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방학이 시작되면서 아침부터 나사가 풀려가는 아이들을 데리고 단원고 박예슬 학생 전시회에 다녀왔다. 벌써부터 마음은 있었으나 가보질 못했고, 어차피 곧 방학인데 아이들과 함께 가야겠다 싶어서 미뤄두고 있었다. 무더운 날씨에 집에 있는 것보단 낫겠다 싶었는지 두 녀석 다 흔쾌히 따라나섰다. 그렇다 해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한두 번 당해봤나. 아이들과 이런 곳에 가면 좋은 마음으로 갔다가 결국 마음이 꼬부라져서 들어오게 된다. 하도 여러 번 겪어서 이젠 출발할 때부터 미리 기분이 나빠지기도 한다.




예슬이 언니 작품 옆에 채윤이을 세워 놓고 사진을 찍으려니 다시 울컥한다. 저렇게 때론 이쁘고 때론 얄미우며, 가끔 허황된 꿈을 꾸고 가끔 과하게 자기를 비하하고, 머리를 감으면 하루 종일 머리 드라이를 하며 헤어 미스트를 뿌리고 살랑거리고 나가는, 그리고 방에 들어가보면 '돼지우리' 소리가 절로 나오는 여학생이었을 것이다. 그런 딸내미를 엄마 아빠가, 전국민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면서 그대로 차거운 바닷물에 빼앗겨버리고 말았다. 사람이 우주에 갔다오는 시대에 대한민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런 생각에 미쳐 눈물이 나다가 심드렁한 표정의 우리 아이들을 보면 속이 상해서 눈물이 쏙 들어가 대신  불이 나오려 한다. 눈물도 불 레이져도 꾹꾹 참아 집어넣고 관람을 하고 나왔다.

 


 

이느무 시키들. 여기서 런닝맨 촬영이라도 했어야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래? 남편에게 사진을 보내면서 '애들 때문에 힘들어' 했더니 분위기 파악하고 '우리 애들은 왜 그럴까?' 라고 했다. '사실 애들은 다 그래'라고 메시지를 보내놓고 나니 '맞아, 그러니까 애들이지. 애들이 그럼 애를 낳아 키워 본 엄마처럼 반응하면 애들인가?'싶어서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적극적으로 포스트잇에 적거나 하진 않았지만 어느 메시지 앞에서 한참 서서 읽기도 했었다. (나도 참! 애들에게 뭘 강요하는 거야) 집에 오자마자 현승이는 일기를 썼는데, 점심을 뭘 먹을까? 얼마나 걸어야 하나? 팥빙수냐 망고빙수냐? 여기에만 관심이 있었는 줄 알았더니 나름대로 비장하기도 했었단다.


 


굳이 아이들에게 욕심을 내자면 이 일이 '남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라고 느꼈으면 하기 때문이다. 그다지 감상적인 의미가 아니다. 예기치 않은 고통은 언제든 찾아온다. 누구에게든 찾아온다. 하나님 믿는 사람에게도 예외는 없다. 스캇펙이 그리 말하고 래래크랩은 늘 바로 그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신실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착하게 살았던 사람도 사고를 당하고 고치기 어려운 병에 걸리기도 한다. 그 예기치 않은 고통이 갈수록 악한 사람들에 의한 악한 선택이 쌓이고 쌓이며, 교차하고 교차하는 지점에서 일어나고 있다. 누구도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니까 이해타산적인 관점에서 타인이 고통당할 때 내가 울어줘야 내가 고통당할 때 남도 나와 울어줄 것 아니냐, 는 의미가 아니다. 악과 악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은 그냥 나다. 우리이고 우리 아이들이다. 세월호의 아이들이 그렇고 가자에서 죽어가는 아이들, 피투성이 아이의 몸을 끌어안고 피울음을 토하는 부모들이 바로 나다.

 

최근에 본 정말 소름끼치는 두 장의 사진과 기사였다. 왼쪽은 팔레스타인 아이를 낳는 엄마들을 모두 죽여야 한다고 말한 이스라엘 국회의원이다. 오른 쪽 사진은 광화문에서 단식 중인 단원고 엄마 아빠를 찾아가 서명대를 부수고 난동을 부린 어버이 연합과 엄마 부대 봉사단이다. '집회 막으면 휴대폰으로 사진 찍어서 고발하겠다'며 미소 짓고 사진 찍는 엄.마. 그리고 이 분들이 한 얘기는 떠올릴 때마다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누가 배타고 가라고 했냐, 누가 죽으라고 했냐' 털썩!이다. 정말 털썩!이다. 개인적인 원한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고통 속에 있는 인간을 절대 타자화 하여 저렇게도 무정할 수 있을까. 무섭도록 잔인한 무정함이다. 내 새끼, 우리 가족, 우리 교회, 우리 공동체.... 참 좋은 말인데 '우리'가 그 '우리'에서만 끝나면 우리에 갇혀 꼼짝 못하는 짐승이 되는 길이다.

나는 나를 뛰어넘는 '우리'를 살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 부부, 우리 채윤이, 우리 현승이... 나라는 인간, 누구보다 '우리'라는 우리에 자주 매이는 것 인정이다. 그래서 적어도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키우지 않아야겠다는 꿈 또는 욕심을 내보는 것이다. 세월호와 관련하여 1인 시위를 몇 번 나갔었다. 집에서 혼자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던 엄마들 중 용기있고 행동이 빠른 엄마가 시작했고, 그 좋은 뜻에 '그냥' 엄마 몇이 함께 하는데 나도 기회를 얻었다. 이 일이 언론에 나가고 알려지면서 많은 엄마들이 함께 하게 되었다. 사람이 많아지다보니 이런 저런 문제가 발생하고, 자연스레 조직을 위한 관리가 필요하게 되는 것 같다. 모임을 지켜야 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그런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조용히 모임 밴드에서 탈퇴하고 나왔다.  좋은 뜻이고 필요한 일인 줄 안다. 그런 줄 알지만 나는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다. '우리'의 명분이나 권익을 애써 지켜야 하는 모임의 회원이 되고 싶지가 않다. 까칠한 나를 탓한다. 탓하지만 잘못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어쨌든 끝까지 저 그림의 손 하나가 될 것이다. 초딩의 손목처럼 얇고 보잘 것 없는 손목이지만서도. 아픈 나를 위하는 일이니까.


광화문에서, 국회 앞에서 단식하며 단장의 고통으로 이 밤을 보내고 있을 엄마 아빠들이 더는  절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보상금도, 대학 특례 입학도 그들의 입에서 발설된 바가 없다. 저 엄마 아빠들은 오직 진실을 알고 싶다는 것이다. 내 새끼가 죽은 일에 관한 진실을 알고 싶다는 것이다.(아, 정말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어떤 할머니가 그랬단다. '애들은 이미 다 죽은 거고, 이제 와서 저 사람들이 저러고 데모하는 거, 뭘 바라서 저러는 거겠냐. 돈 아니냐. 보상금. 그것 아니고 뭐 바랄 것이 뭐 있어서 저러겠냐' 그 말에 아이를 잃은 아빠가 그렇게 페북에 썼다. '할머니의 손주가 세월호 안에 있다고 생각해보시면 아실 거예요' 남의 아이 아니다. 남의 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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