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가사키 순례를 마음이 머금고 있는 중, 지난 금요일 밤 꿈모임에서 한 벗의 꿈이 내게 물었다. "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어떤 보상도 기대하지 않고 했던 일이 있는가?" 이 질문 앞에 나도 벗들도 모두 잠시 말을 잃었다. 거기 모인 사람들, 세상 이타적인 착한 사람들인데... 베풀기 좋아하는 이들인데 말이다. 정말 바라는 것 없이 베풀었나? 그랬던 적이 있었나? 없다고들 한다. 뭐라도 바랐다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인정이든,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칭찬이든, 심지어 솔직히 말해서 '돈'이기도 하다는!
나가사키 순례 내내 걷고 또 걸으며 기도하던 내 비루한 마음이 떠오른다. 단지 몸이 아파서만은 아니었다. 마음이 자꾸 협소해졌다. 내가 계획했던 바를 완수하지 못했거나, 혹은 지키지 못했다는 데서 오는 좌절감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런 것에 마음이 협소해지는 나를 다그치고 나무라면서 걷고 또 걸었었다.
자칭 타칭 "아낌없이 주는 소장"이라고 불린다. 연구소 벗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뭐든지 준다는 뜻이다. 피, 땀, 눈물 서린 강의안도 다 주고. 글도 고쳐주고, 글을 써주기도 하고, 대신 싸워주기도 하고, 돈이 없으면 돈을 안 받고, 요구하기도 전에 미리 알아서 주는 "아낌없이 주는 소장"이다.
나가사키 가기 전에 강독 모임으로 다시 읽은 엔도의 소설《여자의 일생》과 《전쟁과 사랑 》은 말 그대로 사랑에 대한 깊은 질문과 답이다. 그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의 사랑이고, 사람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이고, 한 남자를 사랑하는 한 여인의 사랑이다. 전쟁과 종교 탄압이라는 폭압적 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소설들이다. 엔도는 깊게 질문하고 얻은 '사랑'에 관한 답을 흐릿하게 내비친다.
멀리 헤어져 만나기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는 날에는
나는 마음에서 나오는 참된 사랑을 배울 수 있기를 바라노라
그 사랑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랑
그 사랑은
깊은 믿음을 지닌 소녀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날에도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손을 모으는 마음이리니
《전쟁과 사랑》
나가사키 순례 길 걷는 기도로 만난 질문과 목소리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랑(인가)?"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꿈모임을 통해 정확히 들었다. 아낌 없이 주는 소장이라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가? 아니다. 바라는 것이 분명하고도 강력하고도 확고하다. "내가 돈을 달래, 뭘 달래? 그저 자기 여정 정직하게 잘 가라는 것인데... 그저 각자 성장하자는 것인데... 그게 뭘 그리 어렵다고..." 강력하게 바랐다. 그게 뭘 그리 어려운 게 아니라, 그게 제일 어려운 것인데 말이다. 구세주 콤플렉스이며, 하나님 놀이이다.
내가 계획했던 바를 하지 못했(않았)을 때, 더 좋은 순례가 되었다. 가볍고도 겸손하게 아침 기도를 이끌어주신 수녀님이, 착한 책임감에서 오는 용기와 판단력을 발휘한 연구소 벗들이 뭔가를 해주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는 항변, 않는다는 착각을 흔들어 깨야만 해석이 되는 여정이다. 부끄럽고 다소 슬픈 마음에 위로가 되는 떼이야르 드 샤르뎅 신부님의 기도문은 마지막 날 아침기도에서 나눠주신 것이다. 마음에 새긴다.
끈기 있는 신뢰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느긋하게 일하고 계시다는 걸 믿으십시오.
우리는 모든 것에서 지체없이 목적에 다다르려 안달합니다.
우리는 중간 과정들을 생략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미지의 새로운 것으로 향하는 여정에 있다는 걸 참아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불안정한 단계들을 겪어 나가고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
이것은 모든 진화의 법칙입니다.
그래서 당신도 그런 여정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당신의 생각들은 서서히 무르익어서
불필요한 성급함이 없이
당신의 사고들을 성장시키고
스스로의 모양새들을 갖추게 할 것입니다.
시간 속에서,
즉, 당신의 선한 의지에 영향을 끼친 은총과 상황 안에서
내일 당신의 모습을
당신이 오늘 만들 수 있는 듯이
자기의 생각들을 몰아붙이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만이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다.
이 새로운 영으로 당신 안에서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 될지.
-피에르 떼이야르드 샤르댕-

'정신실의 내적여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밤의 해변에서, 혼자 (4) | 2026.04.23 |
|---|---|
| 꿈과 영성 생활 집단 여정: 자비가 필요한 자리 (0) | 2026.04.23 |
| Ruach 숨결여행, 두 번째 나가사키 순례를 마치고 (0) | 2026.04.16 |
| 두 번째 Ruach루아숨결여행, 출발 (0) | 2026.04.15 |
| 2026년 '상처 입은 치유자' 과정 (2) | 2026.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