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이 되어 연애하기(..) 27

 

 

괜찮은 사람이고 사귀어볼까 싶기도 한데요. 이해가 안 되시겠지만.... 그 남자 손만 보면 마음이 딱 닫혀버려요. 저는 솔직히 남자 손이 진짜 중요하거든요. 저 이상하죠?’ , 이상합니다. 이상합니다만 비슷하며 다른 디테일로 이상한 동지들이 많으니 걱정은 내려놓으세요. 손만이 아니라 입매, 턱 생긴 모양 등 부위만 달랐지 사소한 취향에 막혀 관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성격, 몸매는 다 용서할 수 있는데 어떤 피부상태는 극복하지 못하겠더라.’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적당한 머리숱, 여자를 볼 때 유난히 머리숱에 집착하게 된다.’ 등등. 어떤 사람과 더 가까워질 수 없는 이유가 늘 합리적이고 것은 아닙니다. 살다보면 그냥 싫은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그냥 싫은 것에 비하면 이 이상하고 사소한 이유는 얼마나 명확합니까.

 

(그녀)에게 끌려 헤어 나오지 못하는 단 하나의 이유 역시 내놓기 부끄러운 경우가 있습니다. “도대체 그 사람이 뭐가 좋다고 그래?” “, 내가 아는 그 음악을 알더라구. 게다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이래. 처음이야. 이렇듯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 만난 건....(먼 산, 아득한 눈빛)” 이러면 결혼이 음악 동호횐줄 아냐? 평생 음악만 듣고 살 줄 아냐?’ 나무라는 선배 언니 꼭 있지요. 소개팅 다녀와서 귀를 쫑긋 세우고 결과보고를 기다리는 엄마께 다 괜찮은데 손이 맘에 안 들어.” 해도 비슷한 반응이실 겁니다. “결혼해서 손만 보고 사냐? 100%로 맞는 사람이 어딨어. 웬만하면 맞춰가는 거다.” 엄마나 결혼한 선배언니를 설득하긴 어렵겠지만 그 사소한 취향은 소중하며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나 자신이 되어 연애한다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따라 결정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실은 우리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잘 알지 못합니다. 알 수 없는, 때로 알기 싫은 이유와 동기를 퉁 쳐버리는 한 마디가 그냥입니다. 나 자신이 되어 연애하고 싶은 자! ‘그냥이 위장하고 있는 귀찮음과 거북함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이유 없는 감정과 생각은 없습니다. 내 안에서 올라온 사소한 것들은 귀하게 다루어져야 하는데 진공상태에서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나의 역사 속에서 떨어져 나온 한 조각의 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일까? 사귀어볼까? 이 사람과 결혼해도 될까?’ 어떤 것을 결정하는 시점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크고 작은 경험이 쌓여 나만의 삶의 역사가 만들어졌고요. 물론 내 역사를 들추어 취향의 근거를 다 찾아내야 한다는 것도, 찾을 수 있다는 뜻도 아닙니다. 평생 정신분석을 받는다 해도 다 밝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내 안에서 올라온 어떤 것들에 이유가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 사소함에 집중하여 마음 깊은 곳에 숨은 더 깊은 갈망과 찾아줄 사람은 오직 나뿐입니다. 나 자신이 된다는 것의 또 다른 의미는 나를 돌보는 권리와 의무를 타인에게 양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양도한다 해도 떠맡아줄 이도 없겠습니다만) ‘, 손이 뭐가 어떻다는 거야. 같은 음악을 좋아한다고? 그래서 뭐엄마나 선배의 (애정 어린) 조롱에 휩쓸려 그들과 나란히 서서 스스로에게 돌 던지지 말고 나를 설명해 내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자기를 탐구하기 위해 엄마나 선배 언니의 말을 깡그리 무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나 자신이 된다는 것은 타인으로부터 전혀 아무 영향도 받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전혀 영향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차라리 더 휘둘리는 것이죠. 타인이 내게 미치는 영향력을 깨어 인식하고 타인의 시선에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타인의 반응을 통해서 나는 못 보는데 타인은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숙고하되 타인은 어디까지나 타인임을 또한 잊지 말아야겠지요. 즉 자기만의 경험에서 길어 올린 수만 가지 취향으로 나를 평가할 테니까요.

 

이쯤에서 저도 취향 커밍아웃을 해야겠네요. 저 역시 남자의 손이 중요한, 이상한 취향을 가진 여자입니다. 꼭 손 때문은 아니었지만 내 취향에 딱 맞는 손을 가진 남자와 결혼하였습니다. 마음을 치료하는 직업적인 자기탐색 작업과 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손바닥이 두툼한 아버지의 손에 대한 그리움과 관련 있다는 것을요. 어릴 적 갑자기 아버지를 잃어 막막했던 마음은 세상을 살아가며 나를 붙들어줄, 언제든 내가 잡고 의지할 수 있는 손을 잃어버린 느낌이었습니다. 젊은 날부터 집착해 왔던 남자의 손에 대한 취향연구로 저 자신을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손이 아버지의 손처럼 위안이 될 때 참 좋았습니다. 남편의 손이 아버지의 손을 대체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크게 실망 했습니다. 아버지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결핍을 채워달라고 남편 손을 잡고 매달리는 한, 나 자신이 되어 건강한 사랑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남편의 손은 내 영혼의 가장 깊은 갈망, 하나님 사랑에 대한 그리움의 대체물이 될 수 없다는 것도요. 그 같은 깨달음의 여정은 남편을 더욱 온전히 사랑하는 여정과 다르지 않았답니다. 어떤가요. 사소한 취향,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지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