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신실의 내적여정

숲은 두 팔을 벌려

by larinari 2026. 5. 1.

 

음악치료대학원에 들어가 실습수업에서 처음으로 주어진 대상이 마약 청소년이었다. 석사 전공이라지만, 난생처음 해보는 음악치료 세션인데, '마약 청소년과 부모의 소통'을 주제로 한 음악치료라니! 난감한 과제였다. 몇 날 며칠을 기타 잡고 끙끙거리다 하덕규의 <숲>과 안치환의 <내가 만일> 두 곡을 가지고 디자인한 세션에서 교수님께 의외의 칭찬을 받았다. "음악치료의 귀재가 나타났다."는 농담과 함께 정말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다.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
푸르고 푸르던 숲
음~ 내 어린 날의 눈물 고인

숲에서 나오니 숲이 느껴지네
어둡고 어둡던 숲
음~ 내 젊은 날의 숲

 

그때 나 스스로 내면화 한 '숲'의 메타포가 있다. 아마도 그 때문에 십수 년이 지나 '어두운 신앙의 숲에서 길을 잃은 그리스도인들에게'라는 부제를 『신앙 사춘기』에 붙였을 것이다. 숲은 그런 곳이었다. 

 

이 즈음 숲은 나를 안아주는 품이다. 달라스 윌라드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 작동하는 곳'이 하나님 나라이며, 가장 잘 작동하는 곳이 '자연'이다. 자연은, 숲은 하나님 나라이다. 있는 그대로 나를 품어주는 곳이다. 월, 화, 수, 목... 연 4일을 숲에 안겼다. 짧은 꿈여정 방학 기간이라 만나자는 모든 약속을 덥석덥석 잡아 두었는데... 연일 숲 치료였다. 어제는 그 정점. '상처 입은 치유자들, 5기 동반자 모임' 선생님들과 봄 나들이를 다녀왔다. 비스듬히 누워서 편안하게 먹고, 선물을 나누고, 사랑 얘기, 꿈 얘기, 사이사이 하릴없는 농담으로 한 나절을 보냈다. 숲이 사람을 안아주니, 사람들은 서로를 안아주었다. 

 

주일 밤마다 청년 리더들('목자'라 불렸는데... 돌아보면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무거운 말이었을까)이 집에서 모이던 적이 있었다. 현승이가 어제 그 시절에 관해 물어서 수다 떨다 그랬다. "지금 내 나이 형들 누나들 아니야. 참 좋았겠다. 매주 맛있는 거 먹고, 얘기 들어주고, 연애 상담 다 해주고..."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했느냐고 물었다. 마침 연구소 봄 나들이 다녀오는 길이어서 '그때나 지금이나, 그때 청년들 떡볶이 해주던 마음이나 지금 연구소 하는 마음이나 같은 마음'이라고 했다. 
 
오늘 아침 기도를 마쳤는데 '어느 날 문득 당신이 찾아온 푸르른 이 숲 속에...' 이 노래가 입에 맴돈다. 그 시절 청년들을 맞으면 내 마음에 많이 울렸던 노래이다. 어린 나이에 더 어린 청년들 돌본다고 애쓰고 상처받는 리더들에게 숲이 되어주고 싶었었다. 그 숲은 내게 교회였다. 되고 싶은, 되어주고 싶은 교회였다. 먼지 나고 메마른 길 위에 일주일 정도 다시 설 수 있는 만큼의 쉼을 주는 그런 소박한 숲, 아니 교회.  
 
달라스 윌라드는 교회를 하나님 나라로 보지 말라고 했다. 교회는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공동체이지 '자연'처럼 하나님 나라 통치 방식이 작동하는 곳이 아니라고.  그래도 가끔은 교회가 하나님 나라이고 숲인 순간이 있다. 제도적 교회가 아니라 체험적 교회, 하나님의 숲에 안겨본 이들이 사람을 안아주는 그런 순간, 잠깐 교회도 하나님 나라이다. 
 
한두 달 전에 잡힌 약속들인데, 맛있는 밥을 먹고 초록숲에 안기는 초록초록한 나흘을 보냈다. 병 주고 약주는, 당근 주고 채찍 주는 그분의 지능적이고 섬세한 사랑에 다시 감탄한다.

 

어느 날 문득 당신이 찾아온
푸르른 저 숲 속에
평온하게 쉴 수 있는 곳을 찾아
당신이 지나온 이 거리는
언제나 낯설게 느껴
그 어디에도 평화 없네 참 평화 없네

그렇지만 당신의 앞에 펼쳐진
주님의 숲에
지친 당신이 찾아온다면
숲은 두 팔을 벌려
그렇게도 힘들어했던 당신의 지친 어깨가
이젠 쉬도록 편히 쉬도록
여기 주님의 숲에

당신이 느꼈던 지난날의
슬픔의 기억들을
생각하고 잊어버리고 또 생각하네

그렇지만 당신의 앞에 펼쳐진
주님의 숲에
지친 당신이 찾아온다면
숲은 두 팔을 벌려
그렇게도 힘들어했던 당신의 지친 어깨가
이젠 쉬도록 편히 쉬도록
여기 주님의 숲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