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피정, 잘 다녀왔습니다.

신앙과 기도의 벽 앞에 섰던 10여 년 전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전에 했던 기도로는 더는 실존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었습니다. 신앙과 삶에서 기쁨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요. 그때 구원처럼 에니어그램 내적 여정을 만났는데, 정말 정말 모르고 싶었던 나의 이면, '거짓자아'의 실체를 마주하고 다시 털썩!이었습니다. 


깊은 기도에의 갈망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했습니다. 에니어그램 여정 중에 만난 향심기도(centering prayer)를 마지막 구원줄로 붙들고 10여 년 세월을 보냈습니다. 벽인가 했더니 터널이었고, 끝없는 터널인가 했더니 인생 여정에 꼭 지났어야 할 빽빽한 숲길이었습니다. 앞이 안 보이는 캄캄한 터널에서 한 발 한 발 내딛을 수 있었던 것은 남몰래 드리는 향심기도였고, 과연 이것은 벽에서 터널로, 터널에서 숲으로 이끄는 구원의 줄이었습니다. 예전처럼 청하는 기도, 중보기도 드릴 수 있습니다. 예전보다 훨씬 투명한 마음으로요. 물론 향심기도도 놓치지 않습니다. 


10여 년, 이런 저런 기도 피정을 다니면서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 앉아 외롭게 기도했습니다. 교회 처음 온 초신자처럼 그렇게요.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이번에 갔던 향심기도 피정에선 참가자 14명 중에 개신교 신자가 12명(두 분은 목회자). 가톨릭 신자 한 분이 ‘이 분위기 너무 당혹스럽다’며 개신교 신자들의 열심, 놀랍다 하셨습니다. 저도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피정 인도하시던 수녀님들도 당황하셨을 것 같습니다. 저로서는 10여 년 외로움, 치유의 시간.


피정 기간 붙들고 읽었던 책이 딱 한 챕터가 남아 있었습니다. 집에 오기 전 카페에 들러 마지막 챕터를 읽었습니다. 영성 수련과 관상의 자리는 다름 아닌 ‘일상’입니다. 고루한 반복, 실패, 어려움, 그리고 유혹들이 끝없이 일어나서 아무 진전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일상 말이지요. 그런 일상에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영성이라고 말씀하시는 그분의 목소리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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