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얼마 전부터 생각해뒀던 해파리 오이말이.
'보기 좋고, 상큼한 요리'가 어머니의 주문이다.
그 날이 오기 한 달 전부터 '이번에는 왜 이리 추석이 빠르다니. 이번에는 또 뭘 한다니...'
하시는 어머니의 걱정으로부터 추석은 시작되었다. 40년을 그렇게 살아오신 어머니께 우선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건 걱정에 동참해 드리는 것이다. '그러게요. 어머니 추석 다가오니까 걱정이 많아지시죠?' 하면서.
그리고 40년 세월의 크고 작은 힘든 일들에 대해서 들어드리는 것이다. 여러 번 들어서 알고 있는 일이지만 듣는 척이 아니라, 머리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들어드리는 것이다. 그 세월 몸과 마음의 힘듦을 보상할 방법도 없고 당장 이번 추석을 치뤄내시는 것에 대한 부담도 크게 덜어드릴 수는 없지만 들어드리는 것은 할 수 있다. 그렇게 들어만 드려도 그 짐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지실 수 있다는 걸 소망하면서 말이다.
어머니만 힘든 명절이 아니다. 내게도 명절은 힘들다. 몸이 힘들고 마음이 힘들다. 다행인 건 예전처럼 송편을 한 말 씩 하는 것도 아니고 일이 분담이 되면서 실제로 그리 어렵지는 않다. 게다가 이번에는 주일이 끼는 바람에 가장 부담되는 일들은 비켜가줘서 감사하다.
토요일에 시댁에 가서 전부치고 집에 와서 내게 할당된 요리를 다시 준비하고, 신선도 유지를 위해서 주일 새벽 6시가 되기 전에 일어나 만들었다. 그걸 시댁에 갖다 드리고는 1부 예배 지휘를 위해서 교회로 갔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는 바로 친정으로 가서 식구들 얼굴을 보고 저녁에 시댁으로 가니 '내가 며느린지 딸인지'가 살짝 헷갈린다. 늘 명절 저녁에는 시누이나 시고모님 등 딸들이 모이기 때문에....ㅎㅎㅎ
어디 몸만 힘들어서 힘든 것일까? 관계가 힘들고 몸이 힘든 것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서 힘들고, 그러다 보니 내 존재가 일이나 하는 하찮은 존재가 되는 것 같아 힘들고..... 우리집만 친척들 끼리 이렇게 갈등이 많은 것 같아 괜히 더 힘들고... 어느 집이나 다 조금씩 그런 이유들로 힘든 것 아닐까?
이렇게 우리 어머님의 40년 명절, 나의 9년 명절이 또 한 번 지나갔다.
해파리에 겨자소스 양념을 해서 돌돌만 것.
맛은 장담 못해도 모양은 책임질 수 있돠!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파를 곁들인 연어 스테이크 (15) | 2008.11.10 |
---|---|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고구마 살리기 (15) | 2008.10.23 |
40년 동안 명절을 준비해오신 달인 어머님 (28) | 2008.09.16 |
김치찜은 진화한다 (18) | 2008.09.09 |
주부의 요리가 생산하는 부가가치 (9) | 2008.09.07 |
당볶이 (6) | 2008.08.31 |
-
무력남 2008.09.16 22:19
저 모양 저대로 한 번 먹어봤어야 했는데...
명절만 되면 더 무력해지는 이 신세...
이젠 본가를 가도 처가댁 같고,
처가를 가도 본가 같고...
동분서주 바쁜 아내를 위해 뭐 하나 제대로 해주는 것도 없고...
쩜쩜쩜 명절... -
미쎄스 리 2008.09.17 09:07
며느리로 보낸 두번째 명절이자 첫 추석이 지나고..
조카는 회사생활에 적응중입니다 ^^
3박 4일 시댁에 있기로 계획하고 내려갔기에
지내는 동안 "기쁨의 식기세척기"가 되겠노라 굳은 다짐을 했었는데...
처음 몇번은 시부모님 티브이 보시는 사이에 남편이 몰래해주고,
전부치고 잡채하느라 고생했다고 어머님이 남편더러 하라고 하시고,
또 한번은 물도 스스로 안떠다마시는 도련님이 형수를 위해 해주고,
올라오기전 식사때는 길막힐지 모르니 누워있다가라고 아버님께서 해주시고..
대전 부모님과 고모식구를 못봐서 많이 아쉬었지만..
너무 푹 자고 잘먹고 맘편히 즐거운 추석 명절이었어요.
이 모든 즐거움을,
어머님을 어려운 존재로 느끼지 않고.. 지금껏 딸 없이 혼자 준비하셨을 마음을 알아드리고 뭐든 즐겁게 하고 도와드릴 수 있는 마음이 제 안에서 자랄 수 있도록 모범!!을 보여주신 우리 고모의 공으로 돌립니다요~ ㅎㅎㅎ-
미쎄스 리 2008.09.18 20:19
ㅋㅋㅋ
생각해보니.. 제가 고모부한테 애매하게 말씀드린 것 같아요.
흑석동에 미리 다녀오긴했는데, 월요일 오전에 올라오게 되면 고모식구 만나러 가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고모부한테 월요일에 흑석동에 계실거냐고 확인하고 그랬거든요 ㅎㅎ
박서방한테 음식해주면 무진장 잘 먹어주는데..
맛이 어떤지 말해보라고 하면 또 어찌나 솔직하게 답해주시는지 ㅜ.ㅜ
뭐가 덜 들어가고, 뭐가 더 들어갔으면 좋겠다고도 말하거든요.
객관적인 평가에 제가 좀 서운해하면 물어봐서 답한 건데 그런다며 당황해하죠.
(아마도 박서방은 확실한 사고형(T)?) ㅋ
그래도 장점은 맘에 안들어도 안남기고 싹싹비워서 먹어준다는거~ ^^
내일(금) 퇴근하고 대전가려구요.
5월 1일에 다녀오고 첨이라 무척 설레네요 ㅎㅎ
이번에 내려가서 토요일에 부모님 출근하시면, 서프라이즈로 '닭백숙'에 도전하려고 하는데.. 잘 될까 모르겠어요.
다녀와서 글 남길꼐요~^^
-
forest 2008.09.17 09:08
아뒤를 수시로 바꾸시는 님의 댓글이 너무 웃겨여~ ㅋㅋㅋ
왜? 맛은 장담 못하신다고 했을까요?
분명 모양은 일품인데...
혹 위에 올려진 날치알 땜에 그런가.. 괜한 추측을 해보게 되네요.(또 아는 척 ㅋㅋㅋ)
그쵸.. 추석이나 설이 힘든건 일 때문이 아닌 것 같아요.-
larinari 2008.09.17 09:15
시댁에서는 음식맛 품평을 하시는 일이 별로 없거든요. 맛이 있어도 없어도 별 말씀들이 없으시니깐요.
친정 갈 때 조카 사위를 줄려고(ㅋㅋㅋ) 조금 가져갔는데 사위가 왔다갔다길래 몇 개를 만들어서 돌렸어요. 그랬더니 반응이....
짜다.
쓰다.
이상하다.
이러는거예요. 날치알이 짰다는 얘기도 있고, 오이가 쓰다는 얘기도 있고....^^;;
원래는 해파리에 양념을 하지 않고 겨자소스를 위에 뿌리는 건데요. 해파리를 너무 오래 담궜나봐요. 싱거워서 안되겠길래 준비한 겨자소스로 해파리를 좀 무쳤거든요. 심지어 쓰다는 얘기까지 나왔으니 맛은 실패인거 맞죠?ㅋ
-
-
-
털보 2008.09.17 10:28
추석 때 아무 것도 안하고 먹기만 하는 한국 남자의 수혜를 톡톡히 받다가 올해 처음으로 송편에 들어갈 콩을 깠는데 무지 지루하더만요. 남자들한테 추석 준비시키면 다시는 추석지내자는 말이 안나올듯... 지난 번 아는 사람들 왔을 때도 술먹고 나서 그거 치우는데 아주 성가시더만요(그녀는 영화구경 갔었거든요). 아무튼 직접 해봐야 고충을 아는 것 같아요. 살림 일주일만 시키면 살림 고마움을 알 듯 하니 휴가 같은 거 나왔을 때 여자들 휴가로 삼고 남자들이 살림 한번 해보면 볼만 하겠는걸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큰일났다. 이러다 나부터 해보라고 하면 제 발등 찍는 건데... ㅋ
-
h s 2008.09.17 13:23
예전에 비하면 많이 수월해졌다지만 그래도 주부들 한테 명절은 반갑지 않은 것이죠?
몸도 마음도 힘들게 하는 명절이 그래도 없는 거 보다 있는 것이 나을겁니다.ㅋ
larinari님은 체력이 안 바쳐주니 더 힘들텐데 열심히 체력을 단련해 두세요.^^ -
동감 2008.09.17 14:34
흐흐...이 며느리들의 신세...슬프오~~
1박2일동안 앉아있지도 못하고 손에 물이 마를세도 없고...슬프오~~
남편이란 사람은 1박2일동안 컴퓨터하고 TV보구... 그래도 피곤타 하지요...
행여나 며느리가 아들한테 일시킬까 노심초사하시며 며느리를 불러데고...
주일이라 교회가야하는데 아들이 교회간다고 며느리에게 뭐라하시는 어머님... 슬프오~~
명절담날까지도 불러대는데 안가고 친정서 저녁먹고왔다고 투덜대시는데 정말 짜증나서 어찌 되는줄 알았다오~~ㅋㅋ
담달에 또 연휴아닌 연휴가 있는데 겁나오~~
걍 명절두 없구 제사두 없구 쉬는날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ㅋㅋ
언니가 해주는 아주아주 매운 떡볶이로 스트레스를 한방에 팍~~ 날리고 싶소~~(ㅋㅋ 떡볶이 얘기했더니 울시엄니 하는말 "다음주에 떡볶이 해먹을까?" 헉!! ) -
hayne 2008.09.17 16:49
색깔이 너무 예쁜것이여~
지금도 친척분들이 다 모이시나보네.
송편을 한말이나 했다고? 그것만 해도 한나절이었겠당.
그래도 점점 간편해지고 수월해지고 그러니 그나마 다행이지..
우린 울남편이 조카들한테 설거지 시켰잖아.
아들며느리들 앉아서 엄마는 뿔났다 보고.
못마땅한 어머니 급기야 손자설거지를 거드시더라고.
조카가 자리좁다고 가시라하니 할 수 없이 Tv앞으로..
아들이 시킨거니 계속 뭐라 하실 수도 없고 말이지. -
나무 2008.09.21 20:30
결혼한지 아홉해가 지나면 저리 달인이 되나요? ^^
저흰 친정도 시댁도 가지못하고 서울에 있으려니 연휴가 짧아도 참 밍숭맹숭 섭섭하더라구요 ㅋ 그래서 부침개몇가지해서 강도사님가족들과 함께 먹었는데 그래도 영~~ 명절이 명절답지 않은거예요 양가부모님도 쓸쓸하신지 전화해서 말도 못하는 주안이 바꿔주기를 여러차례 ㅋㅋ
며칠안되는 명절이 엄청 길더라구요 극장엘 갔더니 왠사람이 그리많은지.. 다 매진되고 표남은 영화보구 ㅋㅋ
암튼 오히려 좀 바쁘고 피곤터라도 시댁에 가고 싶은 기특한 마음이 생기는거 있죠~~ ㅎㅎ
저런 맛있는 음식을 보니 다시 추석이 아쉽네요 ^^
이번주 도사님들 쉬시는데 대공원에 소풍 한번 오세요 채윤이 현승이 보고싶어요 ^^ -
hope 2008.09.22 15:57
당일 형님이 명하신(?)대로 그 위에 샤샤샥 소스 뿌리고, 샐러드 드레싱 버무려 샐러드 올리고... 역시 음식은 인기가 많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