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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은 기쁨을 향하여   본문

기고글 모음/내 맘에 한 노래 있어

더 깊은 기쁨을 향하여  

larinari 2018. 2. 20. 08:36



내 맘에 한 노래 있어 15

 


제목이 내가 매일 기쁘게(찬송가 191)’이다. 이런 제목의 찬양을 부르면서 울 수 있을까? 빠른 템포로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온몸 들썩들썩 손뼉 치며 찬양하면서 말이다. 물론 너무 기뻐서 울기도 하니까 당연히 울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시! ‘내가 매일 기쁘게찬양을 하면서 아픈의 눈물을 흘리는 것은? 가능하다. 어떻게 가능하냐고? 내가 해봐서 안다. 이 찬송은 나를 가장 잘 아는 친구들이 콕 찍어 정해준 나의 찬송이다. 밝은 성격에 익살 떨며 깔깔거리는 것이 트레이드마크이기에 숲의 새와 같이 기쁘다같은 가사와 딱 들어맞는 캐릭터라는 것. 동의한다. 내게 가장 쉬운 감정이 기쁨이다. 그러니 찬송가 191내가 매일 기쁘게는 나의 찬송이 맞다.

 

그러나 내 아무리 긍정의 사람이지만 늘 기쁘게 수는 없는 일이다. 지탱하기 어려운 삶의 무게로 어깨가 축 쳐지고 마음의 생기가 바짝 말라버린 어느 날이었다. 기쁘게 찬양하자는 인도자의 템포와 따라 손뼉 짝짝 치면서 찬송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전주가 끝나고 저 가사를 입에 담는 순간 눈물 둑이 터져버렸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과 함께 가슴이 딩딩 울리는 통증이다. 한때 내가 숲의 새처럼 이 노래 하던 적이 있었는데, 공동묘지 사이를 휘파람 불며 걸어갈 기세로 소망과 긍정의 날을 살았는데. 그 기쁨의 날과 메마른 순간의 간극이 너무 크다. 슬픔이라고도, 막막함이라고도 이름 붙일 수 없어 흐르는 눈물이고 아픔이었다.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요

내가 주의 큰 복을 받는 참된 비결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여기서 노래하는 기쁨은 외적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의 감정만은 아니다. 계획이 착착 진행되어 하는 일마다 잘 풀리고, 나를 알아주는 말이 무성하고, 몸은 건강하여 활기가 넘칠 때 흘러나오는 콧노래가 아니다. 순례의 길, 좁은 길이다. 성공하고 인정받는 것에 취해서 기뻐 그 자리에 안주한다면 순례의 길이 아니다. 누구보다 빨리 고지에 오르기 위해 한 사람이라도 더 제치고 달려야 하는 길, 성공을 위해 사랑과 진실을 유보하고 달리는 길을 좁은 길이 아니다. 그 순례의 길, 좁은 길에서 밤낮 기뻐할 수 있다면 보통 사람의 감정이거나 노래는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이 타고난 밝고 명랑한 성품에 힘입어 좋아라 손뼉 치며 부르는 찬송, 피상적인 기쁨 그 이상의 고백일 것이다. 많은 영성가들이 말하는 바, 기쁨이 사라진 메마른 땅을 밟음으로 우리는 하나님 사랑의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니 행복과 기쁨이 꼭 좋은 것, 그 반대는 피해야할 것도 아니다.

 

주의 큰 복을 받는 참된 비결(1),

십자가 앞에 엎드려 참된 평화 얻음도(2),

기쁜 마음으로 주의 뜻을 행함(3)

어둔 밤이 지나고 무거운 짐 벗음(벗을 날에 대한 소망, 4)

 

이유는 한 하나! 주의 영, 성령이 함께 하심이다. 평안과 기쁨은 성령 충만의 중요한 지표라고 한다. 내 안에 기쁨이 사라진 것도 서글퍼 눈물이 흐르는데, 성령 충만의 부재라고? , 나는 이 찬송을 계속 불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든 스미스 목사님은 저서 <예수의 음성>에서 우리 마음의 역사하시는 성령의 내적 증거를 말한다. 기쁨과 평화는 성령과 동행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인지 아닌지 가려주는 시금석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인다. ‘성령의 임재에 대한 중요한 지표로서 기쁨과 평화를 주장하는 것은 기쁨이나 평화가 유일하게 정당한 정서적 표현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분노, 두려움, 슬픔, 절망도 특정한 상황에서는 불안정한 세상에 대한 적절한 응답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 찬송을 계속 부르기로 한다. 찔찔 짜면서 나는 숲에 새와 같이 기쁘다노래할 것이다. 깨어진 세상을 살며 때로 슬픔과 분노가 기쁨을 향한 정직한 발돋움이 될 수 있기에. 내가 주님 안의 참된 평화를 맛보았던 그 어느 날에도, 그 다른 어느 날 죄에 빠져 평안함이 없을 때에도, 그 어느 기쁨의 날을 그리워하며 상실감에 젖어 눈물 흘릴 때에도 주의 영은 함께 하시니 말이다. 기쁨의 근원이 바로 그곳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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