 띄게 되어 있나 봅니다. 어디서들 오셨는지 귀인들이 오십니다. 그저께 했던 심화과정 사진을 보니 '먹자 모임'인지, '음식 영성'모임인지 싶네요. 몸과 영혼이 충만해진 만남이었습다. 수강하신 선생님 한 분이 손수샌드위치와 티라미수를 만들어오셨습니다. 감동의 티라미수 맛이었습니다. 입과 몸이 즐거우니 마음이 절로 열려 나눔은 더욱 풍성해졌고요. 


또 다른 도반 하정 쌔매은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보물이다'라고 평을 했습니다. 성경에서는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러운 것이라 했지만 진실하게 자기를 보여주는 말은 보배입니다. 함께 하신 분들의 얘기를 듣는 것으로 큰 배움이 돼서 제가 강의를 하는 건지, 배우러 온 건지 헷갈리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갈수록 이 자리가 가르치는 자리가 아니라 배우는 자리가 되네요.


수강 후 남겨주신 후기입니다.

* 감당하기 힘든 내적여정으로 정신이 희미해지는 와중에도 심중을 찌르는 통찰이 있던 것 같습니다. 웃으며 마쳤지만 제 속에 있는 어둠은 오직 나와 신만이 알고 있고 이걸 어떻게 다뤄야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부디 길을 찾아가는 중에 좋은 이정표가 나타나길.

* ‘아직도 가야할 길’이란 말이 다시 상기된다. 내 속에 있는 것들에 대해. o, x를 가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것들을 겸손히 들여다볼 용기가 생긴다.
그간의 내 일상에 일어났던 일과 나의 내적 동요, 반응에 대해 의식성찰을 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 거짓자아의 형성을 나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서 조각조각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최근 내가 일상이나 관계에서 마주친 갈등, 흔들림, 혼돈의 근원적 원인을 확인할 수 있어 유익했습니다. 다른 분들의 나눔 속에서 내 혼돈의 실체가 명료해지고 조금 정돈되었습니다. 솔직하고 진솔하게 삶의 경험을 나눠주신 선생님과 함께 영적 여정을 걸어주신 벗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진심으로.

* 주일마다 만나는 유아유치부 아이들과 좀 더 친해져야겠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내면아이, 성인아이에서 경탄할만한 아이로 나아가고 싶다는 바람이 더 진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나의 이상(페르소나)와 그 이면의 이유들을 적으면서 마음이 떨렸고 내 모습의 또 한 부분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 에니어그램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저를 돌아보게 되고, 저 자신을 바라보고 이해하기 되어서 기분이 좋고, 앞으로의 여정이 기대가 됩니다. 깊이 공부할수록 혼란과 실망감과 피로함이 느껴지지만 그 과정을 통과하여 참된 기쁨을 느끼고 싶습니다.
좋은 강의 진행해주셔서 감사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얘기에 사랑의 마음으로 청취해 주시는 것이 느껴져서 더 감사했습니다.

* “참자아, 페르소나, 그림자”
나는 늘 괜찮지 않았고, 늘 부족하다고 공허하다고 느끼며 살아왔는데.... 나의 생각과 감정, 반응과 행동을 늘 관찰하며 점검하며 살아온 것 같은데.....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회피할 수 없는 길인가보다. 생각을 관찰하는 것, 이것 또한 균형 잡아가야 할 과제인 듯하다.



세미나 마치고 돌아가시는 분들의 등에서 저는 '근심하며 돌아가니라' 이런 글을 읽습니다. '답을 찾으러 왔는데 더 복잡한 질문이 생겼다, 고민의 마침표를 찍으러 왔는데 이제야 뭔가 시작해야 하는 느낌이다.' 이런 말씀을 남기고 떠나니까요. 세미나 마친 다음 날에는 다른 일정이 없으면 거의 하루 내내 수강하신 분들을 마음에 품고 지냅니다. 오늘 아침에는 한 분 한 분 떠올리며 긴 아침 기도를 드렸습니다.


"자자, 고민하지 마시고 내 말만 들으세요. 제가 다 겪어봐서 압니다. 이제부터는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해서, 이러이러하게 하시라!(안 그러면 다 죽어)"라고 확신을 갖고 끌어당기고 싶지만 그런 건 없습니다. 그저 함께 걸어갈 수 있을 뿐이지요.


저는 6월 한 달 특별한 기도 여정을 시작했는데 오늘 읽은 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근심하며 돌아간' 한 분  한 분을 떠올리며 묵직한 마음으로 드린 기도에 대한 응답 같습니다. 나 자신과, 다가오는 사람들과, 내 안에 계신 그분과 만나는 진솔한 만남이 오늘을 사는 이유가 됩니다. 참 좋은 날입니다.



하느님과 만나기 위한 기술은 없으며, 그 까닭은 우리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느님은 만남의 주체이시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느님을 자동으로 불러냈다 들여보냈다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기도는 바른 자세를 갖춘다거나 기도하는 데 적합한 장소, 또는 제대로 만트라를 배우는 것과 같은 문제가 아니다. 그러한 것은 기도를 마법같이 만드는 것이다. 마법의 요점은 하느님을 조종하는 것이다. 그러한 것은 좋은 종교가 아니다. 마법과 미신은 우리가 하느님을 부리려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하느님은 우리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는 분이라는 점이다.


<하느님과 얼굴을 맞대고 > 토머스 H.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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