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간의 얼굴을 가진 리뷰

『나목』: 미치지 않기 위해

by larinari 2026. 2. 22.

 

내 마음인데, 모르는 내 마음이 있다. 내 것이지만 결코 알 수 없는 것이 '어떤' 내 마음이기도 하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모르고 싶은 것이다. '모르고 싶은 나'를 알아버리면 그대로 치유이며 성장이 되기도 한다. 마주하고 극복하여 그 너머로 가게 된다. 그런데 제일 어려운 것이 그것이다. "내 마음 나도 몰라"는 만고의 진리이다. 
 
내 사랑인데, 내가 모르는 사랑이 있다. 내 마음을 모르기에 그 마음 안에 담긴 사랑도 미움도 모른다. 마음이란 묘한 것이어서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다. 내 눈이 세상 모든 것을 보지만, 내 눈만큼은 볼 수 없는 것처럼. 그러니 칼 융의 통찰은 얼마나 천재적인가. "거울"이 필요하다. 모르는 내 마음(그러나 나 말고 남들은 다 아는 나의 이면인) 무의식은 "투사"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고 했다. 비춰보는 것이다.
 
평생 책을 사랑했고, 읽었고, 누군가를 읽게 하려는 뜻으로 살아왔지만. "각 잡고 책 모임"이란 것은 처음 해본다. 교회 독서 모임(그 이름도 사랑스러운 "이우독경")이 느슨하게 진행되고 있다.  내 평생 '공동체'라는 꿈을 가지고 끝없이 이런저런 만남을 일구어 왔고, 거기엔 늘 책이 있었지만, 책을 내세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머리형에 책 중독자인 '나'로서, 그때그때 삶의 문제를 푸는 열쇠가 책이었기에 모든 모임에서 책 읽기는 그냥 기본설정이었다. 난생처음 하는 각 잡은 '독서 모임'으로 '내게 책 읽기란 이런 것이었구나' 알게 된다. 회가 거듭할수록 새롭게 알게 된다. 난 정말 독서 생존자이구나! 책 덕분에 살아남았구나... 
 
네 번의 이우독경 모임은 공교롭게도 연이어 소설이었다. 클레어 키건-이승우-한강-박완서. 모두 좋아하는 작가이지만, 내가 추천하지는 않았다. 이래저래 하다 결정된 것이다. 이번 달 책은 박완서의 『나목』이었는데. 지난번 이승우 작가의 『사랑이 한 일』때만큼은 아니었지만, 모임 내내 상당히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오고 쓸려나가곤 했다.
 
사람마다 책을 읽는 결은 다 다르겠지만,  나에게 『나목』은 단순한 소설 그 이상이다. 누군가에게는 주인공 이경의 서툰 사랑이 가볍게 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 너머의 처절함을 붙들고 있던 나로서는 자꾸만 마음이 저릿했다. 이경이라는 인물을 빌려 자신의 생존을 증언했던 박완서 선생님의 문장들이 혹여나 가벼운 가십처럼 흩어질까 봐, 혼자 조바심을 내며 그분의 진심을 지켜드리고 싶은 묘한 의리마저 느꼈다. 지난번 이승우 작가에 대한 마음처럼 지켜드리지 못한 미안함이었고, 그 미안함은 내 나름의 사랑이며 존경심이다.
 
전쟁 이야기인데. 전쟁이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부수었는지, 부수어진 삶에 굴복하지 않고 살아남은 생존자의 이야기인데. 내게『나목』의 다른 이름은 『전쟁과 사랑』 인데... 작품의 배경이나 인물들의 겉모습을 흥미롭게 짚어가는 이야기들 사이에서,  정작 행간에 숨겨진 작가의 절박한 증언에 닿지 못하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누군가는 이를 발칙한 유부남과의 사랑으로, 혹은 화가 박수근의 실화로 소비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이 책은 '전쟁과 사랑' 그 자체로 다가온다. 독자란 본디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존재라지만, 작가가 서문에 그토록 간절히 밝혀둔 '증언의 무게'에 닿지 못하는 것 같아 못내 아쉽고 서글펐다.
 
 

『나목』을 읽은 사람들 사이에선 거기 나오는 주인공 화가가 고故 박수근 화백으로 알려져 여지껏 거기 대한 질문을 꽤 많이 받았다. 그중엔 터무니없는 억측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의 그림을 얼마나 소장하고 있나 궁금해하는 사람까지 있었기에 이 기회에 그 문제를 잠깐 짚고 넘어갈까 한다. 『나목』은 어디까지나 소설이지 전기나 실화가 아니다. 『나목』을 소설로 쓰기 전에 고 박수근 화백의 전기를 써보고 싶었던 건 사실이지만, 내가 그를 알고 지낸 게 그나 내가 가장 불우했던 1년 미만의 짧은 동안이었기 때문에 전기를 쓰기엔 그에 대해 아는 구체적인 게 너무나 모자랐다. 그러나 한 예술가가, 모든 예술가들이 대구, 부산, 제주 등지에서 미치고 환장하지 않으면 독한 술로라도 정신을 흐려놓지 않고는 견디어낼 수가 없었던 1.4 후퇴 후의 암울한 불안과 혼돈의 시기를 텅 빈최정방 도시인 서울에 고립되어 어떻게 미치지도, 환장하지도, 술 취하지도 않고, 화필도 놓지 않고, 가족부양도 포기하지 않고 살 수 있었나,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지극히 예술가답지 않은 한 예술가의 삶의 모습을 증언하고 싶은 마음이 일찍부터 있었다. (중략) 그래서 된 게 『나목』이었다는 것을 밝히고, 이야기 줄거리는 허구이니 어디까지나소설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나목 』 "작가의 말" 중에서

 
 
그 암울한 시기에 미치지 않고 견딜 수 없었던 예술가의 삶을 증언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 예술가는 박수근이 아니라 박완서 자신이었을 것이다. 이 역시 소설 안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옥희도 분의 박수근을 (허구 또는 소설 안에서) 사랑했다면, 그것은 미치지 않고, 삶의 기쁨에의 집념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 남겠다는 의지였다. 나라면 미쳤을 것이다. 누구라도 미쳤을 것이다. 미치지 않는 방법은 모든 감정을 차단하고  AI처럼 사는 것인데... 전쟁도, 오빠의 죽음도, 그 무엇도 없었던 듯 사는 것이었을 텐데 그것은 미치지 않는 것보다 더 독한 일이다. 소설 주인공 이경은 미치지 않기 위해 사랑했고, 박완서는 미치지 않기 위해 글을 썼다.
 
 

그러나 나는 미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나는 내 속에 감추어진 삶의 기쁨에의 끈질긴 집념을 알고 있다. 그것은 아직도 지치지 않고 깊이 도사려 있으면서 내가 죽지 못해 사는 시늉을 해야 하는 형벌 속에 있다는 것에 아랑곳없이 가끔 나와는 별개의 개체처럼 행동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시작하게 된 것일 게다. 그러고 보니 옥희도 씨를 만날 수 있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이요, 구원일까. 그를 못 만났다면 지금쯤 어쩌면 나는 정말 지쳐서 허물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나는 결코 나를 가엾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나는 내가 조금씩 소중스러워졌다. 소중한 나를 배고프게 내버려 둘 수는 더군다나 없었다. 발딱 일어나 부엌으로 나갔다. 그리고 어머니가 눈치채지 않게 소리를 죽여가며 밥상을 챙겼다.『나목』 182, 185쪽

 
 
독서모임 전날이었던 토요일 밤. 두 번 세 번 읽었던『나목』이니 뭘 더 읽나, 하고 있다가, 그래도 포스트잇 붙이고 줄 그은 곳이라도 다시 읽자며 책을 펼친 것이 밤 8시였다. 몇 번 휘리리릭 넘기다 첫 문장이 궁금하여 맨 앞으로 가 읽기 시작하였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30분,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책은 덮은 후였다. 결국 다시 완독을 하고만 것이다. 그리고는 주일에 독서모임 마치고 와서 『나목』 포함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등을 다시 읽으며 넋 놓고 필사를 했다. 박완서라는 거장의 글과 삶에 비춘 '어떤 나'를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에게 투사한 나를 봐야 했다. 박완서와 이승우가 아니라 그분들에게 투사한 나를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생존을 위해 읽고, 살아남기 위해 쓰는 (모르고 싶었던) 나를, 부끄러운 나를. '사연팔이'로 나를 소비하는 나를, 소비되는 나를. 
 

그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휙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 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 예감이 공포를 몰아냈다. 조금밖에 없는 식량도 걱정이 안 됐다. 다닥다닥 붙은 빈집들이 식량으로 보였다. 집집마다 설마 밀가루 몇 줌, 보리쌀 한두 됫박쯤 없을라구. 나는 벌써 빈집을 털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었기 때문에 목구멍이 포도청도 겁나지 않았다.『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312쪽

 
 
자전적 소설(박완서는 '순전히 기억에 의존한 소설'이라고 했다. 자서전 그 자체의 소설이라는 뜻이다)『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마지막 문장들이다. 그 야만의 시절, 벌레의 시간을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은 20년 후 나이 40에 첫 작품『나목』으로 등단하는 것의 예언 아닌 예언이었다. 작품으로는 『나목』이 먼저이지만, 경험적으로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먼저이다. 20년 후의 작품 『나목』으로 20년 전의 예언을 성취하는... 시간의 배열을 뒤집는 한 작가의 글쓰기 여정에 나는 감동한다. 20년 전업주부의 삶 이면은 쓰고 또 쓰며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는 자기 치유의 시간이었음이 느껴지는 것이다. 마지막 에세이 집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박완서 선생님에게 전쟁이 무엇인지 드러낸다. 
 

금년은 또 경인년이다. 나에게는 그냥 경인년이 아니라, 또 경인년이고 또 경인이기 때문에 내 생전에 또 전쟁을 겪게 될까 두려운 것이다. 6·25가 난 해도 경인년이었으니 꽃다운 20세에  6·25전쟁을 엮고 어렵게 살아남아 그해가 환갑을 맞는 것까지 봤으니 내 나이가 새삼 징그럽다. 더 지겨운 건 육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물 줄 모르고 도지는 내 안의 상처이다. 노구老軀지만 그 안의 상처는 아직도 청춘이다.『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20쪽

 
 
엄마 돌아가시고 소파에 파묻혀 지내던 시절, 꾼 두 개의 꿈이 생각난다. 하나는 우리 엄마가 박완서 선생님이 어렸을 적 입었다던 원피스를 입고 나왔다. 또 다른 꿈에선 고운 한복을 입고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엄마였다. 꿈 얘기를 들은 남편이 "장모님 천국에서 글 쓰고 계신가 보다. 자서전 쓰고 계시나?" 했다. 여기서 투사는 초등학교도 못 나온 엄마와 한국 문학의 거장 박완서 선생님이 동일 인물이라는 건데... 내 안의 엄마, 내 안의 박완서 선생님이 둘이 아닌 한 사람, 한 여성, 한 지혜로운 여성이라는 것이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선생님 사후에 소설전집 작업을 했던 최은영 작가의 눈으로 본 박완서 선생님이다. 내가 굳이 지켜드리지 않아도 그분은 이미 강한 분이다. 
 

선생님의 말씀을 읽으며 강한 사람이란 모든 일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느끼며 통과하고 기어이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울고 웃고 망설이고 기대하고 감사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큰 작가로서의 선생님이 어쩐지 더 가깝게 느껴졌다. 우리가 사랑한 것은 선생님의 그런 인간됨이 아니었을까. 무게를 잡고 포즈를 잡는 일을 끝까지 경계하셨던 선생님의 솔직함, 가식을 떨친 말들 말이다.『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작가 박완서를 기리며" 최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