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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인, 꼬마 철학자

봄비

larinari 2015.04.15 11:46

 

 

 

봄비

 

김현승

 

 

부슬부슬 봄비가

내린다

 

미세먼지도 새로운

첫만남도 씻겼다

 

봄이 시작되었다

 

 

 

 

 

미세먼지가 씻겼다,

는 공감이 되는데

첫만남도 씻긴 것은 알 듯 모를 듯.

 

묻고 싶지만 바로 물어보지 않았다.

시인 김현승은 시를 써놓고는 누군가 바로 읽는 것도 부담스러운 거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사람) 엄마라 해도 자신이 보지 않는 곳에서 읽으라는 거다.

 

현승 님이 시를 썼을 때는 일단 시인이 보지 않는 곳에서 읽은 후에

질문이 올라오면 가슴에 묻고,

우야튼지 시간이 지나길 기다려야 한다.

 

현승이 누나 채윤이는 입을 뗀 바로 그 순간의 감정을 물어줘야 한다.

짧은 골든타임을 놓치면 '몰라, 아 몰라, 까먹었어' 라며 지금 이 순간의 감정에 충실할 뿐이다.

채윤이에겐 바로 그 순간에! 현승에겐 그 순간을 하염없이 보낸 후에 말을 걸자.

(채윤이 엄마이며 동시에 현승이 엄마 하기란.....)

 

 

시를 쓰고 하루 지난 저녁.

시인이 좋아하는 반찬으로 마음을 훅 빼앗을 후에 묻는다.

그런데 현승아..... 미세먼지가 씻기는 건 알겠는데 첫 만남이 씻기는 건 뭐야?

 

(예민) 왜? 엄마. 시가 이상해?

첫 만남은 그런 거 있잖아. 3월이 다 갔잖아.

3월엔 다 새로워서 어색하잖아. 그 어색함이 끝난 거야.

 

왜야? 3월의 봄은 어색해?

 

아니, 그게 아니고.

봄 얘기가 아니고. 3월은 친구들도 선생님도 다 어색하잖아.

이제 그게 다 익숙해졌다는 뜻이야.

나도 쓰면서 다른 사람이 이해 못 할 줄 알았어.

이상해? 내 표현이?

 

아니, 아니.

그럴 것 같았어. 확인하는 거야.

그런데 그 첫만남은 어색하기만 해?

새로워서 좋지는 않아?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좋지 않아. 그냥 어색해. 그런데 지금은 다 익숙해져서 좋아. 편해.

그래서 봄비에 다 씻겨 내려간 것이 좋다는 뜻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음......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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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 프로필사진 BlogIcon 털보 2015.04.18 20:02 시인의 의도와 달리 시가 독립을 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시가 무섭죠. 시인이 썼는데 제 스스로 의미를 갖고 시인의 의도를 뛰쳐나가 독립을 하거든요. 마치 시의 본질이 자유이기라도 한 듯 말예요.
    그레서 말인데.. 이 시는 구성으로 보면 봄비가 와서 두 가지를 씻어줬어요. 하나는 미세먼지고, 다른 하나는 첫만남이죠. 봄비가 씻어주는 바람에 더 이상 미세먼지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또 첫만남도 더 이상 갖지 않아도 되게 되었어요. 그런 점에서 보면 미세먼지와 첫만남은 구성상으로 보면 동격이예요. 둘다 불편하다는 뜻이 되죠. 봄비는 그 불편을 씻어주었어요. 그리고 그 다음에 비로소 봄이 시작되었어요. 봄은 그 두 불편이 씻긴 다음에 오는 계절이 되죠. 실제로 미세먼지처럼 오는 만남이 있는데, 그게 실제로 미세먼지 씻기듯 첫만남의 불편이 씻겨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후자의 경우에는 그냥 불편에 익숙해지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어요. 아직 알 수도 없을 때 봄은 시작되구요.
    꼬마 시인은 아직 모르겠지만 종종 꼬마시인이 시를 쓰면 그 시가 꼬마 시인의 수중을 떠나요. 이 시도 꼬마 시인의 수중을 떠났어요. 그러니 자꾸 꼬마시인에게 이 시를 물으면 안될 거예요. 왜냐하면 이 시는 더 이상 꼬마시인의 수중에 있지 않거든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5.04.22 11:49 신고 아, 그렇군요!
    아닌 게 아니라 시에 대해서 자꾸 묻는 걸 꼬마 시인이 짜증스러워 해요. 저는 자꾸 머리로 이해하고 싶어서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묻게 되구요.
    사실 이 시를 읽었을 때 제게 온 느낌은 전혀 다른 것이었는데 그걸 확인하고 싶어서 유난한 질문공세를 한 것도 같아요.

    시가 시인의 뜻을 뛰쳐나가 독립하게 되는군요. 제게 새삼스런 통찰을 갖게 하는 말씀이네요. 꼬마 시인의 시든 어떤 시든 제게로 온 의미를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하겠다 싶어요. 시의 자유를 기꺼이 수용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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