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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마음의 환대

갈색 요리사

by larinari 2026. 1. 18.

 

경안천은 겨울의 천이다. 처음 만난 때가 작년 겨울이었고, 첫 만남의 감동이 잊힐 즈음 다시 겨울이 왔다. 그늘도 없고, 잘 조성되지도 않은... 띡, 아스팔트 깔린 오가는 산책길만 있는 이곳은 겨울이 제철이다. 청둥오리, 왜가리, 백로에 최근에는 고니까지 등장하여 장관을 이룬다. 해 질 녘 갈색 톤의 경안천 산책을 놓치는 날은 공치는 날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갈색 겨울이 좋았을까? 한때는 눈도 못 맞추던 계절이 겨울이었는데.... 죽은 듯한 나무며,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겨울이 평생 슬프고 두렵기만 했는데... 편안하고 좋다. 여름에만 찾았던 요셉수도원에 잠시 다녀왔다. 수십 번 오가며 꾹꾹 기도의 발자국을 남겼던 메타세콰이어 길, 저 메마르고 텅 빈 나뭇가지 사이에서 부는 찬바람에 위로를 받았다. 이 텅 빈 위로가 무성한 여름의 생기와 견줄 수 없었다.  

 

뭐 해먹을까? 굴 수제비 해줄까? JP 왈 "갈색 요리사야?"란다. 흑백 요리사, 그 중간이면 회색 요리사도 아니고 무슨 갈색 요리사? 내가 입은 옷이 갈색이라서 했다는 말이다. 오, 갈색 요리사 뭔가 그냥 마음에 든다! 어머니인 대지의 색, 자연의 색, 이 계절 경안천의 색, 텅 비어 충만한 겨울의 색. 갈색! 요리사. 그러고는 굴 수제비를 끓여 사진을 찍었더니 갈색이고. 며칠 전에 먹었던 우렁이 넣은 청국장도 갈색이고... 나 이제부터 갈색 요리사 할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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