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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얼굴을 가진 리뷰

사랑이 한 일, 하지 못한 일

by larinari 2025. 12. 6.
예배실, 내가 앉는 자리 옆 벽에 붙은 이우독경 안내 포스터

 
이우독경
작명하는 곳이 철학관인 이유가 있다. 의미와 철학을 담아 잘 지은 이름을 보면, 딱 들어맞게 이름이 잘 지어지면... 음, 어떻지? 기부니가 좋다. 그리고 또 어떻지? 이름값을 살기 위한 행동이 뒤따른다. 교회에 독서 모임이 생겼다. 드디어! 독서 모임 있는 교회들이 얼마나 부러웠었는지.  '교회 안의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책 속에서 삶의 의미도 찾고 이유를 찾는 사람들, 모든 진리와 의미가 그분께 닿아 있으니 책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들의 모임 말이다. 철들고 쉬지 않고 그런 모임을 일구고, 일구고, 일구다 얻은 곳에 연구소 아닌가. 남편이 자기 다운 목회를 할 수 있었다면 진즉에 가장 먼저 표방했을 일이었다. 이런저런 이끄심으로 드디어 몇몇 집사님들과 청년 함께 도모하게 되었다. 이름이 얼마나 멋진지. 이우교회, 이우독경. '경'은 그저 경전이 아니다.(라고 내가 마음으로 정리함) 시, 소설, 에세이, 평론, 역사서를 통해 '경', 경전, 성경의 메시지를 읽는 것이다. 교회 독서 모임은 내게 그런 것이다. 
 
이승우 《사랑이 한 일》

클레어 키건의《이처럼 사소한 것들 》을 읽은 첫 모임에는 타교회 강의로 인해 참석하지 못했다. 얼마나 아쉬웠는지. 두 번째 책은 이승우 작가님의 《사랑이 한 일》이었다. 무려! '이처럼 사랑하는' 책을 '함께' 읽게 된다니! 읽기 시작한 한 시인 집사님께서 "첫 글을 읽고는 멈추었다. 김치가 먹고 싶다" 같은 표현을 단톡방에 남기셨는데 풉, 설렘의 웃음이 터졌다. "토할 것 같다"라고도 읽혔는데 무슨 말인지 딱 알겠기 때문이다. MBTI로 이름 붙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집사님의 성향도 알고, 이승우 작가 글의 성향도 알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이승우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내 성향을 알기에 더욱 흥미진진해졌다. 그리고 모임은 결과적으로 예상보다 더 좋았다. 음... 좋았다기보다는 소득이 컸다고 하는 게 좋겠다. 내게는 가장 좋은 점은 누구에게는 화가 나서 견딜 수 없고, 작가의 인격까지 불신할 정도의 반감이 되었으니 말이다. 집사님 한 분이 아주 넌덜머리를 내셨다. 몇 분이 또 불편해하셨는데, 정확히 내가 추측한 MBTI의 어떤 기질들이셨고.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이 이런 문장이 아니었을까, 한다. 난 정말 조사 하나, 종결 어미 하나의 변화, 같은 형용사를 긍정과 부정으로 갈아 끼우는 것으로 많은 이야기를 품는 이승우 작가의 이런 문장이 너무나 좋다. '취향'이란 얼마나 강력한 '자기성'인가. 머리로 아는 것을 심장 뛰며 체험했다. 내게 이렇게 좋은 것이 누군가에게 저렇듯 싫을 수 있다는 것. 뒤집으면, 내가 지독히 싫어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사랑하는 것'이지 않은가.  

 

1.
그것은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라고 아버지는 나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 일에 대해 아버지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그 일이 일어나지 않기라도 한 것처럼. 아니면 말하지 않는 것이 일어난 그 일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라도 되는 것처럼.《사랑이 한 일》97쪽

2.
그것은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라고 아버지는 나에게 말했다.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는 곳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일어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랑이 한 일》98쪽

3. 
그것은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라고 아버지는 나에게 말했다. 그것은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라고 아버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 문장을 담은 아버지의 목소리는 내 안에서 생생하게 울린다. 맞아요. 그것은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에요,라고 나는 아버지에게 말했다.《사랑이 한 일》102쪽

4. 
그것은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라고 아버지는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하지 않은 그 말을 나는 들었고, 그 뜻을 이해했다. 나는 누구의 말을 들었을까? 내 안에 말을 넣어준 이는 누구였을까? 일어나기 힘든 어떤 대단한 일은 사랑 때문에 일어난다.
《사랑이 한 일》107쪽

5. 
그것은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라고 아버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되거나 없었던 일이 있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말하지 않는 것이 더 크게 말하는 방버빙 되는 말이 있다. 사랑의 말이 그렇다. 무엇보다 사랑은 잘 말해져야 한다.《사랑이 한 일》112쪽

6.
그것은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라고 아버지는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일에 대해 아버지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기라도 한 것처럼. 아니면 말하지 않는 것이 일어난 그 일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믿기라도 하는 것처럼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사랑이 한 일》118쪽

 
 
사랑이 한 일, 하지 못한 일

작중 1인칭 목소리인 이삭은 깨닫는다. 모든 것이 사랑이 한 일임을. 아들을 향해 칼을 빼들고 죽이려는 아버지의 행동도, 노년에 선물로 준 외아들을 죽여서 바치라는 하나님 아버지의 요구도, 이해불가의 존속 살해 생존자인 이삭 자신의 탐구도... 모두 사랑의 발로라고 깨닫는다. 사랑이 한 일이라고. 이 책 전체는 '사랑'이 한 일로 인해 부름 받은 아브라함과 엮여 일종의 '의문의 피해자'가 된 이들의 목소리이다. 롯, 하갈, 이스마엘, 이삭, 에서, 야곱. 소명의 연좌제랄까. 하나님의 선택도, 아브라함의 순종도 사랑이었건만... 아브라함의 그 선택으로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경험을 안고 살아야 했던 조카, 두 번째 아내, 아들들, 손주들의 삶 말이다. "아빠가 날 사랑한 건 알겠는데... 사랑해서 그런 건 알겠다고요! 하지만 내게는 감옥 같았다고요!" 상담 장면에서 얼마나 많이 듣게 되는 절규인가. 이 소설은 바로 그들에게 목소리를 주고자 한 것이었다...라고 나는 읽었다. 그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려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옹호하려는, 이승우 작가의 '사랑'이 한 일이다.
 
"백 살에 얻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하는 신과 그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에 응하는 아브라함이나 광기에 사로잡힌 동네 사람들로부터 자기 집에 들어온 나그네들을 보호하기 위해 결혼하지 않은 자기 딸들을 내주겠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말하는 소돔의 성 롯, 또는 후손이 없는 주인집에 아들을 낳아주고, 그 때문에 쫓겨나는 시녀 하갈"  등,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하기 위한 나름의 작업이 이 소설의 시작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작업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를 산문집  《고요한 읽기》에 썼다.
 

독자인 나는 종종 성경의 텍스트들이 불친절하다고 느낀다. 이 텍스트들의 불친절함은 진실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진실이 전달되기 어려운 차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신의 텍스트인 성경을 인간의 텍스트인 소설로 바꾸는 작업은, 그러니까 인간화 작업이다. 이 작업에는 패러프레이즈, 즉 풀어쓰기와 가필이 동원된다. 나는 텍스트의 여백으로 침투해 들어가려고 했다. 여백은 신의 말과 인간의 말이 맞부딪치는 자리이다. 여백은 침묵이 아니라 소란이다. 어떤 말로도 옮겨지지 못해 유보된 말들이 발굴되기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는 공간이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러니까 이 작업은 더 나은 이해를 위해서이지 훼손을 위해서가 아니다. 《사랑이 한 일》의 '작가의 말'에서 나는 소설 쓰기가 일종의 패러프레이즈라고 썼다. 이미 쓰인 것을 다시, 풀어쓰는 것이 '패러프레이즈'에 대한 나의 정의이다. 이 일은 번역하는 것과 같다. "내 번역의 방법은 인간의 마음으로, 즉 소설을 통해 신의 마음, 즉 믿음의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었다." 이승우《고요한 읽기》

 
 
내 사랑이 하지 못한 일, 지못미
독서 모임이 참 좋았지만, 마음은 무척 아팠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기도 했다. '고유한 글쓰기 스타일'의 문제로 고초 당하는 사랑하는 작가를 지키지 못했다. 괜한 의협심과 함께 사람에게 충성하는 개 같은(ㅎㅎ, 진짜 개!) 기질 때문에 다짜고짜 편들고 편애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직접 관련 없는 일에 과한 공감, 과한 몰입, 과한 투신으로 화를 자처했던 기억도 있고. 이런 나를 데리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이승우 작가님인데... MBTI 기질 차이로 이름 붙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고. 어쭙잖은 글을 쓰고 책을 낸 자의 정체성으로 '내놓은 글'은 더는 작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며 스스로 다독였다. 내 책과 내 글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 따위 글을 책으로 냈냐"는 평을 듣는 상상을 하기도 했으니까. 그럼에도 못내 내려놓지 못한 미안한 무거움으로 이후 며칠 이승우 작가의 책들을 뒤적였다. 그러다 《사랑이 한 일》 저작에 관해 쓴 에세이 한 편을 필사했고, 개정판으로 나온 《생의 이면》을 다시 주문했다.
 
마침 몇 개의 원고를 몰아서 써야 하는 시즌이어서 이승우 작가가 소설 쓰기의 무거움을 담아 드린다는 기도 "문장을 주십시오"를 따라 기도하며 썼다. 지켜드리지는 못했지만, 애정하는 글 스승님으로 더욱 가까이 모시게 되었으니까... 흠.... 이것은 사랑이 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