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뿔, 내수용 감각
왜 이리 눈이 안 떠지지? 커피 한 잔으로 안 되는 아침 정신인가 싶어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더 마시고. 그래도 안 되어 한 잔 더 마시겠다는 것은 남편이 말렸다. 그리고 점심을 먹었고, 먹자마자 속이 안 좋더니 배가 뒤틀리고. 모처럼 제철 과메기 식사와 함께 경안천 산책 약속이었는데... 산책 포기. 겨우 과메기 식사를 함께 하고. 오고 가는 대화 속에 기분이 좋아졌다. 침대에 눕자마자 기침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는데. 흔히 하는 '습관적인 밤 기침'이려니... 기침과 함께 그 밤을 보냈다. 다음 날도 뭔가 몸이 무겁기만 한데, 어제 장 트러블 여파인가, 하면서 또 하루를 보냈다. 밤에 또 기침. 그리고 뭔지 모를 잠 못 드는 몸의 무거움. 끙끙거리며 한 밤을 보내고 맞은 아침에는 운동을 포기하고 내 발로 걸어 병원에 갔다.("엄마가 스스로 병원에 갔다고? 진짜 아팠군!" 이런 일이다. 내 발로 병원에 간다는 것은) 문도 열기 전에 가서 접수하고 앉아 기다렸다. B형 독감 양성 두 줄. 그제야 몸이 "아~~~ 독감!" 하고 제대로 아프기 시작했다.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은 "주체 의식"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고,
별다른 것이 아니라 "내 삶이 내 것이다"라는 느낌을 느끼는 것이고,
그것은 또 별다른 것이 아니라 "내수용 감각" 즉,
자기 몸의 상태를 스스로 느끼고 알아차리는 것
이라고 몇 번을 떠벌이고 가르쳤던가. 마치 나는 나 자신이 된 것처럼, 주체 의식을 가지고 사는 것처럼, 내수용 감각이 살아 있는 것처럼! 독감을 감기 증상으로도 감각하지 못하고 몸이 무겁다느니, 눈이 안 떠진다느니 하며 이틀을 보낸 내수용 감각을 가지고 말이다. 수액 주사를 맞고 나니 금세 몸이 가벼워지는 듯했다. 한 이틀 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 같더니 다 나았구나 싶었다. "약 좋네!" 하며 창문 활짝 열고 이불과 베개 커버 벗겨서 건조기에 돌려 먼지 털고 소독하고 났는데. 뭣이다냐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진땀이 나서 깨끗한 침대 위에 다시 드러누웠다. 그리고 온 이해불가의 증상들. 눈이 빠질 것 같고,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은 느낌에다 음식 냄새가 역겨운 입덧 증상, 조금만 앉아 있으면 식은땀이 흐르는 증상, 두통 증상,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안 자는 것도 아닌 혼미한 상태의 낮과 밤. 검색해 보니 이 모든 것이 독감 후유증이었다. 꼬박 일주일. 침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아프다는 말을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던 엄마가 갑자기 보고 싶기도 하고. 어렸을 적 열이 나고 아팠던 어느 날, 새털처럼 가볍고 부드럽게 이마에 손을 얹고 소리 내지 않고 기도해 주던 아버지, 그 커다란 손이 생각나서 가만히 울기도 했다. 드라이브라도 가자는 남편을 따라나선 날도 있는데, 내내 차에서 병든 닭처럼 잠에 취해 있다 그대로 침대로 옮겨와 또 골골거리며 잠 아닌 잠에 빠지기도 하고. 울렁거리고 어지러워 먹을 수가 없었는데... 이런 삶을 계속 산다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걸까? 생각도 했다.
독감과 비할 수 없는 고통으로 홀로 병상에 누운 이들이 생각나 몸과 마음이 더욱 깊은 구덩이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렇듯,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끄적일 수 있는 몸이 되었다. 놀랍고 신기하다. 집안에서 몇 발자국 걷고도 진땀이 났었는데. 30여 분 경안천을 걸을 수도 있었다. 천변까지 차로 운전해 가서는 천천히 조심조심 걸었다. 해 질 녘에 나가면 늘 걷고 계시던, 다리가 불편하여 종종걸음으로 세월아 네월아 걷고 계시던 할아버지는 뵙지 못했는데... 그 할아버지가 자꾸 떠올라 함께 걷는 것 같았다. 걸음걸음 그 할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했다. 여전히 외롭게 거기 서 있는 백로가 유난히 반가웠고. 무심하게 나를 맞아주는 것 같기도, 애썼다고 토닥여주는 것 같기도 했고. 독감이 독해서 독감이었다. 독한 것을 겪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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