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거실에 비치는 햇살 한 줄기가 화분의 초록 잎에 비춰 만들어내는 투명한 빛에도 그분의 사랑을 느낍니다. 저녁에 강가에 나가 맞는 바람 한 줄기에도 그분의 뜻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당하는 어려움으로 힘들어할 때도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찾습니다. 하물며 온 나라를 공포로 몰아넣는 메르스 전염사태 같은 일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지 않을 리 없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그분은 크고 중요한 사안일수록 아무리 제가 묻고 또 물어도 당신의 뜻을 속시원히 알려주시지 않던데요. 서른 살 믿음 좋고 성실한 청년, 누구보다 존경할 만한 부모님의 아들로 자라서 교회와 사회와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삶을 살려는 젊은이가 암으로 인해 천국에 간 일, 평생 자식들 잘 키우는 것과 가족들 전도를 목표로 몸과 마음 부서져라 살아오신 어머님이 인생 노년 친구와 가족들에게 외면당하며 외롭게 살아가야 하는 일. 아직도 이런 일에 담긴 그분의 뜻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에 대해 제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오직 모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뜻이 내 얕은 사랑과 이기적인 지성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요!

 

긴급 기도제목이라며 카톡에 올라오는 내용을 보니 우리나라가 메르스 위험국가가 된 것은 퀴어 축제 개최를 막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랍니다. 털썩! 늘 하던 대로 환자를 치료하던 의사가, 입원하신 부모님 간호를 하던 아들과 며느리가, 심지어 친구 부모님 병문안을 갔던 사람들이 졸지에 메르스에 걸려 이름도 잃어버린 채 전염자 14, 26번이 되어있습니다. 가장이고 아이의 엄마일 것입니다. 격리된 병실에서 살아나갈 수는 있을까? 갑작스레 엄마와 떨어진 아이들이 제대로 밥이나 먹고 있을까? 얼마나 두려울까요? 그러다 돌아가신 분이 이미 다섯 분입니다. 퀴어 축제를 막자고 나처럼 살아가던 이웃이 하루 아침에 이렇게 되었다고요? 그것을 하나님의 뜻과 단순하게 연관 짓는 것이 저는 메르스보다 더 두렵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런 방식으로 대하질 않으셨습니다. 그분이 어떤 분인지, 어떻게 일하시는지 알수록 신비일 뿐이지만 적어도 제 삶에 관해서는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약하고 악한 백성들을 일깨우기 위해서, 이 세상을 향한 당신의 간절한 뜻을 보여주시기 위한 방법은 바로 자신의 몸을 찢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기적이고 어리석어 하나님보다 나, 나의 아이들과 나를 드러내는 모든 것을 숭배하며 매일 불신의 늪을 헤매는, 누구보다 악한 저를 기다리고 인내하시는 사랑에 관해서는 말할 수 있습니다. 단톡으로 받은 긴급 기도제목을 보고 심장박동이 빨라졌다가, 분노했다가, 이런 무정한 세상에 더는 살고 싶지 않다는 무기력까지 갔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정하고 잔인하며 독선적인 말의 폭력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트위터에 지인이 공유하신 글에서 다음 문장을 보고는 가슴이 아프도록 동의하며 잡글이라도 끄적일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 세상에 타인을 위해 이용될 수 있는 죽음이 있다면 그것은 단 하나, 예수의 생명이다

 

 메르스로 인해서 격리 조치된 무고한 60여 명의 사람들, 그들의 가족, 불안과 공포로 떨면서도 든든히 기댈 국가와 지도자가 없는 가련한 백성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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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아우 2015.06.07 20:32

    그런류의 내용을 열심히 전파하는 분들의 공통점은 대략 순수하다는것. 한 기도한다는 것. 그러니 그들의 기도제목 부탁에 너도나도 순식간에 덩달아 비장한 그리스도인이 되어버리는거같아. 기도로 직통계시를 받기전에 일차적으로 정상적 사고기능을 사용한다면 이 정도까지는 아닐텐데...가장 아쉬운점은 그토록 열심당원들인데 왠 두려움이 그리 많은지.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벌벌 떠는 듯 보여. 좌우지간 용기내서 쓴 글에 마음이 동하는 일인임^^

    • BlogIcon larinari 2015.06.07 23:14 신고

      맞아. 하나님의 뜻은 척척 잘도 알아내는데 두려운 게 뭐 그리 많아서 경계를 세우는 일에만 혈안일까. 오늘 예배 시간에는 부른 찬송인데...

      주 예수 따르라 승리의 주
      세계 만민이 돌아갈 길과 진리와 참 생명
      네 창검을 부수고 다 따르라 화평 왕
      어둔 밤 지나서 동 튼다
      환한 빛 보아라 저 빛
      주예수의 나라 이 땅에 곧 오겠네 오겠네

      '네 창검을 부수고 다 따르라 화평 왕'에서 넘어가지질 않대. 모두 창검을 들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 이 글을 쓰던 나 역시 창검을 휘두르는 마음은 아닐까? 정말 화평 왕이신 그분의 나라가 곧 오겠지? 아, 정말 눈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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