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Kim Dong Won 님

사진 : 털보아저씨의 700원 짜리 정말 좋은 카메라가 제법 잘 어울리던 채윤이.
        저 좋은 카메라를 덥석 내주시니 좋아서 어쩔 줄 모르며 급 자존감 상승했던 날.


성적이 뛰어날 필요는 없지만 우리들의 학교는 공부를 못하면 자존감까지 팍팍 밟아주는 곳인줄 알기에 시험공부는 시켰다. 며칠을 시켰다. 주입식 교육, 거두절미하고 외우는 거는 진짜 안 되는 딸을 붙들고 잎의 구조... 달의 모양... 리터와 밀리리터... 주장하는 글쓰기... 열나 공부했다. 그리고 결과는.... ㅠㅠㅠㅠ

'당신 솔직히 말해봐. 어렸을 때 공부 못했지?' 남편과 마주 앉아 허허, 슬프게 웃었다.
근본적으로 채윤이의 학습에 대한 입장을 다시 생각해보기도 했다.
채윤이가 정말 잘할 수 있고 즐겁게 할 수 있는 걸 하도록 해주자.
그렇게 힘들어 하는 윤선생 영어도 그만시키는데 합의봤다.
채윤이 같은 아이가 언어를 책상에 앉아 테잎 듣고 죽어라 쓰면서 배우는 건 아니다. 
그래, 내려놓자.

이런 논의를 아빠와 하고 월요일 가정예배 시간에 함께 얘기했다.
가정예배 마치고 자기 전에 주방 정리를 하고 있는데 편지가 하나 놓여있다.

 



그래, 그러자.
언제나 즐겁게 지내고 싶은 본인의 뜻을 100% 받아들여서 영어를 끊.었.다.
어제 선생님께 어렵사리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그만 두기로 했다.

오후 내내 마음이 심란했다.포기해도 되는 걸까?
그것 좀 못 따라와주나? 채윤이한테 화가 나기도 했다.
귀신 같은 김채윤, 도대체 뭣 때문에 화가 난거냐며 친절해지라고 한다.

그런 태도에 더 화가 나 인신공격적인 발언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솔직한 얘기를 했다.
실은, 엄마가 너를 잘 키우지 못하는 것 같아 걱정이 돼.
영어를 끊기는 했지만 니 친구들은 수학학원, 영어학원 장난 아닌데
그나마 너는 집에서 하던 영어까지 안하게 됐으니 걱정이 돼.
이러다가 내 딸이 나중에 커서 정말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을 때 그거 공부하러 대학교에도 못 들어가고 그러면 어떻게 하나?
이런 걱정이 돼서 그래. 니가 힘든 걸 시키고 싶진 않지만 이게 맞는 건가 모르겠어.
하나님이 너한테 주신 달란트가 있는데 그걸 잘 닦으려면 노력도 해야하는데 힘든 건 너무 안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말이야. 그랬더니....

채윤이 훌쩍이면서 이런다.

엄마! 그러면 내 달란트를 잘 쓰게 해줘야지. 피아노를 연습만 하라고 하고 내가  치고싶은 거는 못 치게 하잖아. 저번에 애들이나 치는 거 친다고 뭐라고 했잖아. 그게 애들이 치는 게 아니라 내가 그냥 좋아서 치고 싶은 거였다고.
내가 좋아하는 걸 마음대로 칠 수 있게 해 줘.
그리고 엄마, 엄마는 잘 키울 수 있어. 내가 영어는 끊었지만 좋아하는 걸 위주로 해서 학원이나 이런데 보내서 가르치고 그러면 잘 키울 수 있을거야. 원래 엄마가 애들을 잘 키우잖아.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말고, 마음 풀고 친절하게 대해줘.

참, 급 상담을 받은 느낌이 들더군.
우울의 원인제공자가 바로 상담자로 변신하니 우울에 혼란스러움까지 겹쳐서
묘한 웃음이 새나오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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