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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여정

비젼

by larinari 2010. 5. 2.




주일예배 때마다 예배로 들어가면서 '비젼'을 부른다.
가사가 '비젼'이라는 제목과 어떻게 맞아떨어지는지 딱히 생각해보지 않았고,
아주 오래 전부터 부르던 찬양이다.
어찌하여 비젼일까?

지휘할 때도 그렇지만, 찬양인도를 할 때로 그랬지만, 예배 전 두 곡 정도의 찬양하는데 싱어로 서는 요즘에도 찬양에 몰입만 했다하면 오토메틱 수도꼭지 전원이 바로 on이다.
두 세곡 부르는 동안 어떻게 어떻게 틀어막고 있던 수도꼭지는 '비젼'에 기어이 제어장치 고장을 일으키고 만다. 어이하여 나의 비젼은 항상 눈물바람인가?



우리 보좌앞에 모였네. 함께 주를 찬양하며
'우리'이고 '함께'다.
이 '우리'는 가령 이런 모든 분들을 포함한다.
앉아 있는 모습만 봐도 마음 뭉클해지게 하는 분들,
눈빛으로 주고 받는 인사만으로도 '그리스도 안의 지체'됨으로 마음 가득 따스함으로 채우는 분들,
그리고 또
찬양팀 복장이 왜 그리 단정치 않냐, 선곡은 왜 그러냐 하시면 예배를 뭘로 아냐? 면서 거룩한 예배를 사수하기 위해 완전무장 하고 계신 분들,
'미치광이 북괴'를 하나님 앞에 고발하는 기도와 동시에 '평화통일'을 구하시는, 평화를 사랑하시고 나라사랑이 한 없으신 분들,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너희가 예배를 잘 드리나 못드리나 보신다. 그러니 똑바로 해라' 시며 주일학교에서 가르치듯 내게 경찰관 하나님을 일깨우시는 분들....

이런 모든 분들고 함.께. 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를 드린다.
그러면 그 '함께'에 온전히 마음을 열지 못하는 못난 나 자신에 마음이 쿵하고 무너진다.
아주 마음이 아플 때 가슴부분에 신체적 통증이 느껴지는데 바로 그 통증에 주저앉고 싶어진다.


하나님의 사랑 그 아들주셨네. 그의 피로 우리 구원받았네.
그런 내게 폭탄처럼 바로 다음 가사가 쏟아부어진다.
하나님의 사랑! 아, 하나님의 사랑! 아들을 아니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음으로 확인시켜주신 그 분의 사랑. 나를 살렸던 사랑. 지금도 나를 살리고 있는 그 사랑.


십자가에서 쏟으신 그 사랑 강같이 온 땅에 흘러
나는 악인과 선인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골고루 내리신다는 그 공평하신 하나님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악인들에게는 촉촉하고 따스한 봄비는 커녕 번개와 천둥으로 즉각 반응해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아, 물론 나는 항상 '선인'에 줄을 세우는 거다.ㅠㅠㅠㅠ
헌데 십자가에서 쏟으신 그 피, 그 사랑은 강같이 흐른단다. 흐르는 강은 억지로 막지 않는한 골고루 온 땅을 흘러 적신다. 그 어느 땅도 차별하지 않고.....
십자가에서 쏟으신 그 사랑은 내게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이 사랑하시는 모든 사람에게 흐른다. 그럴 때 나는 선인도 아니고 악인도 아니다. 나는 그 분의 사랑받는 자녀일 뿐이다.


각 나라와 족속 백성 방언에서 구원받고 주 경배드리네
구원의 나의 전유물이 아니다. 구원은 그 분의 것이다. 그 분은 내 새끼 맞았다고 남의 새끼 가서 나무라는 이기적인 부모가 아니다. 그 분에게는 나를 포함한, 나를 선인이라 여기거나 나를 악인이라고 여기는 모든 사람을 포함하여 사랑하는 자녀다.
구원은 그 분의 것이고, 그 분이 사랑하는 모든 자녀의 것이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
이 쯤되면 나는 그 분께 이렇듯 편협하고 부자유하고 사랑이 부족한 나 자신을 맡길 수 밖에 없다. 이런 나를 구원하심은 오직 그 분께 있다. 그 분 안에 있는 모습 그대로 나를 맡길 때만 나는 지금의 이 감옥같은 이기심에서 구원받는다.
반복해서 마음을 다 쏟아 부를 수 밖에 없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
온갖 두려움과 염려를, 스스로 나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나의 의를 드러내고자 하는 교만을, 내 욕망을 위해서 사람들을 교묘히 이용하는 사랑을 가장한 죄악을 구원하소서. 구원하소서. 날 구원하여 자유하게 하소서.



나의 비젼은 매일 매 순간 십자가에서 쏟으신 그 사랑에 나를 맡기는 그것이다.
나를 바라보는 그 따스한 사랑과 긍휼이 내게만 국한되지 않음을 마음으로 믿는 것이다.
설령 때로 내게 '우리' '함께'라고 말하기가 너무 아픈 경우라도 그 분의 긍휼하심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나도 그 긍휼과 사랑의 마음을 조금씩 배우는 것이다.
나의 비젼은 사랑이다. 십자가에서 쏟으신 그 분의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