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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인, 꼬마 철학자

빈둥거리며 허무하지 않은 나날

larinari 2016.01.29 07:33




#1

사나흘에 한 번씩 엄마 조르기.

엄마, 나 과외나 학원 시켜줘.

중학교 가면 영어 수학이 어려워진다는데 걱정도 안 돼?

그게 아니라고오!!!

내 친구들은 방학 때 다 과외 아니면 학원 다니면서 중학교 공부한다고.

엄마, 수준이 비슷한 애들 모아서 수학 공부하는 그룹 과외라는 있다는 거 알긴 알아?

(얌마, 엄마가 한 때 그걸로 밥 먹고 살았다.)

진짜 나 빼고, 나랑 우노 빼고.... 우노는 좀 특별한 아이니까 그렇다 치고.

나 빼고 내 친구들 다 공부해.

나도 좀 뭔가 학원에 다니고, 바쁘고 여유없고 그렇게 좀 해보고 싶다고.

친구들 중에 내가 제일 한가해. 나만 시간이 많고.... 투덜투덜.....

그래, 알았어. 엄마. 나중에 중학교 가서 내가 필요하다고 할 때 꼭 시켜줘야해.

(그렇게 수긍하고 대화가 끝나지만 사흘 후면 난생 처음 해보는 제안인 것처럼

"엄마, 그런데 나도 과외하면 안돼?" ㅎㅎㅎ)


#2

엄마 나 심심해.

현승아, 그럼 엄마는 심심달.

현승이를 지켜보며 심심해 심심달 심심별 '심심함'의 효능에 놀란다.

한동안 우크렐레와 아이패드를 옆에 끼고 흰 종이에 코드까지 그려가며

우크렐레 연구(연주)에 매진하더니 제법 초보 수준의 일가를 이루었다.

기타를 배우라고 잔소리를 해대도 '남들이 다 하는 악기는 하기 싫다'더니

겨울방학 시작 전부터 슬슬 건드리기 시작했다.

기타 입문은 C-Am-Dm-G7 반복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아니던가.

현승아, 엄마는 이걸로 기타 배웠다, 이걸 하루 종일 연습하는 거야.

(시대착오적 엄마 가트니라구!) 현승이에겐 유투브 선생님이 계시다.

기타 잡은지 며칠 만에 'F코드는 왜 이렇게 손이 아프고 소리도 이상하냐'고

투덜투덜하다 투덜투덜이 노래가 되어 진짜로 노래를 작사 작곡했다.

제목 : F코드는 정말로 어려워.

(나중에 현승이가 유명한 싱어송라이터가 되면 처녀작으로 공개하겠슴니다.)

F코드 가볍게 뛰어 넘고 요새 써스포, 디미니쉬 같은 코드의 매력에 빠져 연구 중.

더불어 제이레빗, 윤도현, 로이킴의 노래와 기타 똑같이 따라하기에 매진하고 있다. .

거실이 조용할 날이 없다.


#3

현승이 겨울방학을 돌아보며 반성하는 일기에서 발췌.


"규칙적으로 생활하기는 어떻게 보면 한 것 같고 어떻게 보면 못 지킨 것 같았다. 내가 바라던 규칙적인 생활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공부도 시간을 정해서 잘하는 그런 것들을 원했지만 실제로는 다 지키지 못하고 그냥 빈둥거리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뭔가 빈둥대는 것도 매일 똑같이 해서 규칙적으로 생활한 거라고 볼 수도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꼭 하고 싶은 것은 영화 많이 보기였는데 이건 확실히 지킨 것 같다. 그리고 겨울방학 목표와 다짐에는 방학 허무하게 보내지 않기였다. 이번 방학에는 못 지킨 것들이 몇 개 있었지만 그렇다고 허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심심해 심심달 심심별의 심심한 시간과 공간.

이 여백은 아이에게 어른에게 사람에게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규칙적으로 빈둥거리는 시간,

빈둥거리며 허무하지는 않은 나날 같은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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