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대구 어느 교회의 수련회에 초대받아 다녀왔었다. 처음 만남이 아니다. 함께 모여사는 공동체로 시작한 교회이고 오래전에 내적 여정 세미나로 다녀온 적이 있었다. 오래전 그날이 참으로 의미 있는 날(영성 일기와 시국선언문)이어서 말이다. 이래저래 특별한 기억으로 남은 교회이다. 오랜만에 다시 찾아 만난 목사님과 날수를 헤아렸다. "벌써 7년이네요! 아, 그래요? 7년이나 지났군요..." 하고 나는 당연히 촛불집회를 떠올렸다.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첫날, 졸이는 심장으로 내려갔던 그 길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뜨거웠던 겨울이 벌썬 7년 전의 겨울이구나!  헌데 목사님은 다른 기억을 말했다. "부임하신 지가 벌써 7년이나 되셨으니... 어떠신가요? 그때 남편 목사님께서 새로운 교회로 청빙 받으셨다고..." 
 
아, 교회 7년! 꽉 채운 7년이구나... 7년이라... 도통 현실감 없는 세월의 헤아림이다. 최근 뉴스앤조이의 기획 기사로 몸 담고 있는 교회 이야기가 쓰였다. 나는 주야장천 나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다. 무슨 생각을 했네, 어느 새를 만났네, 뭘 해 먹었네... 그냥 한 생각을, 스쳐 지나듯 만난 새 한 마리를, 만들어 먹은 음식을 글로 쓰면 다른 것이 보인다. 그것과 나 사이 거리가 생기면서 말이다. 뉴스앤조이 기사로 누군가 '써 준' 나의 이야기를 읽는 느낌, 이 느낌이 생경하다. 내가 나의 이야기를 쓰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물론 나의 이야기라 할 수는 없다. 내가 몸담고 있는 교회 이야기이고, 대부분의 이야기는 나의 체험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기사는 현실감 없는 나의 7년을 살아있는 나의 역사로 느끼게 한다. 객관적인 기사에 나는 왜 위로를 받는 거지? 
 
이 교회로 오는 일, 누구 하나 찬성하는 사람 없는 선택이었다. 현실감을 장착했다면 하지 않았을 선택이었고, 견디지 못할 시간이었는지 모르겠다. 모두들 힘들 거라고 했지만, 무엇이 힘들지 얼마나 힘든지 알 수는 없다. 힘들 거라고 말했던 이들이 알 수 없는 그 힘듦, 말할 수 없는 시간을 지나면서 아마도 이것은 '벌'일 것이다, 생각했다. 한국교회와 불특정 목회자를 싸잡아 혐오하고 냉소했던 신앙 사춘기 비행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지은 죄를 착한 남편이 받는다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많이 회개했다. 
 
연구소 카페에서 헨리 나우웬의 『두려움에서 사랑으로』로 영적 독서를 하고 있다. 이 즈음 주제가 "원망에서 감사로"이고, 엊그제 내용은 이것이었다.
 

하나님이 내 영혼의 돌덩이를 깎아 원망의 돌조각들을 파내시도록 가만히 있는 것, 그것이 진정한 영성 계발이다. 돌조각이 떨어져 나갈 때마다 크고 작은 아픔이 있다.
익숙한 감정,
아까운 개념,
값진 아이디어,
결정적인 인생 계획,
정당화될 만한 태도,
습관적 행동,
특히 소중한 우정이나 공동체
를 내려놓아야 할 때마다우리 마음에 항변이 생긴다. 그러나 작업 중인 하나님의 애틋한 손길을 볼 용의가 있다면 우리는 알게 된다. 그렇게 많이 깎아 내야만 빈 공간이 생긴다는 것을. 거기서 비로소 우리가 채워지고 치유되어 마침내 하나님이 의도하신 우아한 춤추는 자로 변화될 수 있음을 말이다. 

 
지난 주일, 추수감사주일에 현실감 없는 7년을 헤아리며 감사기도를 드렸다. 자아의 돌조각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견디도록 도와준 눈빛과 표정과 손길들을 떠올리며 일일이 복을 비는 기도를 드렸다. 헨리 나우웬의 말처럼 감사는 쉬운 감정이나 태도가 아니다. 감사와 짝을 이루는 원망과 닿아 그것을 마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감사에는 원망과 상실감의 흔적이 어른거릴 테니 순도 100%의 감사란 불가능한 것일지 모른다. 원망의 흔적이 깊은 감사일수록 찐 감사일 거라고... 겨우겨우 부지하는 부족한 믿음을 가진 나를 스스로 격려한다. 
 
7년 전, 더함교회에 강의 갔을 때 사모님께서는 아이를 품고 있었다. 그때 뱃속에 있던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서 저보다 어린 아기들을 돌보는 일곱 살 언니가 되어 있었다. 교회 동생들 돌보는 목사의 딸, 내겐 너무나 익숙한 나다. 그 사랑스러운 아이 로은이가 손수 꽃을 한 송이 만들어 주었다. 팔공산 맑은 공기를 배경으로 사진 한컷으로 찍어 마음에 담았다. 7년은 그런 세월이다. 세상에 없던 생명이 나와 제 손으로 꽃 한 송이를 만들도록 여무는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남은 여생, 뭘 하든 7년은 견뎌보기로 마음먹었다. 혹 내가 죄를 지었다면 7년 정도의 벌은 달게 받겠노라 결심했다. 야곱이 라헬을 얻기 위해 7년을 복무했고, 느부갓네살이 교만의 죄로 7년 짐승 같은 생활을 한 것이 여사로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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