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3

 

 

어느새 온통 한 덩어리의 푸르름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무의 빛깔이 제각각이었다. 연두, 연두 같은 연보라, 조금 짙은 연두, 일찍 철든 아이처럼 벌써 진해진 초록도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제각각 짙어지더니 신록의 정점에 이른 것 같다. 정점에 이르니 이 나무 저 나무 구분이 안 된다. 양평 가는 강변길을 달린다. 왼편에는 한 덩어리의 신록이 넘실대고, 오른편에는 햇빛에 반짝이는 강물이 고요하다. 최 선생님을 모시고 가는 드라이브라 설렘 그 이상의 긴장이다. 이 순간 이 풍경이 선생님 마음에 꼭 들면 좋겠다는 간절함에 마른 침이 꼴깍꼴깍 넘어간다. 평소 같았으면 “와아, 너무 좋다!” 연발하며 설레발쳤을 텐데, 오늘 이 나들이를 도모한 호스트로서 손님의 평가를 기다려야 했다. 말없이 차 창밖을 하염없이 내다보시는 나의 VIP 최 선생님은 말씀이 없으시다. 자동차는 빠르게 달리는데 선생님 앉으신 강 쪽 풍경은 그림처럼 멈춰 있는 듯하다. 어쩐지 조금 쓸쓸해 보이기까지 하니 점점 마음이 불편해진다. 내가 무리한 제안을 한 것은 아닐까.

 

전부터 약속된 날이었는데 어제 갑자기 전화를 해오셨었다. 집에 손녀딸이 와서 지내고 있으니 다음에 보자고 하셨다. 그러겠노라 전화를 끊고는 퍼뜩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모시고 드라이브를 한 번 가면 어떨까. 자연을 그렇게나 사랑하시는 선생님께 내가 좋아하는 두물머리의 한적한 강변 풍경을 보여드리고 싶어졌다. 다시 전화를 드려 댁에서 손녀와 함께 계셔야 할 것이 아니라면 밖에서 뵙는 것은 어떠신가 여쭈었다. “나야 감지덕지 좋지요. 정 선생이 수고스러워서 그렇지. 내가 지하철로 정 선생 근처로 갈 테니 여기까지 올 필요 없어요. 아니야, 여기까지 오면 나는 소풍 같이 안 가요.” 하며 좋아하셨다. 흔히 말하는 ‘벙개’다. 갑작스레 신나는 일을 도모하고 성사된 기쁨에 심장이 콩콩 뛰었다. 도통 요즘 이런 일이 있어야 말이지. 그저 해야 하니까 하는 일이고 만나야 하니 만나는 사람들이니! 그야말로 소풍 가는 날 아이 마음으로 신선한 원두로 내린 커피를 텀블러 두 개에 나눠 담아 준비하고, 차에서 틀 음악까지 선곡해두고 있었다.

 

두물머리 나들이

 

잠실역에서 만날 때만 해도 내 마음이 선생님 마음이려니 했다. 이 청명한 날씨에 나들이가 설레시겠지. 운전을 놓으신 지 한참 되셨고, 맘 편한 드라이브는 오랜만이실 거야. “어이구, 늙으니 호강하네! 하나 힘든 거 없어요. 지하철이 다 데려다주는 거 뭐가 힘들어요. 얼마 만에 양평 나들이인가.” 소풍 날 들떠서 나눈 인사 끝에 잠시 조용해진 틈에 조용필의 ‘허공’을 딱 틀었다.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십팔 번이라며 언급하신 노래다. “어허, 이 사람 센스 하고는!” 하셨다. 음악이 끝나고 뭐라도 말씀하시길 기다리며 달리다 어느새 팔당대교를 넘고 양수리 근처 강변까지 다다른 것이었다. 처음엔 노래로 회한에 잠기신 것인가 싶었는데 그것만은 아닌 듯 점점 더 말씀이 없어지시고, 어쩐지 알 수 없는 무거운 분위기가 되었다. 들떠 있던 마음이 민망해지기 시작했다. 다음에 보자고 하셨는데 굳이 이렇게 나오시게 한 것이 결례가 된 것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분위기를 바꿔볼 요량으로 말문을 열었다.

 

     선생님, 오래도록 제가 서울 동편에 살아서요. 마음만 먹으면 휘리릭 나와서 달리고 걸을 수 있는 곳이거든요. 이렇게 좋은 경치를 2, 30분 만에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 같아요. 언젠가 꼭 선생님 모시고 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아이구야, 내가 정신이 딴 데 가 있었구나! 고마워요, 나도 아주 좋아하는 곳이에요. 친구들과 한 번씩 바람 쐬러 와보기도 했고요. 아, 수종사라고 알아요? 그 앞마당에 서면 남한강 북한강 두 물이 만나는 게 그대로 보인답니다. 거기 참 좋은데, 경사진 길을 올라가야 해서 웬만한 운전 실력자가 아니면 엄두를 못 내죠.

     수종사 알지요. 저도요 참 좋아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남편이 운전해서 움직일 때나 가볼 수 있어요. 아, 열심히 연마해서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어 언젠가 선생님 모시고 고고씽 하겠습니다!

     하하, 내가 그때까지 살아 있으면. 하이튼 이 사람 참! 사람 기분 좋게 하는 데 뭐 있다니까. 나를 태우고 수종사에 함께 가곤 했던 친구가 있어요. 쾌활하고 밝은 것이 정 선생과 비슷하네. 벌써 5년 됐네요. 그 친구 천국에 간 지가. 아니요, 괜찮아요. 가끔 그립긴 하지만 그리운 것이 어디 하나둘이어야지. 정 선생하고 이쪽에 나오니 그 친구와 다시 만난 기분이네. 늙은이랑 놀아줘서 고마워요. 이렇게 마음 써서 준비했는데, 노인네가 만나자마자 침울해서 마음 쓰였죠? 주책바가지.

     아뇨, 선생님. 혹시 손녀 따님과 함께 계셨어야 했는데 제가 너무 들이댔나 싶어요. 무리해서 나오신 건 아닌지...

     물론 괜찮아요. 집에서 나오는 데 며느리가 갑자기 왔어요. 집에 와 있는 손녀딸의 에미. 내가 같이 있으면서 중재를 해야 하나 싶었는데 그냥 두고 나왔어요. 아직 마음이 몸을 못 따라왔나 봐. 마음이 잠깐 집에 가 있었어요. 이제 마음까지 여기 왔습니다. 내 걱정은 말고 좋은 날씨, 풍경을 맘껏 즐깁시다. 야, 좋다! 하늘이 그림 같네요.

 

손녀딸 이야기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랐고, 사람들 없는 한적한 강변에 주차했다. 선생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걸으며 바라보는 강물은 흐르기보다는 멈춰 반짝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 번 만나면 서너 시간 대화는 기본이지만 개인 신상에 관해서는 내가 먼저 꺼내지 않는 한 잘 묻지 않으신다. 당신 이야기도 웬만해서는 잘 내놓지 않으신다. 어쩐 일인지 오늘 아침 상황을 설명하시며 손녀딸 이야기를 하셨다. 일종의 가출이라고.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님과의 갈등 끝에 집을 나와 선생님 댁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다. 가정적이고 성실한 아드님은 두 딸을 남다르게 공들여 키웠다고 한다. 딸들의 아빠에 대한 마음도 깊어서 보기 드문 부녀지간이라고. 사춘기 어려운 시절에도 엄마와는 부대끼고 갈등이 있었을망정 아빠와는 사이가 좋았다고 하셨다. 결혼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였다. 딸들의 일이라면 ‘No’가 없는 아빠가 결혼에 대해서는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단다. 음악을 전공해 명문대에서 대학원까지 마치고 유학을 계획하고 있던 딸이다. 유학을 포기하고 돌연 결혼하겠다고 선언을 했고, 이 일로 부녀 사이는 전에 없던 갈등 관계가 되었다. 큰 소리 날 일 없었던 가정이었는데 가족 전체가 폭풍에 휘말린 것이다. 흔히 그렇듯 부모의 반대가 강할수록 남자 친구에 대한 열정은 더 커지고, 그럴수록 부모는 배신감으로 깊이 좌절하게 되고... 딸들에게 관대하기만 했던 아버지는 태도가 바뀌어 박사과정 밟으며 자기 길을 잘 가고 있는 큰딸에게도 결혼을 강요하더니 아예 부모 쪽 인맥으로 두 딸의 결혼 대상자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전에 없이 대화가 어긋나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고 있단다. 와중에 둘째는 최후통첩 후 집을 나와 할머니 집으로 온 것이다. 어떤 일에도 초연하실 듯한 선생님이다. 하나뿐인 아드님이지만 독립적으로 살고 계신 듯하여 보기가 좋았다. 나도 노인이 되면 자식들과 저렇게 지내야지 싶었다. 따뜻하고 세심하지만 연연하지 않는 태도는 좋은 노인의 표상처럼 느껴지는 최 선생님만의 매력이다. 그런데 평소 선생님답지 않게 쉬 떨쳐내지 못하시는 듯 말씀 끝에는 여운이, 표정에는 무거움이 가시지 않는다.

 

     그래도 선생님께서 할머니시고 어머니시니 다행이고 부럽네요. 손녀 따님이 와서 기댈 할머님이 계시니... 멀리 갈 것 없이 상담가 할머님, 어머님께서 곁에 계시니 얼마나 좋을까요.

     평생 상담하고 상담 가르치며 살았지만 내 가족 문제에는 속수무책이에요. 다 큰 자식 앞길에 부모가 이래라저래라 할 일이 아니죠. 성경 말씀대로 결혼은 ‘부모를 떠나’는 것이니 떠나 보내는 것은 부모의 몫이고요. 헌데 이게 말이 쉽지요. 우리 아들 말마따나 고생길이 훤한 결혼은 막아야 하는 것이 부모의 도리라는데, 떠나보내라는 말이 들리지 않을 거예요. 제 살 도려내는 고통이라는 것을 내가 알지요. 하지만 다 큰 아이는 부모 말을 듣겠어요? 반대할수록 더 뜨거워지는 것이 남녀 간 정인데. 설령 고생길이 훤해도 부모가 개입하여 고생길을 꽃길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져주는 것이지요.

     그, 그렇군요. 선생님. 저로서는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잘 가늠이 되지 않아요. 할 수 있는 일이 져주는 것이라... 아무튼 집안에 선생님 같은 어머니, 할머니, 어른이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 엉뚱하게 자꾸 이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다소 냉소적이랄까 자조적인 선생님의 그런 표정은 처음이었다.) 아들에게 이렇게 말해주면 되겠죠? 정답이잖아요. 내 아들과 손녀 사이에선 이걸 갖고 들이댈 수가 없어요. 우리 아들의 그런 모습을 처음 봐요. 순한 사람이거든요. 딸들 앞에서 큰 소리 한 번 내는 것을 못 봤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완고해요. 철벽같아요. 처음엔 나도 반대하는 아들 마음에 수긍이 됐는데, 아니 할 말로 우리 손녀가 아깝단 생각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데 아들이 자기 논리에 빠져 상황을 최악으로 상상하며 더욱 고집불통이 되네요. 이러다 보니 손녀는 물론이고 식구들 모두 당황하게 되고, 갈수록 실망하게 되는 거지요. 아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밥도 잘 못 먹고 어깨가 축 늘어진 손녀딸을 보면 그 녀석 또한 곁에 두고 보기가 아주 가엾죠. (깊은 한숨)하아... 내가 묻지도 않는 가족사를 떠들어대고 있네요. 정 선생이 청년들 많이 만나지 않아요? 아, 연애 강의도 한다고 했죠? 전문가가 여기 계시네. 이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예요?

     아휴, 선생님 잘 아시면서요. 저라고 무슨 수가 있으려고요. 그런데 아드님이나 손녀를 따로 만나보진 않으셨어요? 선생님 의견을 말씀하시진 않으시나 봐요.

     내 의견이 뭐 중요하겠소. 각각 자기 소견이 분명한데. 아들 내외는 그들대로 손녀는 손녀대로 내게 서운한 것 같기도 해요. 특히 아들은 별말은 안 하지만 나마저도 제 편을 들지 않는 것이 내심 야속할 거예요. 그러고 보면.... 내가... 아, 아닙니다. 정 선생 배고프지 않아요? 맛있는 쌈밥집 간다고 했죠? 갑시다. 고마운 우리 정 기사님 점심 잘 대접해드리리다.

 

섭섭함과 쓸쓸함을 받아들이고 사는 것

 

식사 전엔 늘 여러 알의 약을 드시곤 하시는데. 오늘따라 약의 양이 많아 보였다. 늘 드시던 약이건만 오늘따라 마음이 쓰였다. 신선한 야채를 좋아하셔서 야심차게 고른 식당인데 내가 그렇게 보아서인지 생야채와 고기가 버거우신 듯 잘 드시지 못하셨다. 나도 덩달아 입이 써서 쌈 야채가 거칠게만 느껴졌다. 스무 살을 갓 넘긴 우리 큰애도, 아니 작은 녀석도 언젠가 결혼하겠다며 낯선 어느 녀석을 데려올 날이 있을 텐데. 어릴 적부터 자주 생각했었다. 주변 또래 아이들을 떠올려 상상으로 짝을 본 적이 있다. “그 녀석은 그래서 안 돼... 아, 누구는 제 엄마가 좀 문제야...” 어떤 청년이면 내가 만족할까.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나 성품을 가진 사람이면 어떡하지? 진로와 전공을 선택할 때마다 그러했듯 오직 아이 자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은 없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보면 더욱 그렇다. 식사를 마치고 강 전망의 카페에 가 앉았다.

 

     정 선생, 노인네 눈치가 많이 뵈지요?

     네? 아니에요. 선생님. 눈치는요... 식사도 많이 못하시고 안색이 안 좋으시니 조금 걱정이 될 뿐이에요.

     내가 왜 이럴까? 늙어서 좋은 것 중 하나가 웬만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거든요. 좋아서 뛰는 일도 없지만 그만큼 마음이 상하고 두려운 것도 없어요. 그런데 요 며칠은 전에 없이 마음이 무겁네요. 그걸 숨길 수 없으니 정 선생이 내 눈치를 살피게 되는 것일 거예요.

     눈치라기보다는요... 아, 저... 선생님, 저희 친정엄마나 시어머님 생각해보면 아직도 저희 사는 일에 좋게 말하면 걱정, 사실대로 말하면 잔소리와 간섭이 많으시거든요. 아까 떠나 보내야 한다는 표현하셨는데,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결코 저희를 놔주시지 않는다 싶어요. 물론 연세 드시며 전보다 약해지긴 하셨지만요. 선생님은 그 면에서 경계를 분명히 세우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며느님 얘기 가끔 하실 때 우리 어머님 같으시면 벌써 여러 번 섭섭해서 전화하셨겠다 싶은데. 선생님은 예삿일로 여기시더라고요. 그런 선생님을 잘 배우고 싶어요.

     정 선생 나한테 점수를 높이 주는 경향이 있어요. 나라고 왜 섭섭한 것이 없겠어요. 없기는! 섭섭한 것뿐이지. 허허. 노인의 길이지요. 어쩌면 소명일지도 몰라요. 섭섭함, 쓸쓸함을 받아들이고 사는 것이요. 아하, 그런 내가 손녀딸 결혼 문제에 대해 개입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여요?

     아니요. 오히려 그러시고 싶지 않으셔서 더 힘드신 것 아니에요?

     독심술이 있네. 이 사람! 개입하고 싶지 않다기보다는 해도 소용없으니 지켜보고 있을 뿐이고요. 지켜보는 마음이 아파요. 실은 내가 아들에게 지은 죄가 있어요. 아들이 난데없는 고집을 부리는 것, 평소답지 않게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내게서 비롯된 거예요. 결국 이 부끄러운 얘기를 하고 마네. 정 선생은 지금의 나를 보면서 선망하지만 젊을 때 나는 참 미숙한 사람이었어요. 자기중심적이었고 세속적이었죠. 그걸 직업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능력까지 있었으니... 아들이 결혼하고자 했던 아가씨가 있었는데 내가 반대했어요. 남편은 허락하는 걸, 내가 끝까지 반대했어요. 아들이 워낙 순종적이기도 하고, 제 엄마 고집을 아니까 결국 포기하고 말았지요. 내가 이리저리 조건 따져서 선을 보게 해 며느리를 봤어요. 글쎄요, 아들이 지금 의식적으로 저러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나 나는 알지요. 뒤늦은, 한참 늦은 나에 대한 반항의 뜻도 있다는 것을요. 아들 생각엔 이럴 때 내가 제 편을 들어야 맞는 거예요. 반대하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네가 아직 젊고 세상을 몰라서 그렇지. 결혼하면 반드시 후회한다.’ 이거예요. 가슴이 미어져요. 살면서 잘못한 것이 한둘이 아니지만, 아들에게 참 미안한 거예요. 돌아보면 정 선생 말마따나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한 인생을 내 맘대로 휘두른 것이죠. 후회하고 말고요.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내가 다르게 하겠어요? 그때는 예수님을 알지 못했고, 성공을 이루는 게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는데요. 일, 가정, 아이 교육, 모든 것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자신도 있었고요. 예수님을 모르는 인생이니, 눈에 보이는 게 전부였죠. 아들은 착하고 성실해요. 하지만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잘 되는 삶에 대한 집착이 그때의 나와 다르지 않아요. 내가 하는 걸 본대로 제 딸에게 하는 거예요. 제 아빠에게 실망하여 분노하고 눈물짓는 손녀딸을 보면 한없이 미안할 뿐이에요. 정 선생, 나이 먹는 건 이렇게 돌이킬 수 없는 부끄러움을 쌓아 가는 거예요. 나 이런 사람이라고. 그러니 나를 벤치마킹 하겠다느니 배우겠다느니 하는 말은 하덜 말어요.

 

부끄러움에 대한 성찰이 깊어지는 삶

 

말씀 중간중간 강변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반짝이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셨다. 말씀을 마치시며 고해성사하는 것 같다며 웃으셨다. 선생님은 당신을 존경하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으로 내 마음을 더 잡아당기신다. 당신의 실패담으로 가르치고 일깨우신다. 선생님 말씀대로라면 나이와 함께 쌓아온 ‘부끄러움’을 내어놓으심으로 깨우침을 주시는 것이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나는 반면교사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말이 좋아 敎師지. 누군가를 반면교사 삼겠다는 것은 그의 행태로 고통받았다는 뜻이고 상처 입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선생님의 실패담은 반면교사 삼을 것이 아니다. 무얼까, 한 노인의 실패담이 감동으로 오는 이유는. 나도 선생님 따라 말을 멈추고 흐르기보단 그대로 멈춰 반짝거리고 있는 듯 보이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 돌려 선생님을 쳐다봤다. 눈물로 촉촉해진 눈가가 강물을 따라 반짝 빛이 났다.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책 제목 하나가 툭 마음에서 올라왔다. 그리고 연달아 ‘성찰’이란 단어가 따라 나왔다. 삶의 성장이 긍정적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경험에 대한 성찰에서 나온다는 말씀을 최 선생님께서 하신 적이 있다. 심리학적으로 가장 성숙한 사람에게 관찰되는 것은 성찰의 능력이더라고 하셨다. 실패담을 말씀하시는데 오히려 고개가 숙여지는 것은, 오히려 나로 더욱 배우는 태도가 되게 하시는 것은 성찰의 힘이신가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쌓는 것이지만, 잘 늙는다는 것은 부끄러움에 대한 성찰이 깊어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카페를 나설 때 나는 한결 가벼워졌다. 내내 뭔가 선생님께 죄송하고 불편했던 마음 사라졌다. 뭔가 깊어지고 충만해졌다고나 할까. 선생님께서도 후련하고 가벼워졌다고 하셨다. 야심 찬 나들이 계획은 거의 수포로 돌아간 느낌이지만 마지막 카드가 하나 남아 있었다. 스마트폰 음악 앱에 저장해둔 노래를 틀고 카 오디오의 볼륨을 높였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어머나! 선생님이 깜짝 놀라셨다. CCM 가수 한웅재 목사님이 부른 ‘하숙생’이다. 이 곡도 언젠가 선생님께서 강의 중에 언급하셨었다. 그때 듣고 검색해서 알게 된 리메이크 연주이다. 느끼함 없는 감미로운 목소리로 차분한 피아노 반주에 맞춘 노래가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왔다. 선생님과 나란히 앉아서 들으니 가사 하나하나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순례길인 인생,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향방 없는 여행은 아니다. 돌아갈 집이 있는 이 여행이 길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춘기 아이와 갈등하고 있는 나는 금세 아이 결혼으로 골머리를 싸매는 날이 오겠지. 선생님의 오늘 모습처럼 탓하기보다 성찰하고, 통제하기보다 조용히 기도하는 중년을 살아야겠다. ‘인생은 벌거숭이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 없이 흘러서 간다’ 노래가 끝나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정 선생, 고마워요. 오늘 참 좋았어요. 덕분에 나를 돌아보게 되었어요. 아들에게나 누구에게든 잘못한 것들 이제 와 어쩌겠어요. 치러야 할 값이 있다면 이제라도 감당해야겠죠. 아들과 손녀 보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뿐이지만 회개하는 마음으로 더욱 기도해야겠어요.” 마침 한웅재 목사님의 ‘임계점’이란 찬양이 차 안에 신나게 울려 퍼진다.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내일의 몫 오늘의 내 삶을 힘껏 디뎌 일어서...’ 더욱 기도하시겠다는 말씀이 힘껏 디뎌 일어서신다는 뜻으로 들렸다. 한 덩어리가 된 신록의 숲과 한결 부드러워진 오후의 빛을 받아 반짝이며 흘러가는 강물이 여전하다. 성찰의 힘으로 누구보다 강인한,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쓸쓸한 노인을 따스하게 안아주시는 그분의 품이려니.

 

 

* 시니어 매일성경 2021년 5,6월 호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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