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상수 감독 영화 이야기 아닙니다. 제목만 가져왔습니다.)
일은 꼭 몰려온다. 봄 내내 강의 없이 잘 쉬었는데, 이틀 연속 강의가 있었다. 이튿날 일정은 부산. 처음으로 차를 직접 몰고 내려왔다. 보통 꿈 집단 한 텀이 끝나면 한두 주 쉬어가는 시간을 갖는다. 이번에도 수도원 피정을 갈까 고민하던 차에 작년에 이어 수영로교회에서 재차 강의 요청이 왔다. 그래, 내친걸음으로 마산까지 가자. 그간 숙소 제공의 호의를 매번 사양하고 당일로 오가곤 했으나, 이번엔 그 호의도 기꺼이 받기로 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해운대 근처 숙소에 짐을 풀었다. 그대로 쉴까 하다 한 블록만 건너면 바다인데 그럴 수는 없지 싶어 옷을 갈아입고 나갔다. 아, 이토록 고요한 해운대라니. 작년 여름, 채윤이가 미국 가기 전 가족 여행으로 왔던 복잡하고 덥던 해운대와는 전혀 딴판이다.
모래사장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들이치고 물러나고, 다시 밀려왔다 멀어지는 파도의 리듬에 눈길을 빼앗기고 마음을 맡겼다. 얼마를 그러고 있었을까. "주님, 감사합니다. 제가 뭐라고... 저한테 참 잘해주시네요. 어떻게 이런 시간을 계획하셨어요?"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꿈 집단 한 텀이 끝났고, 나가사키 순례 여정을 마쳤고, 게다가《신앙 사춘기 너머》출간 작업이 딱 끝났다. 어쩌면 이 타이밍에 밤의 해변에 혼자 앉았는가. 가만 멈추니 내달리던 속도가 느껴진다. 허둥대지 않고 여유롭게 일하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았구나! 고요한 밤의 해변에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 더없는 쉼과 위로가 밀려왔다.
신발을 벗고 찰박찰박 물가를 걷는 이들이 있었다. 파도멍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내 바로 앞에서 한 여인이 걷는다. 발자국을 남긴다. 아, 걸을 수도 있지! 나도 다리가 있잖아! 일어나 걸었다. 신발을 벗고 양말도 벗고 맨발로 꾹꾹 모래 위를 걸었다. 꼭 끼는 스니커즈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발가락들이 해방을 맞았다. 발가락 사이사이 파고드는 모래 마사지에 이제야 살 것 같다고 아우성이다. 벗어보고서야 알았다. 내가 얼마나 갑갑하게 조여 있었는지.



잠깐 나가서 바닷 바람 쐬고 오자, 했던 걸음인데. 두 시간을 놀았다. 천천히 해변을 걸었던 걸음 수가 8천 보. 호텔로 돌아와 뜻밖의 선물에 들떠서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하나님이 나한테 참 잘해주셔. 세심하게 잘해주셔. 대형교회 좋네. 강사 대접 참 잘해. 나 이제 대형교회 좋아할래..." 했더니 "그렇지, 당근도 주시고 채찍도 주시지..."란다. 와, 나 이게 또 이렇게 들리네. '언제는 하나님이 왜 나한테만 이러시냐고 섭섭하다더니, 뭐 하나 좋으면 금세 감동해서 난리네.'
그래, 사람 사는 게 뭐 별거 있나.
잘해주면 좋고, 막 굴리면 서러운 거지.
하나님, 그렇다고요오!
이번 서프라이즈 성공하셨다고요오,
참 감사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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