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 교회의 제자들과 톡으로 통화로 알콩달콩 하는 것을 본 채윤이가 어느 날, "나도 사몬님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 말고 사몬님..." 했다. 언니들이 그렇게 따르며 얘기 나누고 싶어 하는 사모님이 아무 때나 사용할 수 있는 '내 엄마'라는 자부심이라더니. 엄마 아닌 "내 사모님"을 가지고 싶다고 했다. 나를 부르는 많은 호칭 중, 한때 내게 가장 복잡하고 무거운 짐을 지웠던 것이 '사모님'이다. (지금은 상당히 가볍고 괜찮다.) 그 이름이 준 무게로 가장 어려웠을 때조차도 청년들이 "사모님!" 하고 불러주면 참 좋고 따뜻했다. 아니, 그 덕분에 그 무거운 시간을 건너왔는지 모르겠다. (그때 그 아이들은 '사' 빼고 '모님'이라 불렀었지.)

우리 교회 청년들이 올해 10년 만에 처음으로 단독 수련회를 했는데. 이 친구들이 단독 수련회를 가지는 즈음, 나는 비로소 내 교회 청년들에게 사모님이 된 것 같다. 8년 전, 교회에 처음 부임하자마자 4주 짜리 연애 세미나를 했었다. 그리고는 올해 여름이 시작될 때, 발목 골절로 한참 목발 투혼 하는 중에 3주짜리 세미나를 또 했다. 세월이 준 신뢰, 그 세월 속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 낸 친밀감으로 아이들이 내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왔고 참 좋은 시간이었다.
평생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하는 '사랑 고백'의 표현이 "글 써. 글을 써."이다. 세미나 기간 동안 글쓰기 숙제를 내주었다. 물론 자발적 숙제였고. 자발적으로 숙제를 보내준 친구들의 글이 고맙고 예뻐서 특별히 마음에 담아 기도한다. 또 내가 평생 좋아하는 일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 하는 것이다. 세미나 3 주차는 '결혼한 선배들과의 대화'였다. '결혼 미리 보기'라는 이름으로 교회 젊은 부부들의 연애담, 결혼 생활 이야기를 듣는 시간. 이런 거 참 좋아한다. 그 시간 이후에 한 청년이 이런 글을 썼고, 너무나 뿌듯하고 보람이 되어 공유한다. 바로 이런 걸 느끼고 배우라고 선배들과 연결시켰던 것!
언젠가 청년이었던, 외롭고 막막했던 시간을 보냈던 이들이 어느새 결혼하여 지지고 볶고 육아에 지쳐 살고 있다. 젊은 날의 시간은 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이들에게도 선물이 되었을 것이다. 한때 청년이었던 이들에게 현재적 청년들이 눈과 말로 건네는 질문이 거울이 되었으리라.
청년부에서 <나 자신이 되어 연애하고 사랑하기>라는 제목으로 3주 동안 특강을 들었다. 마지막 세 번째 특강은 ‘All kinds of couple: 결혼 미리보기’라는 주제로 젊은 부부 사랑방 집사님들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특강을 신청할 때, 강의에 대한 기대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적었다. ‘3주 차에 어떤 궁금함을 가지고 참석해야 할까 아직 잘 그려지지 않는데, 1-2주 강의를 들으며 결혼에 대한 나의 질문을 품어보고 싶습니다!’ 결혼에 대한 소망은 있는데 막상 찐 부부들에게 묻고 싶은 구체적인 궁금증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만남이 나를 어디로 데리고 갈지 모르겠어서 낯선 기분도 들었던 것 같다.
당일이 되어 특강 장소로 들어가니 젊은 부부 집사님 다섯 가정이 나란히 앉아 계셨다. 그 장면이 순간 나에게 왠지 모를 압도감을 주었고, 눈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몰라 뚝딱거리며 맞은편에 앉았다. 둘씩 앉아있는 집사님들 앞에 앉는 것이 생각보다 더 긴장이 되었고 낯설었다. 나만 어색했던 건 아니었는지, 옆에 앉은 동생이 속삭이며 눈을 못 마주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인사를 나누면서, 어색과 긴장의 정체가 부러움이라는 것을 알았다.
요즘 나에게 젊은 부부 집사님들은 존재 자체로 부러움 유발 요인이시다. 아마 결혼을 소망하는 청년들이라면 각자 마음에 품은 그림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나의 그림에 있는 한 장면은 주일 아침 함께 예배드리러 가는 길 위의 모습이다. 교회에 도착해서 마침 비슷하게 도착한 K 집사님네 가족을 만날 때가 있다. 너무 예뻐라 하는 아이들이라서 반가움 마음이 막 샘솟는다. 그 뒤를 멀찍이 따라가며 넷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참 좋아 보인다. 반가움과 함께 부러움도 샘솟는다. 차라리 교회 도착해서 만나면 조금 나은데, 청년부 다 마치고 헛헛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귀갓길에 마주치면, 넷이서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그런데 반대로 청년들이 젊은 부부 집사님들에게 유발하는 부러움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적이 있다. 전교인 수련회를 갔을 때, 늦은 밤까지 마피아를 달리고 퉁퉁 부은 눈으로 아침을 먹으러 식당으로 나갔다. 그때 K 집사님이 눈을 반짝이시며 다가와 물으셨다. “어제 마피아 했다며?” 그렇다고 하니 집사님은 재밌었겠다며 얼마나 재밌었는지 물으셨다. 내가 다음에는 젊은 부부 집사님들 같이 모이자고 하니 집사님은 아까보다 더 반짝이는 눈으로 말씀하셨다. “우리만 불러. 애들 남편한테 맡기고 가게.”
기혼자가 싱글에게 부러움을 유발하는 것처럼 싱글도 기혼자에게 부러움을 유발한다니. 너무나 당연한 사실인데, 나는 반대 입장은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결혼한 집사님들이 청년들을 보며 부러운 지점이 있다는 건, 싱글인 지금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이고, 그 지점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쩌면 나는 사실 결혼이라는 것이 어떤 완전체로 가는 길이라고 여기고 있던 건 아닐까? 결혼만 하면 교회 가는 길의 이 외로움이 해결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 같은 것, 결혼만 하면 이 감정은 해결되겠지, 결혼만 하면 이 문제는 해결되겠지 하는 것들. 그런 환상이 마음 깊숙한 곳에는 잔잔히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지점에서 ‘나 자신이 되어 싱글인 지금을 나와 잘 지내는 것’이 무엇인지 헷갈리고 있는 건 아닐까? 싱글인 지금은 불충분한 상태라는 인식 가운데서 말이다.
나 자신이 되어 싱글인 지금을 잘 지낸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결혼이라는 미래를 소망하면서도 현재의 외로움과 잘 지낸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런 질문을 가지고 집사님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저분들은 싱글의 삶과 결혼의 삶을 모두 알고 계시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결혼한 집사님들은 싱글과 결혼 상태의 자기 자신을 모두 알고 계실 테니, 싱글인 지금 무엇을 더 누리고 경험하면 좋을지 질문하게 되었다.
I 집사님은 비행기를 한 번이라도 더 타라고 하셨다. 가족이 되면 그리고 아이까지 태어나면 모든 것이 다 곱하기로 든다면서 말이다. K 집사님은 집에 혼자 돌아가는 길이 외롭고 헛헛하다는 나의 나눔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게 너무 부럽다고 말했다. D 집사님도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히 필요하다고 했다. 혼자 하는 여행이, 집으로 혼자 돌아가는 길이 나에겐 빈 퍼즐마냥 뭔가 부족하고 외로운 시간인데, 이 시간이 집사님들의 부러움 요소라는 것이 신기했다.
모임을 마치고 정리하는데 L 집사님이 다가오셨다. 나의 나눔을 듣고, 자신의 청년 시절이 생각났다고 말했다. 청년부만 마치고 집에 가면 방에 누워 결혼할 수 있을까 싶어 눈물을 흘렸다면서 말이다. 집사님도 그랬다는 말이 내가 겪는 지금 이 외로움들이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말로 들려서 위로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L 집사님에게 이어서 톡이 왔다. ‘오늘 얘기 듣는데 너무 나랑 비슷해서 동질감 팍팍!! 다시 청년의 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불안감을 없애고 싶다고 얘기하려고 했었어~ 그땐 헛헛하고 부럽고 불안하고 그랬는데 그때만 할 수 있는 거겠지? 미래는 알 수 없으니까….’
비행기를 한 번 더 타라는 말씀도 좋았다. 혼자 있는 시간을 누리라는 말씀도 다 좋았다. 그리고… 그때로 돌아간다면 ‘불안감을 없애고 싶다’는 L 집사님의 나눔은 위로와 길잡이가 되었다. 외로움이 불안이 되는 지점을 느끼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소개팅에 현타가 올 때마다, 결혼하는 친구들이 하나둘 늘어날 때마다, 집에 돌아가는 길이 공허할 때마다 외로움 그 자체를 느끼기보다 불안에 휘둘린다. 그래서 불안감을 없애고 싶다는 말씀이 나에게 왠지 모르게 미래에 불안해하지 말고 오늘을 잘 누리라는 말로 들렸던 건 그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특강을 통해 다섯 커플이 어떻게 만나 연애를 했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는지를 들었다. 정말 말 그대로 ‘All kinds of couple’이었다. 특강을 마치고 신기했던 것은 의외의 부부에게 전보다 더 호감을 가지게 된 점이다. 특강이 나를 데리고 간 지점 중에 하나이다. 드러나는 나눔 때문이라기 보다도, 뭔가 두 분의 사이에 안정감이 있다고 느껴졌다. 이후에 남편 집사님께서 자신의 아내와 아이를 살뜰히 살피는 모습을 눈여겨보게 되면서 결혼 그림에 한 장면이 추가되었다. 나는 결혼 생활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보고 들은 것들 안에서 나의 결혼을 그려볼 수밖에 없다. 지금은 보고 느낀 것 안에서 품어보는 상상일 뿐이지만, 그린 그림을 체험으로 살아내며 나도 하나의 ‘kind’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다섯 부부가 모두 다른 색깔이었듯 말이다.

김천의 어느 교회 청년부 수련회에서 얻은 사진이다. 오후에 강의 하나를 하고, 저녁 집회를 인도하는 일정이었다. 저녁 식사 마치고 틈새 시간에 앉아 쉬고 있는 중. 저쪽에서 청년 몇이 재잘재잘 하더니 다가와서는 "제가 샀어요." 하면서 편의점 냉커피를 내밀고 갔다. 그 손길이 예뻐서 더 달달한 커피를 마시노라니 새벽을 달려 SRT 타고 온 피로가 날아가고 참 좋은 마음이 되었다. 그 순간, 눈에 들어온 초록의 정원을 걷는 두 친구의 뒷모습이 또 예뻤고. 집회 전 찬양 시간에 춤추고 들고뛰고 하는데, 저 두 친구가 바로 내 앞에 서서 춤을 추고 뛰는데... 저 사진을 줌을 땡긴 건가... 싶으면서 신기하기까지 했다.
너 자신이 되어 사랑하고, 고민하고, 신앙하며 살아가는 청년들을 마음 깊이 품고 기도하며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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