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세 엄마의 생신이다. 5년 모자란 100년의 인생이라니! 명절 후 딱 한 달 후라 밖에서 하거나 출장 요리로 하곤 했는데. 어쩐지 이번엔 집에서 해드리고 싶었다. 한 2년 요리에 손을 놓고 살았더니 뭘 어떻게 했었던가, 생각도 안 나지만 하자, 하고 싶다. 엄마를 사랑하는, 할머니를 사랑하는 식구들 모여 맛있는 식사를 하자!  하길 잘했다. 남편은 물론 채윤이 현승이까지 팔을 걷어 부치고 도와줘 준비가 수월했다. 정 많은 친정 식구들 모여 짧고 굵게 즐거운 시간 보냈다. 


#1


전날 장보기와 청소, 재료 손질 등을 마치고 현승이가 말했다.


“엄마는 좀 힘들겠지만, 나는 내일 외숙모가 와서 엄마를 돕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일 만큼은 외숙모는 그냥 가만히 앉아 있다 밥 먹으며 좋겠어”

채윤이도 적극 동의.


“맞아, 맞아! 외숙모는 명절 때마다 고생하니까 내일은 우리가 다 해. 엄마 우리가 밀착해서 도울게. 외숙모는 일하지 않게 하자.”


#2 


미역국 끓이기에 재미 붙인 채윤이가 외할머니 생신 미역국도 제가 끓이겠다며 나섰다. 전날 밤에 공들여 대량의 끓였다. 엄마랑 통화하며 기분 좋으시라고(미리 감동 먹으시라고!)알려드렸다.

“엄마, 채윤이가 할머니 생신 미역국을 끓였어. 내일 와서 채윤이 미역국 맛 봐.”

단호박 엄마의 팩트 폭행.


“뭐? 미역국? 나 미역국 안 좋아하는디. 사골국이 좋지!”





#3

이런 저런 메뉴를 짜서 장을 잔뜩 봐놓고 엄마를 떠봤다.

“엄마, 뭐 드시고 싶은 거 없어? 뭐 해줄까?”


“니가 허구 싶은 거 혀. 맞는 놈이 여기 쳐라, 저기 쳐라 허남? 혀주는 대로 먹는 거지”


“그래도 엄마 생신이니까 엄마 드시고 싶은 거 해야지. 뭐 먹고 싶어?”


“뭐 먹고 싶냐고? (침 꼴까닥) 치킨!”

진심이시다. 평생 입에도 대지 않던 치킨 피자를 요즘 드신다. 어이가 없어서 여러 번 여쭤봐도 비슷한 대답. 우리집으로 오는 길에 동생이 마지막으로 물었단다.

“엄마, 치킨! 불고기! 뭐 먹고 싶어? 누나한테 뭐 하라고 해?”

(엄마, 침 꼴깍) “나? 뭐 먹고 싶냐고? 짜장면!”


이것도 엄마 진심! 결국 저 음식을 다 차리고 엄마를 위해 치킨 한 마리을 시켰다. 저 화려한 요리를 두고 말이다. 치킨을 시키고 자장면도 시켜야 하나 고민했다. 물론 치킨은 손주들이 다 먹고. 엄마는 잡채랑, 싫다던 미역국 건데기 없이 국물만 해서 맛있게 드셨다. ‘우리 채윤이가 끓인 미역국이 제일 맛있다' 하셨다.


엄마, 갈수록 빈말을 더 못하시니 팩트 폭행이 일상인데. 큰 웃음 주는 폭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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