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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좋아합니다. 커피 진짜 좋아합니다. 잠 올 때 마시면 잠 깨고, 잠 안 올 때 마시면 잠 오고, 기분 나쁠 때는 스트레스 풀리고......기타 등등....커피 진짜 좋아합니다. 그래서 커피 좋아하는 사람도 좋아합니다. 빨간 색 맥스웰 믹스커피만 말고는 다 좋아합니다. 커피 완전 알라뷰~라고요.

남편이  프림커피를 완전히 끊고 원두커피만 마시기로 한 지가 몇 개월. 방학동안 집 근처 커피 볶는 집에서 원두를 사다 갈아서 내려 먹었더니 입맛이 완전 높아지고 말았습니다.
갓 볶은 커피를 갈 때와 그걸 여과지에 걸러서 내릴 때 집 안에 쫘악 퍼지는 향이란 말입니다. 특별히 바쁜 일이 없는 날 오전에 주방으로부터 퍼져나와 거실을 감싸는 커피향은 그 자체로 여유의 모든 것이죠. 지난 방학동안 이 커피향에 취해 남편과 마주앉아 나눈 무수한 이야기들이 커피향과 함께 되살아 나는 듯 합니다.

오늘은 남편이 새벽기도를 갔다가 바로 장례식이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아이들 아침 먹여 보내고 커피 생각이 나서 보니 커피가 딱 한 번 갈아 마실 정도가 남아 있네요. 좀 있다가 남편 들어오면 같이 마지막 잔을 마셔야겠다 싶어서 혼자 일단 맥심모카 골드 한 잔으로 아침 카페인 복용을 해뒀습니다.

남편이 들어온다는 전화를 받고 현관문을 열자마다 커피향을 맡게 할 요량으로 시간을 맞춰 커피를 갈았습니다. 실은 한 발 늦었습니다.ㅜㅜ 봉지에 마지막 남은 커피알을 쏟으면서 '사르밧 과의 심정으로' 하는 말을 했습니다. 웬 뚱딴지 같은 사르밧 과부? 엘리야 선지자에게 자신과 아들이 식량인 밀가루를 가지고 식사대접을 했다는 그 과부 말입니다. 마지막 커피를 터는에 그 생각이 나지 뭡니까.

실은 이제 원두 사러 그만 가야지 하는 결심을 하고 있었더랬습니다. 일단은 남편이 없이 혼자 저걸 사다 마시는 게 사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무엇보다 너무 높아져 버린 입맛에 대한 우려 때문입니다. 커피를 생산하는 제3 세계 농민들의 사연에 대한 얘기도 마음 한 구석을 좀 불편하게 하기도 했지만요. 무엇보다 이렇게 마시기 전까지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까페라떼가 그렇게 맛있었는데....지난 주 평택에 강의를 갔다오다가 안성 휴게소에 들러서 사 마신 까페라떼가 예전 그 맛이 아닌 거예요. 커피는 그 커핀데 이느무 입맛이 그 입맛이 아닌 게 된 거죠.

교역자가 되고 먹는 것에 대한 생각을 적잖이 하게 됩니다. 성도들이 목회자들을 대접하겠다는 마음으로 좋은 식당에 초대해서 대접도 하고 그러시는 것 같은데....한 두 번의 이런 경험이 입맛을 너무 높혀 놓는 겁니다. 무엇보다 내 돈 내고 먹는 거 아니니까 평소 못 먹던 거 실컷 맛있게 먹어보자는 생각으로 배가 터지게, 그야말로 소화도 못 시킬 정도로 먹고 나서는 밀려오는 몸의 체증과 마음의 체증이 상당히 불편했습니다. 비싸고 좋은 음식 얻어 먹는 것 당연하게 생각하는 삶이 될까봐 걱정도 되구요. 생활수준과 맞지도 않는 식당에 가서 앉아 있는 것, 이상하게도 정서적인 균열을 가져오드라구요.

이렇게 하나 씩 하나 씩 입맛을 고급화시키면 안 되겠다는 얘기를 남편과 여러 번 했었어요. 그런 의미로 맛있고 향 좋은 커피를 좀 자제해 볼려구요. 그래서 마지막 남은 커피알을 털며 '이게 끝이다' 하는 심정이라서 사르밧 과부 얘기를 꺼낸 거지요. 절대 사 먹지 않겠다거나, 다시는 사지 않겠다는 얘기는 아니고....그저 좀 자제해 볼 생각이예요. 일단은 고속도로 휴게소의 까페라떼가 예전 맛으로 느껴질 때까지 만이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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