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또 편지를 보내왔다. 아름다운 것, 사랑스러운 것을 총동원하여 마음을 보내왔다. 책상 앞에서는 뜯어볼 수 없는 편지라, 노트북 뚜껑을 딱 덮고 '봄날 우체통' 앞으로 나가야 했다.
 

2020년 봄은 잃어버린 봄이다. 봄과 함께 색도, 맛도, 생명도, 사랑도 모두 잃었었다. 여러 번 써서 퇴색한 단어이지만, 흑백 세상이었다. 퇴색... 색이 없는 봄이었다. 갑자기 눈앞에 색이 드러난 적도 있지만, 그럴 때는 상처를 받았다. “꽃 피지 마! 우리 엄마가 죽었는데 꽃이 피는 건 잔인해!” 그렇게 2020년 봄을 통째로 잃어버리고 맞은 2021년 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달랐다. "이렇게 아름답다고? 세상이?" 하면서 봄 산책을 다녔다.  엄마를 잃고 얻은 막연한 것이 있었는데, 그 막연한 것은 '영원한 것'과 닿은 것 같았지.

 

꽃보다 엄마

영혼 이제야 나는 하나님이신 그분이 몸을 입고 인간이 된 이유를 알았다. 죽음으로, 가장 극적인 죽음, 극형으로 '몸'을 버리신 이유를 알겠다. 아주 잠깐 인간으로 사시다 그 몸을 버리고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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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주 앞에서, 마치 연한 순과 같이, 마른땅에서 나온 싹과 같이 자라서,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사 53:2)
 
어제 29일, 산책을 나가 먼저 만난 것 연한 순들이었다. 아, 이사야 선지자가 쓴 '연한 순'이란 메타포는 이렇게 아름다운 아름답고 깊은 것이었구나! 살포시 올라온 연한 순에 눈을 맞추고 사진을 찍자니, 요즘 묵상하고 있는 요한복음 예수님이 마음에 살아왔다. 그분, 연한 순 같은 분이지. 그런 분이지.
 
엄마의 죽음이 사순시기 안에 있어서 더 큰 선물이 된다. 2022년 봄에는 바흐 칸타타 actus tragicus와 함께 엄마의 때가 얼마나 좋은 때였는지를 생각했었다.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것, 격리된 채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떠나신 것이 어떻게도 떨쳐낼 수 없는 아쉬움이었다. 이제 와 생각하니, 바흐 칸타타에 담아 엄마가 보낸 편지였다. 천국에서 바흐와 만나 작당했을지 모를 일이다.  "자, 우리 신실에게 부활을 고대하라고, 소망을 불러일으킬 메시지를 보내기로 합시다. 당신의 음악을 좋아하니 적절한 곡 추천부탁이외다."

 

악투스 트라지쿠스(actus tragicus)

3월 11일, 엄마 2주기이다. 엄마 2주기, 코로나 2년. 2년 만에 코로나에 걸려버렸다. 몸도 마음도 죽음에 가까워지는 날에 엄마 2주기를 맞았다. 엄마의 마지막 나날, 요양병원의 '격리'로 함께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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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오는 엄마의 편지는 죽음이라는 편지봉투에 담긴다. 죽음의 계절이 오는 편지이다. 예고된 가장 비참하고 찬란하고 죽음,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온다. 꽃망울이 촛대처럼 달린 목련나무가 대부분인데, 벌써 피고 벌써 져버린 목련꽃이 있었다. 져버린 꽃이 슬프지 않다. 아, 슬프지만 다시 찬란한 슬픔이다. 죽음은 얼마나 좋은 것인가.
 

자, 이제 탄천 길이다. 민들레, 아장아장 걷는 우리 채윤이 첫걸음마를 축복하던 그 민들레다.
 

초점을 맞춰도 맞춰도 도드라지질 않아서 여기까지 찍었다. 저 보라색 꽃의 이름이 좀 충격적인데 "큰개불알꽃"이다. 가만히 눈 맞추고 이름을 불러보면, 어쩐지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꽃마리인 줄 알았다. 내적 여정 벗 중에 "꽃마리"라고 불리는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는데, 냉큼 톡을 보냈다. 그대의 계절!... 이라고. 꽃마리 아니라고, 검색해 보니 "봄맞이꽃"이라고. 아, 이건 재작년 엄마 무덤에서 본 그 하얀 꽃이다. 기억할게, 봄맞이꽃.
 

바닥에 딱 붙어 들여다보고 있는데, 지나가던 아저씨가 "이 꽃 이름 뭐예요?" 하기에 당당하게 "꽃마리요!" 했는데... 어떡하지? 아저씨한테도 미안, 벗님 꽃마리한테도 미안. 할 수 없다. 자꾸 이렇게 틀린 이름을 부르며 다시 들여다 보고, 미안해하고 하면서 나의 꽃이 되는 것이다. 그 아저씨 올봄에 꼭 진짜 꽃마리를 영접하시길.
 

처연하게 핀 냉이꽃이 화려한 벚꽃 못지않게 멋졌다. 화려한 자태로 주목받는, 친구들도 많아서 떼로 피어있는 벚꽃을 부러워하지 않고 자기로 피어있는 냉이꽃, 리스펙. 
 

내가 주목하고 사진을 찍어주는 것에도 크게 개의치 않겠지만, 나는 너의 멋짐을 보았어!라는 의미로 다른 냉이꽃 독사진을 여러 장 찍어주었다. 
 

얘는 꽃다지. 꽃 이름보다는 내겐 가수의 존재감으로 크게 다가오지만, 오늘만큼은 꽃다지꽃으로만 만나기로!
  

이건 좀 보너스였는데. 더 많은 열매 맺기 위해 포도나무 가지를 치신다는 주일 설교가 생각나는 장면을 만났다. 여기에 그분의 센스와 익살! 저 멀리 경부고속도로변 간판 글 보시게나. "JESUS LOVES YOU" 사랑하니 가지 치는 거다. 가지치기는 사랑이다... ㅎㅎ
 

그리고 또 빼놓을 수 없는 제비꽃. 봄 편지 마지막은 노래로 마친다. 장필순이 부릅니다. 제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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