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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실의 내적여정

고귀한 낭비

larinari 2019.03.15 12:02




꼭 지켜야 하는 것들은 사실 좀 낭비적이다. 가령 상담을 주업무로 하는 연구소를 냈다면 시간과 에너지를 상담에 올인해야 하는 것이겠으나. 중요한 것은 내담자 하나라도 더 붙들고, 프로그램을 더 효율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상담 한 건 못하더라도, 시간이 맞춰지질 안하서 내담자 한 분을 못 받더라도 우선적으로 지켜내야 하는 시간과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자본주의적으로 생각하면 가치는 사치가 되기도 한다.


상담과 여타 프로그램 진행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연구원 정모이다. 나를 포함한 연구원 네 사람 모두 바쁘지만 급한 일에 매여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모였다 하면 서너 시간은 눈 깜빡하는 순간으로 지나간다. 책 한 권을 읽고 스터디, 가지 치는 주제로 토론, 사례 연구, 거기다 솔직한 나눔까지.


처음 만나던 날, 일단 연구소 청소부터 했고. 이후로 정신 없는 준비 일정 가운데에도, 개소식 진행하면서도 책 한 권을 함께 읽고 공부했다. 상담이냐, 치유공동체로서의 교회냐? 이 주제를 지지부진 읽고 나누고 숙고했다. 그러니까 오늘 날 삶의 어려움을 가진 크리스천들은 전문 상담가를 찾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목회자를 찾아야 하는가의 문제 말이다. 치료를 받아야  하는가, 기도를 해야 하는가. 물론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는 전제를 연구소의 가치로 삼으니 어려워지는 것이다.  


<상담과 치유 공동체> 함께 읽기를 마쳐가는데 다음 책이 번호표 뽑고 기다리고 있다. 찾아오시는 내담자가 거의 여성이다. 여성의 삶은 남성의 삶과 다르고 여자의 몸을 입고 살고, 사랑하고, 결혼하는 것, 여자로 신앙하고, 교회 생활하는 것은 남자의 그것과 다르기에 연구소의 '주의'는 '여성주의' 아닐 방법이 없다. 자연스럽게 선정한 두 권의 책이 그대로 연구소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으니 신기하다.


  

연구소의 어떤 일보다 연구원 정모를 소중히 여기듯  연구원 각자 개인적 물러남의 공간, centering prayer 에도 마음을 쓰고 있다.  (향심기도 하지 않는 자, 영적 독서 하지 않는 자, 연구원 자격 없습니다! 사퇴 하세요오오! 라고 말하진 않지만 입으론 웃고 눈으론 레이저 쏘는, 헛갈려서 더 강한 압박!으로 쪼이고 있다) 자기 안의 깨어짐, 치유, 성장의 경험 없이 타인의 내적 성장을 동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소중한 것을 위해 어떤 것들을 기꺼이 낭비하며 산다. 그 시간에 공부를 해라, 일을 해라! 생산적인 선택을 종용 받는 세상을 산다는 것이 함정.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계수되조차 되지 않는 것에 목숨 걸 때도 있다. 드문 일이지만 상대는 알아차리지 못하며, 헤아릴 수도 없는 바를 위해 내 살을 도려내고 혼자 피를 흘리기도 한다. 무엇을 위한! 어리석은 낭비! 어리석고 바보스럽지만 어떤 땐 멈출 수 없다.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다.  고귀한 무엇인가 있겠지. 있으니까 이러겠지. 설마.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남모르는 낭비, 아무도 모르는 낭비가 가장 고귀한 투자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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