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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사람

박영돈 교수님

larinari 2018. 1. 9. 11:15




이번 주 토요일, 일요일에 이우교회에서 사경회가 있습니다.

강사는 고신대원의 박영돈 교수님이십니다.

남편이 존경하는 은사님이시고요.

그야말로 따뜻한 통찰, 예리한 공감으로 저술, 설교, 페북 글이 모든 인기 최고이지요.

어제 남편이 박영돈 교수님 뵙고 왔는데

밤늦게 이런저런 신대원 시절 얘길 하다 페북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이런 사연이 있었고요.

분당 근처에 계신 박영돈 교수님 팬들께서는 오셔서 들으셔도 좋겠습니다.

 

13일 토요일 오후 7시 / 14일 주일 오전 11시 / 오후 1시30분


[박영돈 교수님, 과 남편, 과 나]

결혼하고 7년 째 되는 해에 남편은 신대원에 갔다. 고등학교 때부터 꾸던 꿈이라지만 ‘내적 소명’은 확실하나 그것으로만 선택할 일이 아니었기에 ‘피할 수 있을 만큼’ 피해보려던 차, 사랑하는 사람이 목사의 아내 되기 원치 않으니 이 또한 좋은 싸인이라 여겨 결혼을 위해 장신대 도서관에서 입시 준비하던 책 싸 들고 나왔다.

그리하여 결혼하고 직장생활도 하고 대학원도 하나 하고 7년의 시간을 보냈다. 숨소리만 들어도 그의 행복과 불행을 알아차리게 된 즈음, ‘사랑하니까 헤어지는 거야’ 하는 심정으로 그를 신대원 기숙사로 떠나 보냈다. 대신 그가 당연하게 그렸던 광나루역의 장신대원(장로교신학대학원)이 아니라 천안의 고신(고려신학대학원)이었다. 나의 바람이었다. 당시 함께 다니던 교회가 고신교단이었고 나는 단지 남편의 진로 변경으로 인한 변화의 폭이 작기를 바랬다. 신학적 폭이야 남편의 연륜으로 충분히 품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현실은 예상과 달랐다. 무슨 계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여성 안수’ 문제를 놓고 남편은 그야말로 1:17로 싸우는 막다른 골목에 선 적이 있다. 여성 안수 불가를 주장하던 분들이 당시 싸이 클럽에서 쓴 표현들을 나는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다.여성 목사를 꿈도 꿔본 적이 없지만 그때 본 글들로 인한 상처는 쉬 아물것 같지 않다. 나이도 많고 웬만큼 인격도 되던 남편은 동기들의 신뢰도 얻었던 것 같은데 그 시절만큼은 외톨이가 되었다. 형 그럴 거면 장신대로 가시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는 날에는 내가 나를 얼마나 미워 했는지 모른다. 늦게 신대원 가는 것이 무슨 대역죄처럼 내 말을 넙죽 수용해준 남편에게 너무도 미안했다.

그때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외롭고 슬픈 남편의 표정을 보았다. 그럼에도 남편은 감정에 빠지지 않고 공부만큼은 열심히 했다. 어떤 경우에도 사모의 역할을 강요하진 않겠으나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하는 짐이 내게 있단 걸 미안해 했고 두 아이의 아빠로서도 그러했던 것 같다. 가족을 두고 온 신대원에서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미안할수록, 슬플수록, 외로울수록 공부에 매달렸다. 그 시절 남편을 붙든 영적인 스승님이 박영돈 교수님이시다. 강의는 물론 그분의 삶과 일상의 고뇌를 통한 가르침이 그 보수적이고 경직된 신대원 생활에서 버팀목이었던 것 같다. 박 교수님의 연구조교를 하면서 교수님의 책 출간을 돕기 위해 혼자 이리저리 얼마나 고군분투 했는지 모른다. 교수님의 첫 책 <성령충만 실패한 자들을 위한 은혜>에는 남편의 남모르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나 역시 남편으로 인해, 또는 그저 한 독자이며 페북 팔로우어로서 박 교수님을 존경한다. (존경하다 실망한 지도자들로 인한 상처로 다시는 유명하신 분께 쓰고 싶지 않은 말이지만, 박영돈 교수님은 여전히 존경한다. 그분의 책이나 페북 글이 아니라 아주 작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알기에 그렇다.) 이번 주말에 박영돈 교수님께서 우리 교회 사경회 강사로 오신다. 이런 기나긴 이야기를 떠올릴 때 감회가 남다르다. 교수님은 잘 모르실 것이다. 늦게 목회자의 길을 걸으며 흔들리고 고독한 제자에게 얼마나 든든한 버팀목이신지, 그 목회자의 아내에게 얼마나 감사한 존재이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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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 프로필사진 연자기 2018.05.05 00:12 박영돈 교수님 께서 말씀하신
    칭의 만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성화가 따라야 구원 받는것은 다른 복음 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피 90프로 정도에 나의 육정 10프로가 들어가야 하나요?
    예수님과 같이 못박힌 강도는 무엇을 행하여 구원 받았나요? 예수님의 보혈은 완전합니다
    칭의라함은 모든 율법을 지켰음은 물론이요,더적극 적으로는 모든 의로운 행위를 한것으로 하나님께 인정 받는다는것 입니다 우리의 의가아닌 하나님의 의로 인함이지요 그래서 은혜이고 선물인 것 입니다 행함은 칭의를 받은 그리스도인의 열매인 것이지 구원의 필요 조건이 아닙니다
    포도나무에 무수히 많은 열매가 맺혀야만 포도나무인가요? 가물어 양분을 못받아 열매가 조금밖에 없으면 포도나무가 아닌가요?
    고린도교회에 세상사람들도 하지않는 계모와 통간한 형제가 어찌되었나요? 육신은 죽게하되 영혼은 주예수의날에 구원받게 하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부디 다른 복음을 더이상 전파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런것들이 진화론 보다 더 무서운 마귀의 계략입니다
  • 프로필사진 신의피리 2018.05.05 12:57 연자기 님, 혹시 목회자이신가요? 아니라면 좀 다행이구요.
    그렇잖아도 오늘 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국어실력', 즉 '독해력'이라는 생각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박영돈 교수님의 어떤 책, 어떤 강의에서 보고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맥락을 잘 읽어보시길 당부드립니다.

    박 교수님은 '칭의 만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성화가 따라야 구원 받는다'고 말한 적도 없고, 쓴 적도 없습니다. 칭의와 성화는 구분되지만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칭의로 구원받은 자는 성화로 열매맺게 되어 있음을 강조했겠지요. 그걸 독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이런 헛소리를 합니다.

    동네 축구 쫌 한다는 교만한 사람들이 메시를 훈계한다는 우스개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딱 이런 분들이로군요.

    칭의와 성화를 배우기 전에 먼저 독해실력을 키우고, 타인의 말에 경청하는 자세를 배우시길 바랍니다.
  • 프로필사진 연자기 2018.05.05 18:32 독해력이 부족한건 제 잘못인데요
    박교수님께서 주장하시는 바는 결론적으로 간단 명료하게 성화없는 구원은 거짓 구원 이라는뜻 아닌가요? 이건 제가 바르게 이해한것 같은데요?
    그리고 한번받은 구원도 잘못하면 다시 없어지는것 이라고 분명히 주장하시는걸 들었데 이것도 제가 잘못 들은건가요?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닭고 영원한 속죄를 마음으로 믿어 구원을 얻은 사람은 육체의 남은때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끄럽지 않게 행함과 열매를 맺으며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도록 성령께서 인도 하십니다 하지만 구원을 받았어도 말씀에서 멀어지고 교제를 떠나게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해 전혀 행함과 열매를 맺지 못할수는 있으나 구원이 없어지는것도 아니고 구원을 안받은것도 아니라는 것이죠 또한 반대로 믿음으로구원은 받지 못했으나 행함으로 하나님앞에 나가려고 얼마나 선하게 배풀며 사는 사람이 많습니까? 하지만 이분들이 주님앞에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함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칭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분의 전환을 의미하며 성화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분에 합당한 생활을 의미합니다 결론은 성화의 정도는 끝이없습니다 그래서 성화의 낮고 깊음으로 구원을 판단하는것은 잘못이라는 말씀 입니다
  • 프로필사진 신의피리 2018.05.05 19:54 연자기님,

    제가 독해력 운운해서 미안합니다. 다시 쓰신 글을 보니, 행위로 구원받으려는 율법주의에 대한 저항과, 은혜와 칭의를 붙들려는 선한 마음의 뜻이었겠다 싶습니다.

    제가 앞글에서 ‘맥락’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연자기님이 들었다는 두 가지 중에, 첫 번째는 잘못 이해하신 것 같고, 두 번째는 잘못 들은 것 같군요.

    첫째, “성화 없는 구원은 거짓 구원”
    연자기님! 성화 없는 구원이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한 죄인을 의롭다 하실 때는 반드시 거룩하게도 하시지 않나요? 물론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것이지요. 칭의와 성화는 명백하게 구별됩니다. 칭의가 구원을 불완전하게 시작하게 하고, 성화가 구원을 완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논리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실제 성도의 삶에서는 구별되기보다는 같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게 하지 않으시면서, 성도를 의롭다고 칭하시지도 않으십니다. 즉, 참된 칭의는 반드시 참된 성화로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칭의와 성화의 연결성’을 놓치면 소위 말하는 ‘값싼 은혜’가 되는 것이지요. 다시 요약해 드리면, “우리는 칭의로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칭의와 성화는 구별되나 긴밀하게 연결됨으로, 참된 칭의는 반드시 참된 성화로 이어진다.”

    연자기님이 칭의와 성화를 이렇게 설명하셨네요.
    “칭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분의 전환을 의미하며, 성화는 자녀로서 신분에 합당한 생활을 의미합니다.” 맞습니다. 신분이 전환되면 생활도 달라집니다. 혹시 칭의는 삼위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행하시는 것이고, 성화는 우리 인간이 의지적으로 도덕적으로 순종하고 실행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아니시지요? 칭의도 성화도 모두 삼위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이끄십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않으면 성화도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러나 성령께서는 의롭다하신 이를 또한 거룩하게 이끄십니다.

    박 교수님 말씀의 취지는 이런 것으로 보여집니다.
    어떤 한 사람이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의롭게 되었다”라고 주장한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의 삶은 전혀 달라지지 않습니다. 여전히 세속적 욕망으로 살고, 옛자아를 주인삼아 삽니다. 그리고 스스로 합리화하지요.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는 단번에 영원히 이루어졌음으로 이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늘도 내 죄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 의지와 노력으로 나는 결코 성인이 될 수 없으니까.” 죄책을 스스로 짊어지지 않고, 영단번에 해결된 것으로 산다면 이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이런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습니다만, 박 교수님의 말씀의 의도는 칭의와 성화를 단절시켜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값싼 은혜로 전락시키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열매로 그 나무를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말하는 맥락이란 이런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로 들었다는 것, “한번 받은 구원도 잘못하면 다시 없어지는 것” 이건 잘못 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말은 일반적으로 구원의 은혜를 값싼 은혜로 전락시킨 저렴한 그리스도인을 향한 사랑의 매로 사용되곤 합니다. “너 그렇게 네 맘대로 할 거면 다시는 집에 들어오지 마”라고 말하는 부모의 징계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의 징계라는 맥락에서 보면 저 말도 일견 일리 있는 말일 수 있습니다. ‘다른 복음’이라고 단정짓기 전에 왜 우리 한국 기독교인의 삶에 거룩의 열매가 안나타나는 것일까 되돌아볼 일이지요.

    좀 길어졌습니다.
    연자기님, 박 교수님의 책을 한 번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성화의 낮고 깊음으로 구원을 판단하겠다’는 그런 말씀을 찾으시면 제게도 알려주세요. 박 교수님의 첫 책의 제목은 <성령충만, 실패한 이들을 위한 은혜>입니다. 성령충만이란 성공한 사람들에게 주는 보상이 아니라 실패한 이들에게 거저 주는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연자기님처럼 끄끝내 붙들고 싶은 죄인을 구원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열심, 바로 그것 아니겠습니까?

    주말입니다. 거룩하고 은혜로운 주일이 되시길 바랍니다.
  • 프로필사진 BlogIcon 연자기 2018.05.05 23:08 바쁘실텐데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처럼 교제다운 교제를 하는것 같습니다

    한국 기독교인의 삶에 거룩함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그들중 거의가 구원받지 못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대부분 구원받지 못한 이유는

    1.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주관 하시는하나님께서 정말로 살아계신것을 100퍼센트 믿지 못함이며

    2.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절대적 권위의 무오한 책임을 100퍼센트 믿지 못함이며

    3.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성경도 사실이란것이 100퍼센트 믿어 졌다면 천국과 지옥 또한 리얼한 현실로 자신에게 다가 올텐데 그렇지 못함으로 자신이지옥에 갈수밖에 없는 죄덩어리 라는것을 알지 못함이며

    4.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지옥으로 갈수 밖에 없는 죄인임이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는 듯 무겁고 또 너무 무거워 참으로 통회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죄인을 구원해 달라는 회개를 해본 경험이없기 때문이며

    5.위의 마음의 상태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복음을 받은 경험이 없기 때문이며

    5.혹여 복음을 들었다 해도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은 창세부터 세상 끝날까지의 모든죄를 사하셨는데,원죄만 사했다, 혹은 지금까지의 죄만 사했으니 앞으로 지은죄는 주일날 교회당 가서 회개 해야한다 등등 잘못된 복음을 들음 입니다

    진정 구원을 받은 사람은 죄의 사슬에서 벗어납니다 다시는 죄로인해 고민 하지않습니다(지옥 갈까봐) 하지만 은혜를 더하려고 죄에 거하겠습니까?
    죄에서 해방 됐지만 훨신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내안에 계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고자 하는 강력한 마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육신의 소욕이 너무 강해 죄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울의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 프로필사진 조미 2019.07.15 04:08 연자기님 어디교회 다니시나요 ? 댓글보다 이거구나 싶었네요 설교를잘배우고깨닳으신것인지 스스로독학하신건지 궁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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