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
이토록 마음에 드는 꼭지 이름, 으로 두 달에 한 번 글을 쓴다.
주일 예배를 축으로 일주일이 돌고, 내적여정과 대학원 학기를 따라서 반년이 돌고, 지도자과정으로 일 년이 굴러가고... 크로노스의 시간을 의미 시간으로 구획 짓는 일들이다. 그중 특별한 주기가 두 달에 한 번 돌아오는 원고 마감의 시간이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이 즈음 며칠은 수도자 같은 마음이 된다. 일단 원고를 위해 두어 권의 책을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 책을 읽고, 북마크 포스트잇을 붙이고, 메모하는데 시간을 많이 보낸다. 중요한 글을 위해서 사전에 조금 읽지 않으면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다. 효율을 고려하면 굳이 새로 읽지 않아도 된다. 이미 쓰고자 하는 내용이며 구조는 나와 있어서, 사실 쓰자면 그냥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쓰기 위해서는 읽기 의례를 통과해야만 한다. 주제에 닿고 마음에 드는 신간을 찾아 읽노라면 주객이 전도되기도 한다. 쓰기 위해 읽는 것인데, 읽는 것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원고는 까맣게 잊고 빠져들기도 한다. 2년 여 기고글을 쓰면서 중년, 노년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읽었다. 기획 단계에서 이미 나온 틀이 있고 쓸 말도 내 안에 다 있는데 말이다. 쓰기 전에 읽기, 최 신간 찾아 읽기에의 집착으로 이미 나온 틀이 세분화되고 약간의 깊이까지 생겼다. 원고 쓰고 돈 벌고, 공부하고, 이 모든 과정이 즐겁(기만한 것은 아니지만)고... 일석 몇 조인지 모르겠다.
원고 마감 즈음이 되면 남편을 위시하여 아이들까지 조심 모드를 자처해준다. 그러니 나는 더욱 수도자 코스프레를 하게 된다. 코스프레는 아니다. 정말 마음이 차분해지고, 오직 원고 주제만 생각한다. 책을 읽고, 해 질 녘엔 산책을 하고, 글이 써지면 새벽까지 앉아 있고, 오늘 글렀다 싶으면 어느 때보다 일찍 잠에 든다. 지나치게 예민하게 굴고, 그러면서도 한없이 무덤덤해지면서 일상에서 한 발 물러선다. 그렇다고 글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하루에 몇 개씩 블로그 포스팅을 한다든가(요 며칠 그랬다.), 연구소의 자잘한 일을 몰아서 하기도 한다. 연구소 단톡에 한 마디 올라오면 득달같이 답톡을 보내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반응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마음만은 한 방향을 향하는 수도자의 그것이다. 이런 시간이 고통스러운데 즐겁다. 전에는 탈고하는 그 순간을 즐겼다면, 갈수록 이 고통스러운 과정으로서의 시간이 소중하고 좋다. 심지어 아깝다. 고통스러운데 아깝다. 작년 연말에 했던 송년 글쓰기에서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에 "글쓰는 사람"이라고 나를 소개했다. 이렇게 소개하는 게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글을 쓰는 내가 참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글을 쓸 때 가장 나답다 여겨지며, 글을 쓸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삶의 모든 시름을 글로 다스린다. 쓰기 위해 읽고, 읽다 보니 또 쓰고 싶어지고... 끝나지 않을 탈고와 알라딘 주문 넣기와 독서를 오가는 시간을 살 수 있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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