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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사람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by larinari 2015. 9. 5.

 

 

 

집사님,

집사님과 함께 찬양했던 사진을 찾느라 한참 시간을 보냈어요. 집사님 찬양하시는 모습이 크게 잡힌 사진을 기억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찾다 찾다 예전 싸이클럽까지 가서 저 사진 한 장을 찾았어요. 사진이 흐릿하지만 집사님 옆 모습 딱 보여요. 제 마음의 사진첩 샬롬찬양대 폴더에는 수백 장의 사진과 MP3가 저장되어 있어요. 그 중에 집사님이 솔로로 부르셨던 노래도 있지요. 6/8 박자로 편곡된 곡이었어요. 싱코페이션이 많고 익숙하지 않은 리듬이라 많이 어려워 하셨었죠.

 

이와 같은 때 난 노래하네 사랑을 노래하네 주께

이와 같은 때 손 높이 드네 손 높이 드네 주님께

 

저 오래 전 어린이 성가대 지휘를 할 때부터 솔리스트를 선정할 때의 음악보다는 가사를 봤어요. 찬양의 가사를 경험으로부터 길어올려 고백할 수 있겠다 싶은 분께 솔로 부탁하곤 했어요. 그 때문인지 제가 지휘했던 그 많은 곡들의 솔리스트를 거의 다 기억하고 있어요. 20년 전 어린이 성가대 때부터요. 그 많은 곡들 중  찬양을 부르셨던  집사님의 비음 많이 섞에 목소리는 더욱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어요. 제가 윤복희 목소리 닮았다고 말씀드렸었잖아요.

 

성가대 지휘는 제가 가장 사랑하던 일 중의 하나였고, 지휘자 가운은 그 어느 때보다 저 다워지게 만드는 옷인 것 같아요. 그 어떤 성가대보다 더욱 기쁘게 찬양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어요. 샬롬찬양대는요. 파트연습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도 틀리고 또 틀리시고, 어떻게 틀리는지 흉내내 드리면 깔깔깔 웃으시다 시작되는 농담 따먹기는 끝이 없고, 그래도 안 되면 노래 중간에 넋을 놓고 쉬시던 어르신들 생각이 나요.  제가 가진 얕은 음악성과 근성있는 유머본능이 대원들의 착함과 너그러움 그리고 (솔까말) 엉망진창 음악성과 조화를 이루며 많이 웃고 울었던 것 같아요.

 

집사님은 늘 말씀이 없으시고 조용히 다니셨죠. 지휘하다 집사님과 눈이 딱 마주치면 마음이 막 쓰리곤 했었어요. 제가 청년이었을 적에 지휘하던 어린이 성가대에 집사님의 둘째 G가 있었잖아요. 장난꾸러기라 저한테 혼이 많이 났죠. G에게 야단을 많이 친 죄로 집사님을 뵈면 괜히 죄송했어요. 얼마 후에 남편 집사님께서 암투병을 시작하셨고 끝내 천국으로 가셨어요. 저는 그때 먼발치에서 주보 광고로만 소식을 접했어요. 그러나 어린 남매를 혼자 키우신 제 엄마에 대한 마음 때문인지 그 이후 교회에서 집사님 뵐 때마다 마음이 아팠어요.

 

시간이 많이 지나서 두 아이가 성인이 되고, 집사님과 샬롬찬양대에서 만나게 되었어요. 늘 모이면 왁자지껄 즐거운 찬양대에서 집사님은 말이 없으셨어요. 그림자처럼 조용히 다니셨죠.  저 찬양의 '이와 같은 때'에는 부르는 사람마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거예요. 제게 '이와 같은 때'는 모든 최악의 순간인데요. 제 마음의 '이와 같은 때'를 집사님의 상황에 투사한 것 같아요. 솔로를 부탁드렸을 때 한사코 마다하셨고, 앞에 앉으신 분을 방패삼아 몸을 자꾸 숨기시던 기억이 나요. 박자가 너무 어렵다고 하셨고, 결국 주일 찬양에서 긴장하셔서 박자를 놓치기도 하셨죠. ^^ 그래도 집사님이 부르셨던 그 찬양 제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어요.

 

지난 목요일 밤 삼성병원 장례식장에서 사진으로만 집사님을 뵈며 작별 인사를 나눴어요. 남겨진 남매를 만나고 많이 울었어요. 이제 둘 다 듬직한 성인이 되어 안심이라고 애써 생각해 보기도 해요. 더욱 어른스러워진 D의 말에 감정의 둑이 무너져 버렸어요. "엄마가 선생님 많이 좋아한 거 아시죠?" 그러고 보면 그 세월 같이 찬양을 하면서도 집사님과 길게 얘기 나눠본 적이 없어요. 저희 아이들이 집사님 얘길 하니까 '아, 그 던킨도넛 집사님!'이라고 해요. 맞아요. 제가 언젠가 연습시간에 저희 아이들 얘길 하면서 던킨도넛 얘길 했어요. 그 후 크리스마스에 집사님께서 던킨도넛 한 아름을 현승이에게 안겨 주셨죠. 저희가 집사님과 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언젠가 한 번은 저희 현관에 던킨도넛을 걸어두고 가셨었어요. 이제 와 생각하니 도넛상자에 담긴 집사님의 마음이 더욱 가까이 느껴져요. 집사님, 저도 사실 집사님 많이 좋아했는데요.....

 

장례식에서 집사님께 작별인사 드리고 온 밤에 강의 준비를 핑계 삼아 새벽까지 앉아 있었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암에게 뺏겨버린 D와 G를 위해 기도를 드린 것도 같고, 잠깐씩 눈물을 훔치다가  집사님께 마음으로 무슨 말씀인가를 드린 것도 같아요. 강의 준비는 영 못했죠. 잠깐 눈 붙이고 일어나 나갈 준비하는데 마음에서 찬양 하나가 올라왔어요.

 

이 세상을 일찍 떠난 사랑하는 성도들 내가 올 줄 고대하고 있겠네

저희들과 한 소리로 찬송 부르기 전에 먼저 사랑하는 주를 뵈오리

 

집사님, 그렇게 고통스럽던 아픈 몸을 벗으시고 그렇게 그립던 남편을 만나셔서 사랑하는 주님 품에 잘 계실 것을 믿어요. 음... 집사님 저 장래희망 하나 더 생겼어요. 장래 천국에 가서 집사님과 함께 '이와 같은 때엔' 찬양을 부르겠어요. 샬롬찬양대 좋은 분들 함께 모여서 '여호와는 위대하다' '찬양할 수 있는 은혜'를 부르겠어요. 그때는 모두들 악보를 잘 보시겠죠? 무엇보다 집사님은 남편과 나란히 앉아 찬양하셔야 해요. 그런 날을 소망해요. 

집사님, 저............ 집사님 참 좋아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