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 명지대에서 강의가 있었습니다.
강의 직전, 채윤이에게 메시지가 왔는데 다리를 다쳤는데 아프다는 얘기,
통화할 수 있으면 전화를 달라는 얘기.
이건 또 뭔 일인가. 싶어서 전화를 했습니다.
실기시험을 마치고 질풍노도의 열정을 불태우기 위해서 디스코 팡팡을 타러갔던 상황입니다.
디스코 팡팡을 팡팡 타다가 떨어졌고 다리가 많이 아픈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순간, 속에서 불덩이가 훅 올라옵니다.
잘 하는 짓이다!
퍼부어주고 싶은 마음 충천하지만 엄마가 지금 갈 수 없으니 가까운 병원에 가라 했습니다. 
어찌 어찌 강의를 마치고 전화를 하니 발 뼈에 금이 가서 깁스를 했답니다.


얼마나 다쳐서 얼마나 아픈 걸까. 걱정에
강의 마치고 여유있게 늦은 점심에 커피 한 잔 해야지 했던 계획은 틀어졌고,
비가 오는데 꽉 막혀 있을 강변북로를 뚫고 천호동까지 태우러 가야하고,
앞으로 등하교는 어떻게 하나,
얘는 하는 일마다.... 사람을 이렇게 힘들게 하냐.
부글부글했습니다.
이런 예기치 않은 고통, 정말 싫어! 라는 마음에 운전해서 가는 길이 무겁기만 했습니다.
거의 두 시간이 걸려서 천호동에 도착.
가는 동안 통화하는데 우산도 없는 채윤이,
엄마, 내가 차 세우기 편한 곳으로 갈께. 아주 못 걷진 않아.
엄마 강의하고 피곤할텐데 어떡해.... 합니다.


애써 감정을 누르고 엄마는 괜찮아. 기다리다가 바로 앞에 가면 나와. 했습니다.
차에 타서 경과를 설명하는 채윤이.
딱 떨어졌는데, 내가 알잖아. 이건 그냥 삐끗한 게 아니구나. 너무 아픈거야.
그런데 같이 있는 친구, 좋은 분위기 망칠까봐 그냥 내색을 못했어.
엄마가 걱정할까봐 전화 하지 않고 병원 가려고 했는데 혹시 돈이 모자를까봐.
솔직히 엄마, 다쳤는데 내가 아픈 건 괜찮은데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어.
엄마, 미안해. 엄마 강의하고  힘들텐데 여기까지 오게 하고.
그리고 앞으로 치료하려면 돈도 많이 들텐데. 
엄마 미안해.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이기적이던 챈이 속이 깊어졌구나.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챈에게 어떤 엄마이길래, 어떤 존재이길래
발이 아픈 것보다 엄마 힘든 거, 돈 들어갈 것이 더 걱정인 이 지경이 되었을까.
나는 채윤이에게 어떤 존재일까?
힘들고 아플 때 앞뒤 가리지 않고 그냥 뛰어들어 울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그런 품이 아닌가.
엄마는 그런 존재여야 하는데 채윤이 엄마는 도대체 어떤 존재이길래....


채윤아, 엄마가 갑자기 생긴 일에 힘들기는 하지만 니가 미안해 할 필요가 없어.
아니, 미안해 하면 안 되는 거야.
왜냐하면 하나님이 채윤이를 잘 돌보라고 엄마한테 부탁하신 거야.
엄마는 채윤이 힘들 때 돌봐주고, 안아주라고 있는 거야.
이건 엄마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까 그런 생각 하지마.
터질 것 같은 울음을 꾹꾸 누르며 겨우 참고 얘기했습니다.


얼마 전에 중간고사 성적을 가지고 채윤이가 담임 선생님에게 기분 상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나름대로 채윤이는 열심히 공부했고 성적과 상관없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던 차였습니다.
열심히 피아노 치고, 시험기간에 반짝 공부하는 채윤이가
열심히 피아노 치고 밤 12시에 과외 받고 새벽 2시가 되어 잠드는 친구들과 성적경쟁에서 비교가 불가하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채윤이를 그렇게 살도록 하지 않겠다는 의지 역시 확고합니다.
살짝 흥분을 해서 담임 선생님을 찾아갈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남편과 의논한 끝에 그냥 지나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성적으로 줄 세우는 세상에서 어떤 경우에도 엄마 아빠는 돌아와 안길 수 있는 품이 되자.
이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제 정신으로 살려면 채윤이가 많은 상처 받겠지만
그때마다 돌아와 안길 수 있는 품이 되자.


그렇게 결심한 지가 엊그젠데......
다리 다친 채윤이에게 엄마의 품은 돌아와 안길 곳이 아니라니요.
아픈 것보다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니요.
지하철로 등하교 하겠다는, 할 수 있다는 아이를 굳이 차로 데려다 주고
금요일 일을 마치고 부랴부랴 태우러 달려갔습니다.
일종의 참회이기도 하고,

이젠 정말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똑같은 아이로 살 것이 아니라 

어른으로, 진정한 엄마로 사는 고통을 감내하겠다는 결심입니다.
매일 매일 채윤이와 함께 자랍니다.
내 나이 14세. ㅠㅠㅠㅠ


* 오늘도 여지없이 소영이는 한 건.

엄마, 정말 고마워. 워커를 하니까 훨씬 따뜻해.
진작에 워커를 하고 다닐 걸 그랬어. 목에 바람이 하나도 안 들어와.
(워커가 왜 목의 바람을 관리하고 그럴까요?)
워머 맞습니다. 워머를 하나 사줬더니 자꾸 워커라네요.
(이제 이 정도는 놀랍지도, 웃기지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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