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촌에 드라이브 갔다가 K 목사님 밥 사주고 올까? 오케이!
오늘 안 된다네. 남한산성 시장에 김치 사러 갈까? 오케이!
그냥 카페 갈까? 오케이!
와아, 이건 사진 찍으라는 프레이팅이네.... 찰칵찰칵... 찰칵... 아, 잠깐 또 찰칵... 잠시만! 찰칵...
(촬영 끝나도록 하염없이 기다려 줌)
수련회에서 내가 맡은 프로그램 의논 좀 할까? 들어볼래? 오케이!
안 되겠다, 그냥 책 보자. 오케이!
에어컨 춥다. 갈까? 오케이!
돌고래 상가 가서 반찬 살까? 오케이!
기름 넣고 세차할까? 오케이!
저녁은 벽산아파트 장에서 떡볶이 사서 먹을까? 오케이!
나 떡볶이 사는 동안 세탁소에서 수선한 바지 찾아줄래? 오케이!
애들 삼겹살 숙주볶음 해주려고. 숙주 반 봉지만 씻어 줄래? 오케이!
 
기본적으로 안 되는 것이 없음.
 

당신 참 온유하고 수용적인 사람이야. 뭘 말하면 안 된다는 게 없어. (욕구가 뚜렷하고 안 되는 게 많은 나로서는 존경스럽지,라는 말은 하지 않음) 기본적으로 성찰적이고. 그래서 보통 사람, 보통 남자와는 차원이 다른 훌륭한 사람이야. 그런데 중년 고개를 넘어가면서 보니까, 위험한 지점이 있더라. (가끔 벽처럼 느껴진다는 말은 하지 않음. 아슬아슬했는데 '위험한 지점' 정도의 표현을 찾아냄) 중년의 고개를 넘으면 누구든 내 성격의 빛이 아닌 그림자를 마주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거 진짜 어렵지. 보통 남자들이 그 과업을 제대로 하는 걸 잘 못 봤어. 생애 전반에 착하게 살아온 사람일수록 더 어려운 것 같다. 당신도 그런 면에서는 경각심을 가져야 해. (딸이 그 지점에서 답답해 죽는다는 얘기는 안 했음) 다행인 건 당신이 설교하는 사람이라는 거야. 아니, 단지 설교하는 사람이 아니라 설교한 대로 살기 위해서 애쓰는 목사라는 거지. 설교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기도하기 때문에 뼈아픈 한 발을 내디디는 걸 알아. 당신이 목사인 것이 당신 자신에게, 내게, 아이들에게 진심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소명 때문에 당신을 바꾸려 애쓰는 고군분투를 아이들도 알아. 당신 좋은 목사야. (좋은 남편이라고는 하지 않았음. 정확히 말하면 목사 점수보다 남편 점수가 조금 높다고 하는 게 좋겠는데... 남편 점수는 유동적이라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데… 요즘 좀 하락세라 각성이 필요하다는 것도 여기서만 밝혀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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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오랜 시간 혐오한 죄를 회개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십자가 상'에 대한 혐오이지 우리 주님의 십자가는 아니다. 그럼에도 회개한다. 그 불경한 마음을, 그 교만한 냉소를 회개한다. 친히 십자가 지신 나의 예수님께서는 "딸아, 네 마음 다 안다. 그 혐오와 냉소가 나를 찾는 진정한 마음이었던 것을 잘 안다." 하시는 줄 알지만. 그럼에도 머리를 조아려 그 높아졌던 마음을 회개한다.
 
집 베란다 앞에 거대한 십자가 상이 있다. 어쩌면 저렇게 주변과의 조화를 철저하게 배제한 크기이며 배치일까, 처음 이사 왔을 때는 '저 십자가 상만 없으면...' 딱 마음에 드는 뷰라고 생각했었다. 이게 날이 갈수록 저 십자가가 좋아지니 무슨 조화냐? 새벽 어스름한 하늘을 배경으로 말없이 섰는 그리 예술적이지 않은 십자가가 자꾸 좋아진다. 십자가는 그대로이건만 계절 따라 날씨 따라 배경이 바뀌어서일 것이다. 폰 카메라 앨범에는 온갖 배경의 저 십자가 사진이 많아서 따로 폴더를 만들어야 할 지경이다.
 
십자가 상이 싫었지 예수님이 싫었던 적은 없었다. 십자가 상이 견딜 수 없었던 시절, 예수님을 향한 갈망은 더 절절했다고 이제는 더 확신있게 말할 수 있다. 지난주 어느 날, 태풍이 올라온다는 소식이 있던 저녁이었다. 아이들과 식탁에 앉아 농담 따먹기 하고 있는데 베란다 밖으로 무지개가 떴다. 천공의 성 라퓨타 구름에서 뻗어 내리는 사다리처럼 기묘하게 떨어지는 무지개라니! 게다가 그 배경으로 구름을 향해 치솟은 십자가라니! 아, 이런 이미지를 나의 하나님 말고 누가 만들어 보일 수 있겠냐고!
 
남편에게 보냈더니 남편 있는 교회 쪽 하늘도 예사롭지 않은지, 남편은 그 시각 하늘 사진 사진 몇 장을 전교인 단톡방에 올렸다. 저 십자가. 교회 강대상에 놓인 사이즈도 모양도 참으로 적절하고 마음에 드는 십자가가 어떤 저녁 하늘을 배경 삼아 팔을 벌리고 서 있다.  이 역시 창조주 아닌 그 누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이미지가 아니다. 애초 화해한 상태로 가까워지고 멀어지고 하는 나의 예수님과 더 가까워진 저녁이었고, 십자가 상과 다시 화해하는 순간이었다.
 
베란다 앞 십자가 트라우마(?)는 10 년도 거슬러 올라가는 시절 명성교회 앞에 살던 시절의 것이다.  (2011.11.17 명성의 복이여, 영원하라) 매일, 매주일 마주하는 소음과 주차난의 불쾌감이었고, 한창 조용히 치열하던 신앙 사춘기 앓이의 통증이기도 했다. 교회 가야 하는 시간이 되면 배가 꼬여 거실 바닥에 뒹구는 일도 있었고, 어떻게도 해소되지 않는 차가운 분노가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기도 했다. 그래서 실제로 온몸이 아프기도 했었지.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다녔던 교회에는 십자가가 없었다. 생각해 보니 건물 안팎으로 십자가가 하나도 없었다! 아, 그랬구나!  그 정신이 좋고 자랑스러웠던 젊은 시절에의 부끄러움과 억울함의 몸부림이었는지 모르겠다.
 
붉은 네온사인 십자가로 가득 찬, 무덤 같은 도시의 밤 사진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남아 있다.  그 붉은 무덤 십자가로부터 선을 긋고 "다른 크리스천"임을 피력하고파 '지성의 제자도'에 탐닉하던 시절도 있었네.

십자가 없이 내 인생을 설명할 수가 없구나. 십자가는 늘 그대로였는데, 계절 따라 날씨 따라 배경이 바뀌면서 내 마음의 풍경이 달라졌다. 날씨만큼이나 쉽게 바뀌는 내 마음이라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대로이건만, 질곡의 시간을 견딘 십자가가 되었다. 주일 예배 찬양 중에 '어저께나 오늘이나'를 부르다 이 가사에 울컥했다. 
 

세상 지나고 변할찌라도
영원하신 주 예수 찬양합시다

 

 
 

명성의 복이여, 영원하라

지난 2년간 내 집 베란다에 앉아 명성이 자자한 이 교회의 대성전 건축을 목도하게 하셨으니 주의 은혜가 크시도다. 땅을 다질 때부터 온갖 공사 소음으로 환란을 주시어 내 인내를 연단하셨고,

larinari.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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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꽉 찬 수제 샌드위치.
꽉 채워지는 어떤 마음.

염미정은 단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다가
어렵게 어렵게 구씨를 추앙하고 추앙받으며
드라마 마지막 회에 겨우 채워졌는데…
며칠 텅 비었던 나는
샌드위치 하나로 꽉 채워졌다.
 
감사합니다!
기꺼이 맡고, 기꺼이 나누는 이가 주는 풍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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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카눈으로 종일 비가 오는 날에

김치참치 부침개를 했다.

사진으로 보이진 않지만 참치도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기름병을 꺼내 부쳤다.

카놀라유이다.

맛있게 먹었다.

두 번째 판 주문이 들어와서 다시 구우려는데,

아, 들기름! 

들기름은 냉장고에 있어서 바로 생각을 못했다.

두 번째는 들기름에 들들 구웠다.

사진으론 구별되지 않지만 

위는 카놀라유, 아래는 들기름이다.

고소함의 차원이 다르다.

 

사진은 많은 '찐'을 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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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정동의 인도 음식점 '갠지스'의 맛과 비주얼을 다 따라잡았다. 핵심은 카레 담는 청동 그릇이다. 이것은 정말 따뜻한 관찰력, 세심하고 고요한 사랑의 결과이다. 뭘 먹었네, 어쩌네, 애들하고 농담 따먹기 하는 걸로 연명하는 이 블로그를 진심 다해 찾아와서는 행간까지 꼼꼼히 읽고 기도해 주는 윤선이 작품이다. 지난번 귀국해서 만났을 때 받았다. 보정동 카레 집 사진 올린 것을 보고, 거기서 본 카레 그릇을 찾아 여기저기 발품 팔았을 윤선이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말로 안 해도 느껴지는 그 마음. 언니... 이렇게만 불러줘도 느껴지는 마음.
 
깨끗이 씻어서 싱크대 안에 모셔 두었는데... JP는 “언제 그 그릇에 카레 먹냐"고 한 번씩 채근을 해댔고. 제대로 먹으려고 이렇게 저렇게 찾아보다 인터넷에서 파는 '난'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릇빨 제대로 살려서 카레를 먹었다. 그리고 하루 이틀 지나서 날아온 소식. 윤선 태훈의 책이 드디어 나왔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남편에게 알리고 다음 날인가, 그다음 날인가. 알라딘에서 두 개의 택배가 왔다. 하나는 김종필, 하나는 정신실. 각각 득달같이 주문한 것이다. 같은 책 두 권을 나란히 놓고 보니, 이게 우리의 마음이구나 싶다. 그나마 윤선이와 나는 책으로 글로 자주 연결되고 있지만 태훈과 종필은 자잘한 소식을 주고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2004년에 가정교회에서 함께 했던 짧은 만남으로 우리 마음 깊이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진심으로 신뢰하는 유일한 선교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JP 역시 태훈이라면 언제든 마음 활짝!이다. 네팔 파송 후 처음으로 귀국하여 했던 선교보고를 기억한다. 그때 내가 썼던 글의 제목도 생각난다. "자랑 없는 선교 보고"였다. 후원이 절실하지만, 후원을 위해서 사역을 팔지 않으려는 마음이 보였다. 잘한 게 왜 없겠냐만, 그저 받아들이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어떻게 고군분투하고 있는지만 말했었다. 잡은 그 자리에서 책을 다 읽었다. 기막힌 사연으로 네팔 언약학교를 맡아 경영하고 어려운 과정에서 하나님을 만나면서 '훈련받아' 좋은 선교사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 네팔 선교사로 현장에서 훈련받기 전부터 이들은 좋은 사람들이었다. 정직한 사람이어서 정직하고 좋은 선교사가 된 것이다. 자랑스럽다. 이들과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다. 
 
청춘을 드려
천국을 산다
 
제목 참 잘 지었다. 결혼하자마자 바로 선교사로 나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리 많은 나이도 아니었는데... 여러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파송되기 전 잠깐 우리 '목장'에서 머물렀었다. 짧은 시간이었다. 우려와 걱정과 안타까움으로 보냈었다. 청춘을 드린 건 내가 확실히 아는데... 천국을 살았을까? 살았다고 한다. 본인들이 살았다면 산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부부도 청춘을 드렸다. 천국을 살았을까? 산 것 같다. 살고 있는 것 같다. 불쑥 이런 마음이 든다면 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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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침은 뭐야?

군고구마.

하아, 생각만 해도 덥다.

그러네... 이 더위에 아침으로 먹을 게 못 되네.

엄마, 그러면 내일 아침에 군고구마 먹을 때 에어컨 틀게 해 줘.

콜! 에어컨 틀고 먹자.

 

(아닌 게 아니라 고구마 굽느라고 에어프라이어기 돌리니 소리만 들어도 덥고, 고구마 구수한 냄새가 그렇게 더울 수가 없었다. 시의적절한 선택에 대해 숙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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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 카페에 가는 현승이에게 오늘은 도시락 싸줄 게 없다고 했더니 샌드위치 사서 들어가겠단다. 아침도 빵인데 점심까지 빵은 좀 그렇다 싶어서 이리저리 굴려도 뭐가 떠오르질 않는다. 현승이가 "아, 간장 계란밥을 내가 해서 가져가야겠다!"라는 말에, "오, 그러면 엄마가 파기름 내서 계란볶음밥 해볼게!" 하고 텅 빈 냉장고에 생존한 계란과 파로 볶음밥을 만드는데 식탁 의자에 앉은 종알종알 현승이.

 

와, 오늘은 공부가 잘 되겠다.

왜?

맛있는 도시락이 있으니까. 그게 기분이 달라. (이런저런 종알종알....) 도시락, 도시락이란 말 자체가 좀 설레지 않아?

아닌데.... 엄마는 도시락이란 말이 부끄러움인데.

아, 이게 경험에 따라 말의 느낌이 다르구나.

 

(이때 냉장고 문 열렸다는 소리가 띠리링띠리링)

 

나는 저 소리가 싫어. 조르고 보채는 소리 같애.

그래? 엄마는 비난하는 소리 같애.

아, 이게 사람마다 같은 소리도 느낌이 다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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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솔직히 닭갈비 이상해.
뭔가 싼 맛이 나고 맛이 없어.
 
대용량 양념 닭갈비를 사서 마늘, 파 등 더 넣고 양념을 했는데도 맛 감각이 뛰어난 애들 입맛을 속이질 못했다.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 냄새도 잡고 맛도 더 내줄 이런저런 양념을 추가하고 양배추, 고구마, 떡, 깻잎을 넣어 함께 볶았다. 정자동 닭갈비 맛집에서 넣는 걸 다 넣어본 것이다. 
 
캬아, 엄마! 역대급이야. 대박 맛있어.
너무 맛있는데! 안 되겠다. 식당처럼 사이다까지 한 캔 해야겠다.
 
하면서 두끼 연속 새로 태어난 닭갈비를 먹어줬다. 교만하게, 아주 교만하게 말했다. 
 
현승아, 하나님은 굽은 자로도 직선을 그으시는 분 이래. 엄마를 요리에 있어서 하나님 끕으로 인정해 주면 좋겠어. 엄마는 트레이더스 닭갈비를 정자동 맛집 닭갈비로 만드는 분이야. 엄마를 추앙해!(뒤늦게 ‘나의 해방일지’ 정주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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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식구들보다 두어 시간은) 일찍 일어나는 새다. 일찍 일어나 연구소 카페에 '읽는 기도' 필사해서 올리고, 교회 말씀 묵상 밴드에 묵상 나누고, 기도하고, 글 좀 쓰고 있으면 늦게 일어나는 새들이 한 마리씩 나온다. 밤늦게까지 연습하고 늦잠 자는 채윤이를 제외하고  JP(제이피, 아니고 종필로 읽어야 함)과 현승 두 남자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한다. 이 여름 아침 식사는 아이스 라떼와 빵 한 조각이다. 그러고 앉아서 아침을 먹노라면 나는 뭔가 막 신이 난다. 신이 나서 이 얘기 저 얘기, 농담 따먹기를 하노라니... 어느 날 현승이가 말했다. "와, 나 여기 앉을 때부터 엄마가 입을 쉬지를 않네. 조잘조잘조잘조잘..." 그러자 JP이 "나 그래서 귀에 염증 생긴 거야." (귀가 아프고 어지러워서 '이석증' 재발인가, 하고 이비인후과에 갔는데 귀에 염증이 생겼단다.) 니 엄마 때문에 귀에서 피가 나. 이쪽 귀잖아. 딱. 그래서 염증 생긴 거야 "
 
나 저항 없이 인정했음. 왠지 정말 그런 것 같아...ㅜㅜ 그래도 좀 참을 수는 없음. JP은 매사 좀 귀찮아 하는 스타일이라... 귀찮게 하는 걸 정말 싫어하는데... 하지 말라고 짜증내면 더 귀찮게 하고 싶다. 귀 염증, 내 탓이라 여기겠음. 이번 기회에 진심 회개하고 장난 그만치기로! (JP에게는) 
 
늦잠 자고 싶은 채윤이가 "제에~발 좀 아침에 엄마 아빠 식탁에서 얘기 좀 하지 말라고오! 잠 좀 자자고오! 아, 진짜 그리고 얼음 꺼내는 소리... 진짜!!" 한다. (채윤이 방이 주방 바로 옆) 그런 말을 들으면 또 참을 수가 없다. 다음 날 아침, 라떼 만들려고 얼음을 푸다가... "김채윤 깨워야지, 김채윤 짜증 나게 해야지. 우헤헤..." 얼음삽으로 통을 휘저어서 소음을 일으켰다. 신이 나서 아드레날린이 폭발이다. 커피 내리던 현승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 그러다 진짜 지옥 가!
(절레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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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키우면서 조건을 내거는 방식의 교육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조건적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필요하고 좋은 것이면 뭐든 해줄게"같은 메시지를 넣어주고 싶었다. "뭘 하면 뭘 해주겠다. 뭘 해주는 대신 뭘 해라"는 행동주의적 방식을 썩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방식이 당장 습관을 만들어주는 것에는 도움이 되는데, 자칫 조건적 사랑을 존재에 심을 수 있으니까. 대단한 양육철학이기보다 내 성격의 취약함(또는 강점)이라고 해두자.
 
대학생활 한 학기 마치고 반수를 하겠다는 다 큰 아들에게 조건을 내걸었다. "대신! 아침마다 독서 30분 하자."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아침을 먹은 후에는 어김없이 소파에 앉아 독서를 한다. 누나 채윤이가 "꼭 학생부실에 끌려가서 인성 훈련 하는 것 같애"라며 좋아서 낄낄거리고. 내가 집에 없는 아침에는 학주 없어도 혼자 학생부실 가서 성실히 셀프 인성교육 하는 뒷모습을 촬영하여 보내기도 한다.
 
첫 책으로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읽었고, 그다음엔 성경의 '욥기'를 읽고 싶다 하여 <메시지 성경>으로 읽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친구들 독서모임에서 읽어야 한다며 <연금술사>를, 지금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고 있다.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내가 청년들 강의 때마다 권하는 책인데, 사실 현승이 취향은 아니다. 그래서 더욱 첫 책으로 추천했다. 예상대로 재밌는 책은 아니지만, 결국 한 주제를 얘기하지만, 사례가 많아서 읽을만했다는 평이었다. (스캇 펙이 반복해서 말하는 '한 주제'에는 스며들었을 것이라 나는 믿는다.) <욥기>를 읽으면서는 "속 터진다. 이거 가스라이팅 아니야? 욥이 억울해서 죽을려고 하는데..." 하는 신선한 평을 내놓더니, 아빠와 심도 있는 토론도 했다. 아침 루틴으로 잘 지키면서 첫 책 <아직도 가야 할 길>을 금세 끝냈기에 장하다는 칭찬 끝에 '책거리' 얘기가 나와서 수다수다 떨었다. 그러면서 자체 현승이식 책거리! (이런 개그가 난 그렇게 좋더라고...)
 

엄마, 여기 책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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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달쯤 전인가. 연구소 선생님들과 내 꿈을 가지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었다. 가족들이 기차 타고 어딘가로 떠나고 나만 기차역에 남겨진 꿈이었다. 하룻밤을 어딘가에서 보내야 하는데, 내가 선택한 방은 독거노인이 살다 죽어서 생긴 방이었다.  이런저런 흥미진진한 질문과 대답 끝에 이런 질문이 왔다. "가족들이 없고 혼자라면 어떻게 살고 싶어요?" "수도자로 살고 싶어요." 툭 튀어나온 답이었다.
 
남편에게 꿈나눔 얘길 했더니 "당신 지금도 거의 수도자로 살고 있잖아."라고 했다. 그런가? 싶기도 하고... 이 꿈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초대인가. 지난주 며칠 수도원 피정에 다녀왔다. "일하고 기도하라"는 문장 그대로 살고 있는 베네딕도회 수사님들의 하루 일곱 번 기도에 함께 했다. 밥 챙겨 먹고 뒤돌아 서면 금세 기도 시간이 되어 버려서 나는 "밥 먹고 기도하고"가 되었다. 수도원 진입로의 짧은 메타세쿼이아 길을 수십 번 오가며 걸었다. 잊지 못할 아름다운 길, 이제는 내 마음에 난 길! 그 와중에 장화 신고 나란히 걷는 노 수녀님들은 씬 스틸러였다.  
 

'영성 신학'을 제대로 배우고 싶은 마음에 10여 년은 이 학교 저 학교 신학교들 홈페이지를 검색하며 보냈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대단한 '영성'이 아니라 깊은 기도에 대한 갈망의 검색질이었다. 영성은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에 관련된 것이고, 하나님을 찾는 인간 편에서의 행위는 '기도'이다. 기도하지 않으며 '영성'을 가르치는 신학자들에게 '영성'을 배울 수는 없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았던 것 같고. 그래서 오래 찾고 머뭇거렸지 싶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 "영성사" 수업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기도하는 교수님께 영성사를 배울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수업 마지막 날이 팀 발표 날이었고, 나는 토론을 이끌게 되었는데 그날 주제와 상관없는 '나를 위한 질문'을 끼워 넣었다. 한 학기(내게는 4학기) '문화와 영성'을 공부하며 얻은 것에 대한 자문자답이었다. 영성은 "생활과 증거"체험을 다룬다. 영성신학은 사변 신학이 아니다. 영성사(History of Spirituality)는 기도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 기도의 역사이다. 나는 이렇게 나의 배움을 정리한다. '성인'이라 불리는 분들은 "다양한 상황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기도할 수 있고, 기도를 통해 '사랑'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모두 영성사 교과서 서문에 나온 말이다.) 기도하는 교수님께서는 종강 후 베네딕토회 수도원으로 초대하여 '시편 성무일도 피정'을 경험하도록 해주셨다. 
 
돌아보면 신앙 사춘기의 시작은 '기도의 메마름'이었다. 더 깊은 기도를 하고 싶은데, 더 깊은 기도의 길이 있을 텐데 내 앞은 막다른 길이었다. 더욱 막막한 것은 마침 목회자로 위치가 바뀐 남편 덕에 목회자의 아내가 되었는데... "새벽기도 출석"을 강요받으면서 어떤 무너짐이 시작되었었다. 영혼의 숨이 콱 막혀버린 상태로 어쩌다 만난 에니어그램, 그래서 알게 된 Centering Prayer, 그리고 내가 몰랐던 오랜 기도의 전통들, 기도의 대가들, 그리고 담을 넘어가 만난 오랜 영성의 전통, 그 끝에서 수도원의 기도 피정이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세운 치밀한 계획 같다.  기도 찾아 삼만 리, 수도원 찾아 삼만 리... 이제 신앙 사춘기의 마침표를 찍어야 할까 보다.
 

 

머물던 기간 중, 은퇴하신 노(老) 수녀님들이 피정 중이라는 것을 알았다. 老 수녀님들이라... 아마도 장화 신고 우산 쓰고 메타세콰이아 길을 걷던 그분들이다. 또 한 분, 수도원 입회가 내 나이와 비슷한 수사님 한 분의 뒷모습이 자꾸 눈길을 사로잡았다. 수도회 입회한 때가 내가 태어나던 즈음이었고, 평생 한 곳에서 매일 "일하고 기도하는" 똑같은 삶을 살아오신 것이다. 그 수사님이 입장할 때마다, 그 뒷모습을 볼 때마다 뭉클하고 뜨거워졌다. 피정비를 내는 봉투에 이렇게 썼다. "한 곳에 머물러 기도하는 수사님들의 정주(定住) 덕에 눈에 보이는 것을 좇아 끝없이 헤매는 세상과 거기 사는 저 같은 사람이 그나마 하나님을 잃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수사님들 한 분 한 분을 위해 기도드리겠습니다." 딱 이 마음이다.
 
* 봉쇄 구역을 지키는 저 귀여운 청솔모, 까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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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과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땅에 있는 성전에서 섬깁니다." (히 8:5)

 

어제 자 묵상 말씀이다. 교회 말씀 묵상 밴드에서 히브리서를 나누고 있다.  "이 땅의 삶은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천국을 바라보고 여기는 그림자처럼 여기며 살자. 천국은 좋은 곳, 여기는 하찮은 곳!" 이원론적 인식으로 가져갈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땅의 성전이 하늘을 반영한 것이라고 왔다. 땅에 있는 성전이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늘의 모형을 본떠 만든 것이다. 원형은 하늘에 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는 주기도문도 생각난다. 내가 지금 여기, 이 땅에서 하는 예배와 삶 전체가 하늘의 모형을 비춘 그림자여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들린다. 스캇 펙이 쓴 사후 세계에 관한 소설 제목은 "저 하늘에서도 이 땅에서처럼"이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는 말씀의 역방향의 가능성이다. 관계는 이렇듯 상호적인 것 아닌가.
 
하늘의 모형을 비추는 그림자가 된 오늘이 천국이 되어야 하고, 그렇게 사는 오늘 하루가 저 영원한 천국과 이어진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아침 말씀 묵상은 하루 분 일용할 영의 양식이라 여기는데... "오늘의 양식"이 그것이었다. 실은 전날 남편과의 말다툼으로 마음이 먹구름이었다. 오늘 마음의 지옥을 살면서 죽어 눈 뜬 곳이 천국이길 바랄 수 있겠는가, 생각하며, 지옥 같은 마음을 해결해야겠구나 싶었다. 오후에 용기 내어 남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사과할 용기, 내 잘못과 내 마음의 결핍을 인정할 용기는 오전에 있었던 "꿈 집단"의 나눔 덕이다. 진실한 대화로 내 마음을 알게 되었다. 전날 밤 남편에게 휘둘렀던 날카로운 말의 칼은 '연결'에의 갈망이었다. 꿈 작업의 힘을 빌어 자존심 내려놓고 진심의 사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었다. 한참 후에 답신이 오고... 지옥 같았던 마음에 천국이 조금씩 스며들었다.
 
모처럼 개인 하늘이 아까워 저녁 산책에 나섰다. 빗물 웅덩이에 하늘이 담겨 있는 이 멋진 장면을 발견! 누추하고 답이 없고 엉망진창인 웅덩이 같은 내 마음에도 하늘이 담겼다. 땅이 하늘에 가 닿을 수 없으니 하늘이 내려와 땅에 담겼다. 만나려면 서로의 간격이 좁아져야 한다. 중간 지점에서 만나든, 누가 더 빨리 달려 많이 움직이든 어쨌든 움직임이 필요하다. 오늘 여기서 하늘을 살 수 있는 이유는 하늘이 친히 내려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성육신 사건이다. 스펙터클한 내적 전쟁을 가만히 정리해 준 한 장면의 선물이다. 그러고는 오늘 아침의 연구소 묵상은 또 이러하지 않은가! 이분을 얼마나 성실한 분인가. 내게 필요한 말씀을 얼마나 성실하게 반복해서 또 하고 또 하고 또 들려주시는 분인가.
 

예수님의 육화는 우리가 인간으로 있는 곳에서 하느님이 우리를 만나신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하느님이 둘 사이의 간격을 하느님 편에서 완전하게 극복하신다. 구원의 문제는 그것이 십자가에서 극적으로 연출되기 전에 이미 해결되었다.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좋다는 사실은 베들레헴에서 이미 밝혀졌다.

자기를 지킬 수 없는 어린 아기 안에 하느님이 숨어 계시고 드러나셨듯이, 그리스도인에게는 영적 능력이 언제나 무능한 사람들 안에 감추어져 있다. 하느님이 사랑받고 나누이려면 나약한 인간의 몸을 입는 모험을 감당하셔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가슴을 울리고 일깨우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는 개념이나 신학 이론과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물론 이것을 시도하는 이들이 있긴 하다). 사람은 사람하고 사랑에 빠진다. 

나약한 어린아이 안에 하느님은 완벽하게 숨어 계시고 거기에서 완벽하게 그리고 더없이 사랑스럽게 드러나신다.

<리처드 로어 묵상 선집>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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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오늘 예배 끝나고 바로 와?
바로 가냐고?
아, 맞다! 연구소 워크숍이지? 아아아으… 엄마 요즘 왜 이렇게 어딜 많이 가?
왜애? 엄마 어디 가는 게 싫어? 엄마가 집에 있다고 크게 다른 것도 없잖아?

무슨 소리야? 엄마가 있는 집과 없는 집은 그 자체로 다르지. 엄마가 있어야 집이 집 같고, 안정감이 있고, 집에 들어오는 맛이 나고 그러지. 겉으로는 그냥 지낼지 몰라도 엄마가 없으면 마음이 텅 빈 것 같단 말야. 집에 들어올 때도 기대도 없고 그래....

 

정도의 답을 기대하며 물었는데, 예상과 달랐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하아... 없는 것보단 낫구나...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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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 감자가 박스로 나와 쌓이기 시작하면, 감자 가격이 만만해졌다 싶으면, 감자철이 온 것이다. 그러면 어김없이 채윤이가 "감자 샐러드 먹고 싶다. 엄마 감자 샐러드 해 줘." 한다. 우리 채윤이는 귀신이다. 많은 날 많은 끼니를 트레이더스 반 조리 음식으로 살고 있지만, 이럴 때 한 번 대대적으로 해봐야 한다. 오이도 사다 줘, 감자도 으깨 줘(부드럽고 착한 남자 현승이 손에 으깨진 감자라 이번 샐러드엔 덩어리가 무척 많음.) 현승이가 많이 도와줬다. 맛있게 만들어졌다. 만드는 것보다는 먹는 역할에 충실한 채윤이가 맛있게 드시면서...

 

"엄마, 그런데 감자 샐러드에 왜 햄을 넣는 거야? 다 햄이 들어가 있어. 그러면 완전히 맛이 이상해. 다른 맛이야."

 

보통은 다 넣는다. 너희는 엄마 샐러드에 익숙해서 그렇다. 처음부터 그렇게 먹었던 애들은 그게 또 제일 맛있는 거다. 그러니까 익숙한 맛을 맛있게 느끼는 거다. 주절주절 지루한 설명을 하고는 "그래서! 절대 음식은 없어! 다 상대적이야" 라고 했더니.

 

"아니야, 절대 음식은 있어! 엄마 음식!" 이라고 했다. 유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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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두고 간직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우연히 찾아든 선물같은(다른 더 좋은 표현이 없을까?) 시간이었다. 대학원 4학기를 완전히 마치는 마지막 종강 날이었다. 수업 마치고 늘 수녀님을 댁까지 모셔다 드리곤 했는데, 학생으로서 특혜였다. 그날 수업으로 시작하여 별별 얘길 다 나눈 것 같다. 이건 진짜 상상도 못 한 일인데. 대학원 생각을 하면서 학교를 결정하는 문제로 의논을 하기도 했었다. 이 학교로 결정하고 "어느 신부님 강의는 꼭 들어보라"는 말씀을 해주실 때도 이런 날을 상상이나 했냐는 말이다. 4학기 차에 수녀님이 우리 대학원에 강의를 나오시게 되고, 그 과목은 무려 <중세 여성 신비가들>이었고, 박사논문으로 연구하신 베긴(Begine) 신비교사 '안트위르펜의 하데위히' 강의였으니! 이건 하나님께서 너~어무도 나만 생각하시는 건 아닌가 싶으신 것이었다. 너무 내 위주로 커리큘럼 짜고 계신 건 아닌지. (나한테 왜 이러시냐고, 도대체 왜 나한테...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 진짜 많이 투덜거리고 대들었는데... 하나님, 당신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학기 세 과목은, 아니 세 분의 교수님은 인생 종합 선물 세트였다. 오랜 시간 '스승의 날'마다 박탈감 같은 걸 안고 보냈다. 신앙 사춘기를 통해 젊은 날 존경하던 스승님들 다 보내고 텅 빈 마음이었을까? 올 스승의 날에는 정말 세 분 스승님께 정성을 다해 마음을 표현했다. 지난날의 박탈감이 다 치유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 수업 마치고는 수녀님과 차 한 잔 하자는 발걸음이었는데, 갑자기 정해진 반포대교, 그리고 입구를 잘못 찾아 들어가 카페와는 한참 멀어졌고, 걷는 게 힘드실 것 같아 빈 벤치가 보이면 무조건 앉자고 우겨서 자리를 잡았다. 앉자마자 이게 무슨 일! 바로 반포대교 분수쇼가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 자리는 로열석이었다!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 담을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횡단이 아니라 종단이었다. 1517년 종교개혁 시대의 담을 넘어 초세기부터 16세기 스페인 영성에 이르는 영성의 강을 여러 차례 오르고 내린 것 같다. 간간이 고대 그리스까지도 거슬러 올랐었다.  이 강물에 몸을 맡겨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며 흘렀다. 예습, 복습, 자기주도 학습. '습'이란 습은 다 하며 행복했다. 목말랐던 바로 그 배움이 딱 거기 있었고. 그렇게 헤엄치다 발에 땅이 닿아 디디고 섰더니 원래의 내 자리이다. 내가 나고 자란 교회, 혹독하게 신앙 사춘기를 겪었던 엄마의 품, 엄마의 교회, 개신교회, 지금 여기의 교회. 그간 가졌던 많은 의문들이 2000년 영성의 강물 위에서 나뭇잎 한 장 같은 것이 되었다. 횡단의 대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종단으로 밝히 알게 된 출생의 비밀 같은 내 영성의 역사로 자부심이 커졌다. 그렇게 보낸 4학기 마지막 강의를 마친 밤에 참 잘 어울리는 종강파티였다.
 
논문만 쓰면 된다.
논문 따위!...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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