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생 채윤이가 생애 첫 투표를 했다.

저렇게 간절히 선거권 행사의 날을 기다리는 아이가 있을까 싶었는데.

2020년 19대 총선에서 어마어마한 한 표를 행사했다.

 

2002년 대선 때 채윤이 나이 세 살이었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 수민네로 개표방송을 보러 갔다.

방송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추운 겨울이 춥지 않았다.

세 살 채윤이가 우리 앞에서 춤을 추며 걸어갔다.

"창 바꿔보니 창 바꿔보니 희망이 보인다 창 바꿔보니 창 바꿔보니 노무현 대통령"

"두우 번 생각하며언 노무현이 보여요오~"

노래와 구호를 똑 부러지는 발음으로 따라 하던 채윤이.

그 날 그 밤의 벅차오르던 마음, 우리 채윤이의 춤과 노래 잊을 수 없다.

때가 때이니 만큼 식탁에서 그때 얘기를 자꾸 하게 되는데 현승이가 끼질 못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현승아, 너도 있었어! 엄마 뱃속에 현승이 있었어!"

6개월 태아로 현승이도 함께 한 시간이었다.

아, 그리고 생각해보니 민주당 경선 기간에 마음이 절박하여 금식기도를 했었다.

얼마나 절박하면 임산부가 금식기도 했다고 떠벌이던 기억도 새록새록.

 

2004년 탄핵정국 때 아기 현승이 부모님께 맡기고 다섯 살 채윤이 데리고 광화문에 갔었다.

"타낵꾸요, 민쥬수호, 타낵꾸요, 민쥬수호!" 
제 성격대로 가열차게 외쳤다.

돌아오는 길에 흥이 오를 대로 오른 채윤이가 아빠 어깨에 올라앉아 화통 삶아 먹은 소리로 노래를 불러젖혔다.

"갓써 제에자 사므라 셋쌍 마는 사람드를 셋쌍 모오든 영호니 네게 달련나니~~~이"

어린 채윤이와의 잊지 못할 몇 개의 장면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계셨다.

 

2020년 총선.

채윤이의 정치적 입장은 이제 엄마 아빠와 같고 또 다르다.

뉴스를 스스로 보고, 책을 찾아 읽고, 역사를 공부하고, 제 마음에 끌리는 곳으로 표를 던진다.

혹여 칸을 밀려서 찍을까 손이 떨렸다며 나와서도 "잘못 찍은 건 아니겠지?" 걱정을 한다.

 

내 절박함과 초조함도 채윤이와 다르지 않다.

2002년 대선 때와 다르지 않고, 내 인생 첫 선거 87년 대선 때와도 다르지 않다. 

선거는 내게 간절한 기도다. 

 

사전 투표로 먼저 기도하고, 오늘 하루도 기도의 마음으로 보낸다.  

"잊지 않겠습니다" 가방에 붙이고 다니던 약속을 떠올리며,

4월 16일을 기억하는 기도와도 한 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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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렘브란트

고난주간 지나고 있습니다. 성금요일과 부활주일 사이, 성토요일입니다. 작년에 깊은 공감으로 읽은 셸리 램보의 『성령과 트라우마』의 부제목은 '죽음과 부활 사이, 성토요일의 성령론'이었습니다. 금식과 눈물 콧물로 성금요일을 지내고, 우리는 바로 부활의 새벽으로 도약했습니다. 부활을 성경공부로만 배운 탓입니다. 정작 우리의 일상은 이미 덮친 고통의 실존을 살아내는 토요일인데 말입니다. 상실과 애도의 시간 성토요일. 저는 더 이상 여기로부터 도망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머물러 느끼고, 견디고, 애도가 필요한 이들과 함께 하겠다는 마음 뿐입니다. 이번 고난주간은 상실의 늪에서 오지 않은 부활을 상상하는 법을 배우며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깊이 머무르지도 못합니다. 남편이 교회 말씀 묵상 밴드에 일주일 동안 소설 같은 글을 쓰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목격한 이들의 증언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신학도로서 본문을 연구한 후에 자신의 마음을 비추어 상상력을 덧입혔습니다. 이번 주에는 밴드에 글이 올라오는 알람 소리로 시작했습니다. 베드로, 로마 병사들, 빌라도, 백부장이 등장했는데 오늘은 아리마대 요셉입니다. 오늘 아리마대 요셉의 목소리는 유난히 공감이 됩니다. 전문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집에만 있자니 너무 분하고 답답했습니다. 골고다로 가자니 차마 그분의 죽음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새벽에 열린 산헤드린 의회 때, 광기에 휩싸인 의원들의 기세에 눌려 제대로 반대하지 못한 것이 너무 마음에 걸렸습니다. 니고데모 의원과 저, 단 두 사람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죽이려 드는 의회원들의 기만을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저들은 정말 자기들이 하는 일이 여호와의 명예를 가리는 일임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겉으로는 율법을 내세우고, 전통을 보수하고, 나라의 안위를 위함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도둑놈들임을 백성이 다 알고 있습니다. 백성들의 고혈을 빨고, 온갖 특혜는 다 누리며 권세를 부리는 의회원들은 죽은시체나 다름없습니다. 대제사장들의 위선에 구역질이 날 정도입니다. 언젠가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통렬하게 비판하실 때 얼마나 시원했는지 모릅니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바꿔주실 줄 믿었습니다. 그분은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니고데모 의원과 저 요셉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신다고 했을 때, 드디어 그날이 오리라고 기대했습니다. 어떤 방법일지는 잘 모르지만, 선생께서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그때가 왔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가 선생을 배신했습니다. 의회는 유월절 전에 어떻게 해서든 예수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니고데모와 저는 여러 사람을 만나 어떻게 해서든 이를 막아보려고 했는데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갔습니다. 다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가만두면 안되었습니다. 그동안 정체를 숨긴 채 중립적인 척하면서 예수 선생을 지켜주려고 했는데, 제가 너무 비겁했습니다. 제가 더 확실히 노력했어야 했는데. 저 때문에 선생님의 운동이 좌절된 것 같아 비통하기 그지없습니다. 옷을 차려입고 골고다로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이 내려오면서 그분이 죽었다고 알려줬습니다. 아, 이렇게 일찍 돌아가시다니. 시간은 벌써 오후 3시쯤 되었습니다. 조금 있으면 안식일이 시작될 텐데, 자칫 선생의 시신은 공동묘지 쓰레기 더미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저는 서둘러 빌라도의 공관으로 갔습니다. 총독을 단독으로 찾아가 만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쪽저쪽에서 오해를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더는 숨지 않기로 했습니다. 더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선생의 시신이라도 잘 거둬 최소한의 장례를 치르게 해야 그나마 제 마음이 나을 것 같았습니다. 빌라도 총독에게 찾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내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한패로 몰려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빌라도가 사람을 보내 예수의 죽음을 확인한 후 순순히 내어 주더군요. 그는 끝까지 자기 손에 피를 묻히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의 죽음에 책임이 없음을 입증하려는 듯 보였습니다.

시간이 얼마 없었습니다. 빨리 움직여야만 했습니다. 얼른 한 사람을 시장으로 보내 시신을 쌀 삼베를 넉넉하게 사 오게 하고, 또 다른 종을 보내 제가 죽으면 가족 묘로 사용하려던 무덤에 선생의 시신을 임시 안치할 준비를 하게 했습니다. 갈릴리에서 올라온 예수의 어머니와 여인들에게 장례 절차를 설명해 드리려고 저는 서둘러 골고다로 올라갔습니다. 마침 예수의 시신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의 시신을 마치 아기를 안 듯 안고 있는 모습에 저는 기어이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내가 조금 더 용기를 내었어야 했는데. 돈을 좀 써서라도 의회원들의 마음을 좀 돌려놨어야 했는데.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예수의 시신을 들것에 옮겨 두고, 운구할 종들을 지목했습니다. 예수 선생과의 첫 만남이 떠올랐습니다. 니고데모 의원의 말을 듣고 저 역시 밤에 그를 찾아갔었지요. 저는 선생님을 보자마자 오래 기다리고 기도해왔던 메시아 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무수히 보아왔던 랍비들과 달랐습니다. 따뜻했지만 그 지성은 말할 수 없이 깊었습니다. 율법의 의미가 그렇게 선명하게 이해될 줄 몰랐습니다. 예수의 묵직한 손을 무심코 본 적이 있었는데, 지금 너덜너덜해진 그의 손은 차마 보기가 민망하고 끔찍했습니다. 가만히 예수의 손 위에 제 손을 포개 보았습니다. 아직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랍비여, 저는 당신이 하나님 나라를 새롭게 가져다줄 거라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용기가 없어서 오늘 새벽 당신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대제사장들이 마귀처럼 날뛰는 의회에서 제가 당신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 탓입니다. 제가 미온적으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제가 제 목숨 부지하고자 당신의 제자임을 드러내지 못한 까닭입니다.’

저는 울움을 참아야 했습니다. 곧 안식일이 시작되면 모든 게 허사가 됩니다. 얼른 움직여야 했습니다. 무덤은 가까웠습니다. 예수의 시신을 선반 위에 고이 모셔두었습니다. 준비한 향품과 향료를 서둘러 발랐지만, 시간이 충분치 않았습니다. 삼베로 시신을 둘둘 싸매었습니다. 마지막 얼굴을 가리기 전에 선생의 얼굴을 가만 들여다보았습니다. 저는 그때 다짐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선생님은 죽었지만, 여러 차례 다시 살아나실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래, 선생님의 꿈은 내 안에서 죽지 않았다.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에게 오실 것이다. 예수여, 잘 가시오. 못다 이룬 꿈은 제가 어떻게 해서든 이어 보겠습니다. 당신의 가족들 제가 잘 챙기겠습니다.’

얼굴을 삼베로 싸매고, 인사를 드리고, 무덤 밖으로 나왔습니다. 돌을 굴려 무덤을 막았습니다. 1년 후에나 다시 와서 흙으로 되돌아간 시신의 뼛조각을 모아 유골함에 담아 드릴 때나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여인들이 울면서 무덤가에 모여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빌라도가 보낸 백부장의 부하들이 무덤 앞을 지키기로 했나 봅니다. 아마도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 갈 것을 대비하는 모양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그동안 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살아왔습니다. 실은 의회에서 제가 예수의 제자임을 알리면 저는 곧장 파문당할 것이고, 제 사업장은 위기를 맞을 것이 분명합니다. 선생께서도 제게 굳이 당신의 제자임을 드러내라고 하진 않으셨습니다. 때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가 당신의 시신을 거두는 때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죄송하고 송구할 뿐입니다.

3일 후 선생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제자들은 활력을 되찾았습니다. 갈릴리를 다녀온 그들은 다시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저도 부활하신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할 일이 많을 거라며, 사도들과 한마음으로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고 긴히 부탁하셨습니다. 지난번 베드로 사도와 요한 사도가 의회에 붙잡혀 왔을 때 이미 의회원들 중에 적지 않은 이들이 예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을 풀어주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도들은 광장에서 복음을 전했고, 저와 니고데모는 의회에서 우리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일로 정쟁은 최고조에 이르렀는데, 야고보 사도는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 싸움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힘내십시오. 여러분 뒤에 제가 있습니다. 니고데모 의원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버려 두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힘을 내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십시오. 뒤는 제가 맡겠습니다.

주님의 장례를 맡은 의회원 요셉 드림

<마가복음 15:4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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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교황>,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미국, 2019 

 

❝이렇게 인기 있는 이유가 따로 있소?❞

영화 <두 교황>을 선택한 이유다. 이유를 따져가며 영화를 고르진 않는데. 관람하다 대사 한 문장을 듣고 뒤늦게 깨달았다. ‘아, 나도 이게 참 궁금했지!’ 교황 베네딕토 16세 역의 안소니 홉킨스가 교황 프란치스코 역의 조나단 프라이스에게 묻는다. 내 말이 그 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기비결, 나도 그게 궁금했다. 매력 있는 인간에 대한 관심이 많다. 매력은 자석의 성질 같은 것이다.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말 건네고 싶은 끌림 같은 것. 한 번쯤 만나서 내 얘기를 해보고 싶은 사람 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내게 그런 분이다. 역대 가장 존경받는 교황이라고 하는데, 내 마음은 존경심 반 팬심 반이다. 안소니 홉킨스 분의 베네딕토 16세가 묻는 ‘인기 있는 이유’를 찾아 런닝타임 2시간을 함께 달렸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찾았다. 이 글은 그것을 찾는 보물지도다.

❝로마에서는 뭐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답니다❞

제목이 <두 교황>이다. 한 교황이 아니고, 여러 교황들이 아닌 두 교황. ‘2’는 선택을 종용하는 숫자다. 2, 둘 앞에 서면 둘 중 한 편을 선택하고 하나는 버려야 할 것 같은 충동이 인다. 남자와 여자, 이성과 감정, 진보와 보수, 심지어 성과 속. 두 개의 바구니에 칼 같이 나눠담고 중간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이원론이다. 둘 사이는 넘나들 수 없고,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옳고 그름, 맞고 틀리고의 딱지를 각각의 바구니에 붙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둘이 있으면 하나는 옳고 나머지는 틀린 게 되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뼛속까지 이원론자인지, 생활형 이원론자인지 늘 확인한다. 제목 <두 교황>을 보는 순간 이미 한 교황 편을 들기로 작정했다. 무의식적인 작정이다. 영화 역시 나 같은 이원론자 관객의 심리를 잘 부추겨 교황선출 투표에 참여시킨다. 물론 나는 주저함 없는 한 표를 행사했다. ‘지도자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지도자가 되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라는 플라톤의 말을 인용한 턱슨 추기경에게 기꺼이 설득 당했다. 라칭거(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이 되기를 정말 원하고, 게다가 자기 아니면 안 된다는 확신에 차있다. 벌써 편은 나뉘었고, 나는 호르헤(교황 프란치스코) 편이다. 내 편을 정하고 나니 자기 확신 뚜렷한 보수주의자 라칭거가 도통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은퇴허락을 받으려는 추기경 호르헤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만난다. 교황의 여름별장 정원에서 만난다. 언뜻 봐도 많이 다른 두 사람이니,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사사건건 부딪치고 만다. 교회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강한 담을 치려는 교황과 예수의 자비로 담을 헐어야 한다는 추기경. 지키려는 보수와 변화시켜 앞으로 나아가려는 진보는 동성애, 이혼, 피임, 성직자의 삶 어느 것 하나 합일점을 찾지 못한다. 교회를 향한 비판이 거세지는 이유를 교황은 담 밖에서 찾는다. 서구의 상대주의, 방임주의. 추기경은 그 반대, 내부에 원인이 있다며 치명타를 날린다. 신부의 아동 성추행과 그것을 묵인한 교황! 분노와 슬픔으로 벌게진 눈을 하고 당장 그 성직자를 해임하고 교회법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고 한다. 고해신부의 몇 마디 마법 같은 말로 죄를 용서해주는 것으로는 안 된다면서. 죄는 얼룩이 아니라 치료받고 아물어야 하는 상처라며. 가장 몰입해서 관람한 장면이다. 두 사람의 논쟁을 숨 가쁘게 따라갔다.

 

초유의 사태 코로나19 정국이다. 온 나라와 개인의 일상을 멈춰 세운 바이러스를 부르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이분되어 있다. 우한폐렴으로 부르는 사람, 코로나로 부르는 사람 사이에 견고한 담장이 서 있는 듯하다. 저쪽 편 사람이라고 느껴지면 대화 한 마디 나누지 않아도 벌써 분노 섞인 피로감이 밀려온다. 분단된 남쪽에서 정치 정서적으로 다시 한 번 나뉘어 오갈 수 없는 땅에 사는 느낌이다. 어느 한 편에 서서 담을 세우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슬픈 일인 줄 알면서도 나 역시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때로 드러내고, 때로 흥분한다. 두 교황의 물러섬 없는 입장차를 관객의 객관, 객관적 관객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교황 프란치스코의 골수팬이며, 호르헤 추기경의 입장에 동의하지만 어쩐지 영화초반 콘클라베의 투표 때처럼 확실하게 마음이 기울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한 말 중 어느 것도 동의할 수 없소”라는 말로 대화는 끝났다. 기시감이 드는 슬픈 단절감이었다.

 

그러나 희망이 있다. 정원에서 교황을 기다리던 호르헤 추기경에게 수녀가 우산을 하나 주었었다. 비가 오지 않으니 필요 없다는 말에 수녀가 복선을 깐다. “로마에서는 뭐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답니다.” 그렇다. 이제 영화의 시작이고, 두 사람 사이 뭐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잖은가. 게다가 잊을 만하면 교황이 찬 심박조율기가 소리를 낸다. 정신을 일깨운다. “멈추지 마세요. 계속 움직이세요.”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커피 드시겠소?❞

두 번째 대화가 시작된다. 밤이다. 낮이 가고 밤이 왔고, 쉼의 공간에서 다시 만났다. 용건이 있는 호르헤 추기경이 은퇴서류를 꺼내자 교황은 그냥 조용히 쉬자고 한다. 그리고 말을 건넨다. “차나 커피 드시겠소?” 어색한 분위기를 깨는 대화로는 날씨 얘기가 딱이다. 아니면 차나 커피를 권하는 것. 뻔하고 흔한 이 제안이 좋았다. “아니요, 밤늦게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 자서요.” “나도 그렇소.” 두 사람 대화가 처음으로 교차한다. 낮의 정원에서 평행선을 달리던 두 교황이, 각각 와인과 환타를 마시며 혼밥 했던 두 사람이 커피를 마실 수 없는 공통점을 발견한다. “오늘 밤은 형제처럼 있고 싶소.” 그리고 밤의 대화가 시작된다. 환한 낮에 내놓기 어려운 속내 드러낼 용기가 생기는 시간이다.
확신의 아이콘과도 같은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아니 라칭거 형제가 불확실함과 모호함에 대한 두려움을 꺼내놓는다. 자연스레 이어지는 호르헤 추기경의 이야기 역시 불확실 아니, 확신에 관한 이야기이다. 호르헤는 신부로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을 위해 오래 기다렸다. 이렇다 할 확신 또는 신의 음성이 들려오지 않자 사랑하는 여인과의 결혼을 결심한다. 얄궂게도 신은 청혼하러 가는 길에 호르헤를 부르신다. 청혼의 아름다운 시간을 기대하고 나온 사랑하는 여인에게 배신감의 상처를 남기고 신과 결혼한 호르헤 베르골리오의 러브스토리이다. “커피 한 잔 할래요?”로 시작한 밤의 대화는 좋아하는 음악, 텔레비전 프로그램, 점점 가벼워지다 농담으로 끝난다. 늘 혼자였던, 인기 없는 라칭거가 호르헤에게 말한다. “같이 있으니 좋군요.” 형제처럼 함께 보낸 시간이다.

❝당신이 신이 아닌 것을 용서합니다❞

호르헤 추기경에게는 용건이 있었고, 베네딕토16세 교황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두 교황의 세 번째 만남 장소는 바티칸 교황청의 중심이다. 교황의 계획은 종신직인 교황 직에서 물러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교황으로 적절한 사람은, 아니 꼭 필요한 사람이 베르골리오라는 확신이다. 말, 행동, 생각 등 어떤 것에도 동의가 되지 않는 사람, 자신과 너무나 다른 베르골리오가 말이다. 전통의 수호자, 보수의 아이콘인 라칭거가 스스로 전통을 허물어 종신직에서 물러나겠다니. 변화를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의 충격적인 선언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호르헤의 용건이 아니라 라칭거의 계획에서 말미암았던 것이다. 정원에서의 날 선 논쟁도, 형제처럼 함께 한 밤의 대화도 다 라칭거 계획의 일부였다. 라칭거의 파격 선언과 제안대로 호르헤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교황이 되자면 넘어야 할 산이 만만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큰 산은 물론 담장 밖이 아니라 안에 있었다. 호르헤 자신 안에.

 

아르헨티나의 군사정권 시절 호르헤 베르골리오는 예수회 총장직을 맡고 있었다. 많은 신부와 수녀들이 군사정권의 칼에 목숨을 잃었고, 베르고글리오는 정권에 저항하던 예수회 사제들과 친구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십자가처럼 지고 있다. 죄책감에 그치지 않고, ‘독재자의 친구’라는 오명을 주홍글씨처럼 가지게 되었다. 진보의 아이콘, 가난한 이들의 신부, 소박한 삶을 사는 인기쟁이 추기경에겐 이런 흑역사가 있었던 것이다. 호르헤를 선택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에겐 계획이 있었고, 또 호르헤 추기경에 대한 파일이 있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비밀처럼 품은 부끄러움을 누군가 이미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괜찮다고 말해줄 때는 치유가 일어난다. 파일을 가지고 있는 교황이 이미 다 알고 있었으며, 그럼에도 차기 교황에 적합하다 인정해준다. 그런데 은밀한 부끄러움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모양이다.
교황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 호르헤 스스로 자기를 받아주어야 했다. 젊은 날의 자신과 화해해야 했다. 아니 용서해야 했다. 여름별장 정원의 첫 대화에서 눈에 불을 켜고 값싼 용서를 비판했던 호르헤 추기경. 그 날선 비판의 칼끝은 자기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 죄를 씻을 수 없고, 스스로 용서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자기를 겨눈 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하고, 그것은 자신과의 화해이며 무엇보다 용서여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정신적 자만심에 시달린다오. 당신은 신이 아니에요. 우리는 인간일 뿐입니다.” 형제인 라칭거가 교황의 권위를 가지고 일깨워준다. 그리고 교황으로서 추기경의 죄를 용서한다.

 

“나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의 죄를 용서합니다.” 교황의 용서가 바로 신의 그것이 되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선언은 얼마나 중요한가. 가톨릭의 전통이 가진 고해성사의 힘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들렸다. “당신이 신이 아닌 것을 용서합니다.” 호르헤도 나도 우리 모두는 신이 아닌데, 얼마나 자주 스스로에게 신적인 완벽함, 결벽을 요구하며 비난하는가. 나도 그 선언을 듣고 싶다. “당신은 신이 아니고. 신이 아니기에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합니다.”

❝멈추지 마세요, 계속 움직이세요❞

인기의 비결을 묻는 교황 베네딕토16세에게 호르헤 추기경이 답했다. “그냥 나 자신으로 살려고 할 뿐입니다.” 그냥 자신으로 사는 거라…. 질문보다 더 어려운 답이다. 아닌 게 아니라 교황이 혼잣말을 한다. “나는 나답게 살려고 할 때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더군요.” 자기다워진다는 것, 얼마나 막막하여 어려운 일인가. 인기의 비결을 찾아 여기까지 왔건만 싱거운 답이다. 보물이 이렇게 쉽게 숨겨져 있을 리 없지! 이번에는 교황이 추기경에게 고해성사를 청한다. ‘삶을 즐기는 용기가 없었다’ 고백한다. 나름대로 자기다움에 충실한 라칭거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즐길 수 있는 용기’인 듯하다. 성추행 범죄를 덮어준 것보다 본질적인 죄인지 모른다. 삶을 즐기지 못하는 것, 수많은 당위의 담을 쌓아 자신을 가두는 것. 라칭거 역시 용서받음이 필요하다. 다른 말로 하면 즐기지 못하던 자기와의 화해라고 할까.

 

원칙주의자 라칭거, 자부심에 찬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실패를 인정한다. 호르헤 신부가 젊은 날의 실패를 인정하고 그것을 보상하는 삶을 살고 있듯이. 자기다움이란 실패, 또는 실패에 대한 아픈 성찰에서 찾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실패자에 머무르지 않고 실패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떠안는 태도를 두 교황에게서 본다. 자기 안에 갇혀 성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고해성사를 봐줄 신부, 죄를 사해줄 신의 대리자, 아니 그저 함께 해주는 형제가 필요하다. 자기다움으로 가는 길엔 분명 나를 비춰주는 거울인 누군가가 필요하다. 한 번, 두 번, 세 번의 대화는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두 형제의 아름다운 여정이었다.

 

보물을 찾았다!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모두, 또는 둘을 넘어 제 3의 자리로 움직이고 변화하는 것이다. 실패한 나에 멈춰 있지 않고 화해라는 신발을 신고 계속 움직이는 것. 생각이 다른 너와 나 사이 옳고 그름에 머무르지 않고 변화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정작 답은 라칭거의 입에서 나왔다. “당신은 권력도 아니고, 지성도 아니고 특별하게도 살아온 방식대로 앞으로 나가는 사람입니다. 추기경님은 달라졌어요.”

 

호르헤는 호르헤대로 라칭거는 라칭거대로 나는 나대로 내가 살아온 방식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실패를 정직하게 대면하고 화해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용건’ 아닌 ‘계획’을 가지고 내내 대화를 이끌어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 마음이 끌린다. 프란치스코 교황만큼이나. ‘둘’을 보면 꼭 하나로 기울고 싶은, 편을 나누고 싶은 이 버릇을 좀 고치고 싶다. 아니, 이런 나와 화해하는 쪽으로 멈추지 말고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 좋겠다.
커피 아니고, 와인도 환타도 아닌 맥주로 음료수 통일한 두 교황이 월드컵을 관람하는 마지막 장면이 아름답다. 물론 같은 편을 응원하지는 않는다. 이겨야 맛이고 지면 기분은 나쁘겠지만 승리만이 옳고, 진다고 해서 틀린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나는 독일이 이겨도 아르헨티나가 이겨도 상관없다. 양쪽 모두를 기분 좋게 응원할 뿐이다. 두 교황이 다 좋고, 우리에겐 두 교황 모두 필요하다.

- 격월간지 <민들레> Vol.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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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단순한 과거 경험의 퇴적이 아니다. 편집된 과거다. 일본의 철학자 우치다 타츠루는 "당신이 과거의 사건을 회상할 그때그때마다 당신의 과거는 ‘개정판’으로 다시 쓰이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세월이 만드는 거리는 그때 그 사건을 달리 보게 한다. 엄마 죽음이 불러낸 아버님의 죽음은 다시 개정판이 되었다. 엄마의 마지막 시간, 격리된 몸이었다는 것이 떨쳐지지 않는 고통이다. 아버님과의 마지막 시간을 다시 떠올리니 얼마나 축복된 시간이었던가 싶다. 1주기 즈음 쓴 글이 있다. 『나의 성소 싱크대 앞』에 실었던 '아버님의 소주잔'을 다시 읽어 보았다. 아버님과 함께 한 시간이 오늘도 내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구나 싶다. 아버님의 소주잔은 내 마음에 살아 내 종교적 독선에 찬물을 끼얹어 일깨우고 있다. 채윤이와 현승이가 이렇게 잘 큰 것은 착한 할아버지 덕분이다. 아이를 키우며, 내 일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아버님의 헌신이었다. 오늘 내 일상에 아버님의 삶이, 그렇다 '삶'이다. '죽음'이 아니고. 종말의 부활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살고 계신다. 어제 쓴 글과 겹치는 이야기가 많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내 나름의 새로운 개정판이다. 잘라내고 오려붙이고 확대하고 축소하며 반복되는 기억, 편집된 과거를 한 번 더 읽어주시길. 

 

 

아버님의 소주잔

설거지를 하려고보니 그릇 사이로 소주잔 하나가 뒹굴고 있다. 배시시 웃음이 샌다. 큰 녀석이 그릇장 안쪽에 있던 걸 꺼내서 물 컵으로 사용하고 휙 던져 놓은 것일 터이다. 보수 기독교 골수분자의 집에 웬 소주잔? 이것은 정통 보수 기독교 골수분자인 며느리가 단 한 분, 시아버님을 위해서 마련한 아버님 전용 소주잔이다.

나는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대학(그것도 걸걸한 여대)도 다니고 사회생활도 했기 때문에 술자리, 술 문화가 전혀 낯설지 않지만 결혼하기 전까지 집안에서의 음주행위는 상상도 못하고 자랐다. 신혼 초에 시댁에서 잔치가 있어서 처음으로 설거지 하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설거지 그릇 중에 소주잔이 여러 개 있었는데 살짝 손이 떨리는 거였다. ‘아, 내가 술잔 설거지를 하다니. 우리 엄마 알면 뭐라 하실까?’ 이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문화충격이었다.

겉으로는 ‘술도 같이 한 잔 안 마셔주는 아들 소용없다’며 호기로우셨지만 아버님도 늘 아들 며느리 눈치를 보셨다. 착하고 소심하신 아버님은 같이 식사를 하러 나가서 한 잔 생각이 나셔도 냉큼 주문을 하지 못하셨다. 어느 날 부턴가 식당에 가면 쭈뼛거리시는 아버님에 앞서 내가 먼저 소주 한 병 주문을 했다. 착하고 소심한 아버님의 약주사랑이 참 곱게 느껴졌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평소 말이 없으신 분이 약주 한 잔 하시면 유쾌해지시기 때문이었다. 식당에서 뿐 아니라 아버님 생신을 우리 집에서 차려야 하는 날에 장을 보면서 과감하게 소주 몇 병을 카트에 담았다. 상을 받으시고 뭔가 허전하다 싶으셨던 그 순간에 냉장고에서 나온 초록색 병에 ‘아니, 이걸 샀어?’ 하면서 좋아하시던 아버님 표정이 눈에 선하다. 집에 소주잔이 없어서 머그컵에 소주를 따라 드셨고, 그 이후 언젠가 아버님만을 위한 소주잔을 갖춰 놓게 되었다.

그 힘들다는 ‘워킹 맘으로 두 아이 양육하기’가 아버님의 도움으로 참 수월하였다. 아이를 좋아하실 뿐 아니라 여성보다 더 섬세하고 살뜰하게 보살피시는 아버님으로 인해 남보다 수월하게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자라서 어느 정도 독립이 되었을 때도 필요할 땐 언제든 집으로 오셔서 유치원 마친 아이를 받아주시고 간식을 챙겨주시기도 하였다. 일주일에 한 번 씩 집에 오셔서 방과 후의 아이들을 돌봐주시던 기간이 있었다. 막내아들이 늦깎이 목회자가 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기도 했다. 일을 하고 밤에 집에 와서 냉장고를 열어보면 검정 비닐봉지로 꽁꽁 싸인 병이 하나 들어 있다. 낮 시간에 아이들과 떡볶이 간식 사다 드시며 한 잔 걸치시고 남은 막걸리였다. 행여 목회자 아들 집에 흔적을 남겨 놓았다가 누가 될까봐 어찌나 꽁꽁 싸매두셨는지…….

무엇을 드셔도 척척 소화시키신다고 자랑이시던 아버님이 위암 말기 판정을 받으시고 50여일 투병 끝에 하늘나라로 가신 지 1년이다. 아버님께서 당신의 죽음을 받아 들이시기에는, 남은 우리들이 떠나 보내드릴 준비를 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 당황해하며 혼란스러워 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수십 년 교회를 다니셨지만 예수님을 향해서 살가운 표현 한 번 입 밖으로 내지 않으셨다. 믿음 좋은 아내와 자녀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가신다는 식으로 주일마다 꼬박꼬박 예배는 빠지지 않으셨다. 교회 일에 열심인 어머님을 향해 ‘내가 수염 영감탱이 예수한테 마누라를 뺏겼어. 아니 영감탱이가 아니지’ 하셨다. 늦게 신학교에 가서 열정을 다해 공부하는 아들이 좋은 성적에 장학금을 받아오자 못내 아쉽다는 듯 ‘이제라도 그 머리로 공무원 시험 봐라’시며 먹고 살 걱정을 하시기도 하였다.

그런 아버님을 바라보며 아버님과 함께한 마지막 50일 동안 내가 한 짓이 무엇이었던가. 믿음 없는 아버님이 입술로 고백하시도록 해야 한다며 속으로 얼마나 안달복달 했던지. 맘먹고 사영리를 들고 아버님과 독대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주변에서는 그런 얘기 할 수 있는 건 그래도 막내며느리가 제격이라며 서둘러라하는 사랑어린 재촉도 있었다. 새벽기도에 가면 내 불안에 겨워 ‘이 땅을 떠나시는 아버님이 당신의 품에 눈뜨게 해달라’며 빗물 같은 눈물을 쏟아내곤 하였다. 설상가상 아버님께서는 심방오신 분들과 예배드리는 걸 거부하셨다. 마지막 호스피스 병동에서 간호를 하고 있는데 교회에서 병문안을 오셨다. 간단히 예배드리려 하는데 고개를 돌리신다. 싫어하시는 것이 역력한데 그 자리에 계시도록 하고 싶지가 않았다. ‘아버님, 한 바퀴 돌까요?’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기도하시는 분들을 뒤로하고 나오는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한편으론 불안의 솜방망질이던지. 믿음, 구원, 믿음, 입으로 시인, 구원.... 아, 혼란스럽다.

남겨진 시간이 얼마만큼 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아버님 하늘나라로 가시던 날 우연인지 (그 분이 계획하신 필연인지) 연거푸 세 번 씩이나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이미 의식을 많이 잃으신 아버님께서는 그저 모든 것을 보호자의 판단에 내어맡기고 누워계실 뿐이었다. 마지막 예배는 막내아들이 함께 한 자리였고 예배를 마치고 찬양 한 번 더 부르자는 목사님의 제안이 있었다. ‘죄인들을 위하여 주님 찾아 오셨네’를 부르는 중 ‘예수 안에 생명 있네.’ 후렴을 부르는 순간 우리 착한 아버님 가만히 이 세상을 붙들었던 손을 가만히 손을 놓고 하늘 아버지의 손을 잡으셨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신 것처럼 이 땅에서의 마지막 50일 동안 누구에게도 폐 끼치지 않고, 큰 육체적 고통도 없이 그렇게 지내시다 하늘 그 곳으로 돌아가셨다.

돌이켜보면 아버님의 마지막 50일은 한 없이 고요하였는데, 내 마음은 양철지붕에 소나기 떨어지듯 요란했다. 그 요란한 양철지붕 아래에는 ‘나는 믿음이 있고, 아버님은 믿음이 없다’는 일말의 의문도 없는 전제가 숨어있다. 도대체 그 근거 없는 판단은 어디서부터 나온 것이란 말인가? 아버님 하늘나라로 떠나신 지 딱 1년이 되는 날이다. ‘일하는 엄마’ 였던 내게 든든한 기댈 언덕이셨던 아버님께서 떠나신 자리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아버님께서 돌봐주시던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을 돌볼 만큼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아버님께서 내게 무엇보다 큰 숙제와 더불어 엄청난 선물을 남기고 가신 탓이다. ‘너의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는 한 마디를 마음 깊은 곳에 넣어주시고 가신 탓이다. 마지막 50일 ‘아버님 믿음의 고백, 입술의 고백....’ 이러면서 안달복달 하던 내 마음의 깊은 동기가 진정 천국에 대한 소망이었는지, 믿음의 기도였는지를 처음부터 되짚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버님의 믿음이 아니라 ‘내 믿음은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하는 영원의 원점 같은 곳으로 돌아와 섰다. 아이를 낳고 산후 조리하던 기간과 신종플루 걸렸던 주간 외에는 주일에 빠져본 적이 없다?(이걸 가지고 주일 성수했다며....), 청년 때부터 손에 꼽을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하고 많은 교회봉사를 했다? 미운 사람이 생겨도 ‘하나님, 원수를 사랑하게 해주세요?’ 하면서 예수님 코스프레를 좀 하고 산다? 그런 것들에 근거한 ‘나는 믿음 있는 사람’ 라는 확신에 겨워 살아온 날들에 씌운 거품을 비로소 확인한다.

소주잔을 보면 한 잔 하신 아버님께서 흥에 겨워 부르시던 뽕짝 멜로디가 생각난다. 또 제일 좋아하는 찬송가라 하시며 부르시던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소심하게 흥얼거리시던 허밍 같은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마지막 50일을 걱정 대신 사랑으로 더 잘 떠나 보내드릴 걸’ 하는 후회 같은 건 넣어두려 한다. 터무니없는 ‘자기의’의 발로로 발을 동동 구르며 보냈을지언정 아버님과 하늘 아버지 사이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비밀 같은 사랑의 교제가 있었을 터이니. 또한 다른 사람들의 믿음 없음에 관한 걱정이랑 집어치우고, 과대 포장된 내 믿음의 자가 평가서나 돌아볼 일이다. 다만, ‘거기서 해처럼 밝게 빛나실’ 아버님이 오늘 더욱 그리운 것이다. 소주잔을 닦다 그 투명한 유리에 어른거리는 아버님의 모습이, 생색내지 않으셔서 더 따스했던 그 사랑이 사무치게 그리운 것이다.

입으로는 ‘하늘소망’을 그럴 듯하게 노래하면서도 마음으론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곳이 천국이다. 이 땅에서 당신이 그렇게도 사랑하시던 손주의 작은 손을 놓자마자, 바로 그 순간 영원한 하늘 아버지의 손을 잡으셨다 생각하니 천국은 얼마나 가까운 곳인지. 우리네 삶과 얼마나 가깝게 붙어있는 곳인지. 아버님과 함께 한 13년 동안 내가 필요한 것을 그렇게 주시기만 하시더니 떠나시면서 가장 귀한 선물을 남겨두고 가셨다. 깨끗하게 닦아놓은 소주잔에 남겨두신 사랑과 선물이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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