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산책에 실패했다. 비가 그쳤나 싶어 나가면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이대로 비 맞으며 걸을까, 들어가 우산을 챙겨 나올까 갈등하다 생각보다 차거운 비에 집으로 들어오기를 두세 번. 완전히 그친 것을 확인하고 밤산책에 나섰다. 길은 젖었으나 적당한 기온, 적당한 바람에 며칠의 결핍감이 싹 사라졌다. 아무도 없는 탄천 길 좋다. 아, 좋다.

 

향기로 존재감 뿜뿜하는 아카시아가 코와 눈과 마음을 잡아끌었다. "하나님, 아카시아 향기가..."로 시작했다는 어머니의 대표기도가 다시 생각난다. 아카시아 향에서 하나님을 느끼는 감성과 영성이 우리 어머니에게 있다는 것, 아는 사람이 있을까? 어머니 영혼의 아름다움을 나만큼 아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 어머니는 아카시아꽃이다.

 

탄천에 찔레꽃이 있었다고? 길 오른편에 흰꽃이 있어서 들여다보니 찔레꽃이다. 몇 년을 산책하며 처음 보는 것 같다. 찔레꽃은 우리 엄만데... 어릴 적 목사관 화단에 커다란 분홍 찔레꽃. 그 꽃을 꺾어 강단을 장식했던 엄마의 똥손이 기억난다. 어린 눈에도 참 볼품없이 꽂았던 것 같은데... 손이 똥손이라고 마음까지 그랬던 건 아닐 텐데. 꽃을 사랑하고, 꽃으로 강단을 장식하던 엄마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 나만 아는 엄마, 나만 기억하는 엄마이다. 분홍 찔레꽃의 기억에 더해 하얀 찔레꽃은 엄마 돌아가시고 울며 울며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던 노래이기도 하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아프게 내게 오시네

밤다다 보는 꿈은 하얀 엄마 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사실 내가 어렸을 적에 좋아하고, 동요대회 나가서 부르기도 했던 같은 멜로디의 '가을밤'이고.

 

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

초가집 뒷산길 어두워질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우리 엄마는 찔레꽃이다.

 

그렇게 걷노라니 "아, 내일이 어버이날이구나!" 엄마는 안 계시고, 아픈 어머니의 어버이날을 제대로 챙길 수가 없는 형편이네. 그리운 찔레꽃 엄마, 그리운 아카시아꽃 어머니... 가슴이 둔탁하게 아프고 흐르지 않는 눈물이 몸 어딘가를 맴돈다. 고개를 떨구고... 그렇게 걷노라니 바닥에 한가득 비에 젖은 토끼풀이 싱그럽다. 땅바닥에 딱 붙어 비 젖은 모습이, 젖었으나 이제 비 그쳤으니 다시 뽀송해질 토끼풀이 꼭 나 같다. 찔레꽃 엄마를, 아카시아꽃 어머니를 그리워 목을 빼고 쳐다보는 나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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