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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대학원 선후배들을 만나면 왜 박사과정 안 하느냐? 언제 할거냐? 묻는 사람들이 있다. 40이 다 된 나이에 키보드 들고, 기타 메고, 악기 가방 옮기면서 일하는 게 버겁다고 느껴질 때는 '이 때 쯤 공부를 다시 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아마도 내 사전에 박사과정 공부는 없을 것 같다. 자신이 없다. 박사과정에 가서 글을 제대로 쓸 자신이 없다.

남편이 대학원 공부를 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면 나는 놀라고, 또 심히 부끄러웠다. 남편의 공부와 글씨기는 치열했다. 명문대학이라고 하는 곳에서 것두 석사과정에서 다들 배껴 쓰고, 인용한 것도 자기가 쓴 것처럼  레포트며 소논문이며 쓰는 것이 다반산데 남편은 그러질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말, 자기 생각이 아니면 쓰지 아니하얐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남의 말을 썼을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히고 말이다.
나는 그러질 못했다. 박사과정에 들어가기 가장 두려운 이유 중 하나는 석사논문을 다시 들춰볼 일이 있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이기도 하다. 고백컨데 나는 논문을 쓸 때 이론적 배경 이런 부분은 몇 개의 논문을 베껴서 짜집기를 했다. 그리고 실험해서 통계좀 돌리고, 통계결과에 대해서 아주 기계적인 설명을 하고 마무리 했다. 그런 논문이 심사에 통과를 했다.

사실 그 때는 이미 내가 글쓰기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이오덕선생님이나 조한혜정 교수 등의 글로 적잖이 인간세탁도 된 다음이었다. 헌데, 논문 같은 글은 으례 그렇게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들 그러니까...학위나 받으면 되니까.

남편은 교육철학을 공부하던 그 때나, 다시 신학을 공부하는 지금이나 한결같이 글쓰기에 대해서 정직하다. 서평 하나를 쓰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말이다.
그러나 그건 얼마나 피를 말리는 일인가 말이다. 한 두 페이지 블로그 글도 아니고 수십 페이지의 소논문들을 다 자기 말로 쓴다는 것은....

그렇다. 그런데 그런 치열한 글쓴이의 몸부림이 없이는 감동은 없다. 분명하다. 드러내기 싫은 자기 삶을 드러내고, 삶과 유리된 현학적인 표현들로 자기를 포장하지 않는 몸부림이 없이 어떻게 감동을 주고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글을 쓸 수 있단 말인가? 남의 글을 베끼면서, 남의 설교를 갖다 베끼면서 어떻게 읽는 이로 하여금 듣는 이로 하여금 감동 받기를 바랄 수 있겠나. 희한하게도 사람들은 글만 보지 않는 것 같다.

오래 전에 읽은 이오덕 선생님의 글쓰기에 관한 글들을 보면 아이들 조차도 이미 표현의 차용에 있어서 도사들이다. 자신들의 말과는 동떨어진 어디서 줏어 들은 글전용 표현들 말이다. 채윤이 글쓰기를 봐주면서 내 글을 많이 생각하게 된다.
'채윤아! 가장 좋은 글은 니 말을 닮은 글이야. 다른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니 말과 니 생각을 닮아 있어야 해' 라고 말하면서 내 동시에 나 자신에게 말한다. 정직한 글을 써야 한다고. 정직하지 않은 글을 써 버릇 하면 인격도 함께 오염될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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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을 나섰는데 담임 선생님을 앞에 가고 계시더란다. 선생님과 아는 척하고 함께 걷고 싶어서 발을 쾅쾅 걸었단다. 그런데 선생님은 뒤를 안 돌아 보시고 옆으로 꺾어지셨단다.
일기에 쓰지 못한 말이 있다. 일기를 다 써놓고 채윤이가 그랬다. "엄마! 내가 선생님 뒤에 걸어가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 줄 알아? 황호근 선생님이 화를 너무 많이 내고, 나한테 혼내지 않아도 되는 일을 너무 많이 혼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방학 때 못 만날 걸 생각하니까 쫌 아쉬웠어. 그래서 내가 황호근 선생님을 조금 좋아한다는 걸 알았어" 한다.
그걸 일기에 쓰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일기장을 보시기 때문에 그 말은 쓸 수 없다는 것. 채윤이 조차도 100% 정직한 글을 쓰기는 어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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